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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에는 나름대로 열심히 하여 심신의 변화를 느끼면서 조금이나마 수행의 성과가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3~4년의 세월을 넘기면서 수행은 진전이 없고 나중에는 수행의 목표조차도 흐려져 시간이 흐를수록 이유모를 답답함을 느끼게 되었다. 속세를 살 때 보다는 많이 달라진 인생철학을 지니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나을 것도 없는 조금은 특이한 인간으로 변모되었던 것이다. 마침내 내가 수행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에 대한 회의가 찾아들었지만 돌파구를 모색하지 못하고 몇 년을 더 허송세월을 보내다 경제문제 등으로 수행을 접고 다시 생업전선으로 되돌아오게 되었다. 그러나 마음공부에 대한 열망이 다 꺼지지 않은 덕분이었는지 얼마지 않아 주위의 인연으로 우곡선원을 찾게 되었다.
예전에 접했던 마음공부가 사도인줄 전혀 몰랐었다. 마음공부는 다 똑같고 세상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고 술렁거리면 그것이 최고인줄만 알았던 것이다. 외도사마 법을 구하던 훈습이 배어있었던 까닭에 참선법회는 참석하지만 훌훌 뛰어넘는 우곡선사님의 설법은 도무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특히 우곡선원 공부는 주변에서 항상 보아오던 그런 유형의 불교가 아니었다. 인간불사를 주창하는 것처럼 최상근기를 위한 참선공부이기 때문에 선법이 생소한 나로서는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렸다. 그 후 일주일에 한번씩 꼬박꼬박 법회에 동참하다 보니 수개월 후부터는 조금씩이나마 말귀가 열렸다. 그럴 즈음에 경제적인 어려움을 먼저 해소하고자 법회에 빠지게 되면서 참선공부를 내팽개치다시피 하였다. 그렇게 1년을 넘게 보내다 보니 경제적인 어려움도 해소되지 않을 뿐더러 하는 일은 점점 어렵게 꼬여만 갔다. 마침내 경제적인 문제 등으로 인하여 엄청난 스트레스를 겪으면서 앞날에 희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막다른 골목에 내몰리는 절박한 상황이 밀려오자 정신이 들기 시작하고 난관을 극복해야겠다는 절박한 생각이 들었다. 세속에서의 생활을 원만히 헤쳐 나가지 못하는 부족한 나를 절감하게 되었으며, 경제적인 문제가 아무리 힘들다 하더라도 인생에 가장 큰 의미를 부여하였던 수행만은 더 이상 등한시 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수행에 우선적으로 힘을 쏟기로 결심한 후부터 다시 시작하는 심정으로 열심히 법회와 만행수행을 빠지지 않고 동참하며 수행을 생활의 최우선에 두려고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모든 문제는 역시 나에게 있었다. 몸과 마음을 고요히 가다듬는 좌선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만으로도 경제적인 현실에 묶여 고통스럽던 마음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경제문제를 내팽개친 것이 아니라 현실의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고 나보다도 더 어려운 처지에 놓인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걱정을 앞세우기 보다는 최선의 해법을 모색하되 염려스런 마음을 놓고, 비우고, 버리는데 몰두하였다. 이러한 마음자세로 수행을 시작한지 반년이 흘렀다. 아직 경제적인 문제가 다 해결되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그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거나 고통에 휘둘리지 않으며, 해결의 실마리를 잡았다.
돌이켜보면 나의 어리석음으로 인하여 올바른 법을 찾지 못했던 것이 지금의 어려움을 가져왔으며, 그나마 내 마음속의 순수함을 잃지 않았기 때문에 우곡선원의 올바른 마음공부를 접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또한 나보다도 늦게 수행을 시작했지만 빨리 변화를 보이는 도반들을 지켜보면서 신선한 자극을 받는 것이 그 사람들이 나의 또 다른 스승임을 알게 되면서 나와 함께 공부하는 도반들에게도 점점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어떠한 수행방법이든지 처음에는 수행으로 인한 심신의 변화를 누구나가 느끼기 때문에 그것이 제대로 된 수행법인지 아닌지 판단한다는 것은 초심자로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조금은 잘못된 수행법이라 하더라도 처음에는 효과를 보며 비교적 빠른 진전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 이후가 더 문제였다. 제대로 된 수행법이 아니면 아무리 수행을 하여도 나중에는 별로 진전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자칫 역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잘못된 수행으로 건강에 문제가 생기거나 또는 정신이 약간 이상한 사람처럼 되어버리는 경우를 수차례 보아왔다. 수행에 진전이 없는 이유는 수행자 자신에게도 문제가 있겠지만, 수행법 그 자체에 있다고 본다. 올바른 수행이란 놓고 비우고 버려서 내안의 순수함을 찾아내면, 그것이 참된 나의 발견이며, 삶의 순간순간 이러한 순수함을 지속시키는 것이 평상심이라고 생각한다. 말은 쉽지만 역시 이를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올바른 스승의 가르침과 나의 노력이 제대로 어우러질 때 가능하다고 본다.
십여 년 전 가사를 접고 공부 길에 뛰어든 그때는 그 분만이 이 세상에서 최고이며 그 분 밑에서 공부를 한다는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이제와 보면 그것이 아니었다. 한 치라도 순수하고 정의로움에서 벗어나면 세월이 흐를수록 깨달음이나 완성은 더더욱 멀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완벽한 경지를 이루신 스승 밑에서 수행을 지어나가야 하는 것이 중요하며, 처음 잘못된 수행에 발을 들여놓게 되면 눈 뜬 오리새끼가 처음 눈에 들어온 사람을 제 어미로 착각을 하고 살아가듯이 자신의 수행법을 맹신하는 우를 범하기 마련이다. 이처럼 잘못된 사법에 얽매여서는 진정한 깨우침은 불가능할 것이다. 긴 세월 동안 수행을 하여도 진전이 없는 사람들은 자신의 수행법이 올바른 것인지를 되돌아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수행이란 이름으로 쌓은 것들이 아집이 되어 윤회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덫이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수행자는 겸허하고 순수한 마음을 잃지 않고 올바른 수행의 방법을 따르고 있는지를 점검받아 경계를 뛰어 넘는 것이 참다운 선지식 인연을 둔 복 받은 수행자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선지식 인연 없이 어떻게 마음 농사를 지을 수 있겠는가?
우곡선원에서 처음 불법을 접하였을 때에는 일체개고(一切皆苦)가 무엇인지 조차도 몰랐다. 세상에는 엄연히 즐거움도 있는데 왜 염세주의적인 고통만을 강조하는 것인지, 그 의미를 잘 헤아리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는 그 고통이 내 자신의 마음가짐 때문에 생기는 것이며, 외경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절감한다. 수행노력은 줄지 않았다고 자문자답하지만 숙세를 익혀온 업은 긴장을 조금만 풀어도 스프링처럼 들고 일어난다. 그러나 이제는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결코 패자가 되지 않으려는 결심으로 다지고 또 다진다. 참선 수행은 숙세의 고통을 이기고 운명의 재창조자로 거듭나는 비법이라는 우곡 선사님의 가르침을 새삼 새기면서 요동치던 내 인생의 한 토막 행간을 수행일기로 옮겨보았다.
- 현대불교신문(2004.7.07, 2004.7.14) "수행일기" 게재 - | 
왕도를 찾아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