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동심과 순수한 성품의 개념 분석

 

1. 이야기

존재하는 모든 것(reality)은 매 순간마다 끊임없이 變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부처님께서 자신을 관찰함으로써 깨달은 것입니다. 강한 정신 집중으로 자신의 본성을 깊이 꿰뚫어, 모든 물리적 형상들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사라지는 미세한 소립자들로 구성되어 있음을 깨달아 아셨습니다. 부처님은 손가락을 딱 튕기는 순간이나 눈 깜짝할 사이에 이 소립자들이 팔만사천번 일어났다가 사라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느 정도 견고하고 지속적인 형상을 가지고 있는 것들만을 存在로 인정하고 또 관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팔만사천번 이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의 의미보다는 관용구로 이해하여야 합니다. 요즈음 현대 과학자들이 이 사실을 밝혀내고 있습니다.
몇 년 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미국의 한 물리학자가 오랫동안 우주를 형성하고 있는 소립자들을 밝혀내는 연구와 실험을 해 왔습니다. 이미 소립자들이 대단히 빠르게 반복하여 일어났다 사라진다는 사실은 알려져 검증되고 있습니다. 이 과학자는 일 초 동안에 소립자들이 몇 번 일어났다 사라지는지를 계산해 낼 수 있는 기계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는 이 기계를 거품상자(bubble chamber)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이 기계를 이용하여 소립자들이 일 초 동안에 10²²번 일어났다 사라진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 과학자가 발견한 사실은 약2,500년 전에 부처님이 발견한 것과 동일합니다. 그러나 부처님과 이 물리학자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점이 있습니다. 인도에서 참선 수행과정에 참여했던 미국 학생들이 다시 그들의 나라로 돌아간 후 이 과학자를 방문했습니다. 그 과학자는 비록 물리적 사실을 발견했지만 아직도 평범한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가진 보통의 인간이었습니다. 또한 고통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으며 결코 깨달은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직접적으로 진리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배운 것은 오직 지적인 지식일 뿐이었습니다. 그는 발명한 기계를 믿기 때문에 그가 발견한 진리도 믿었지만 그 진리를 몸으로 경험하지는 못했습니다.
우리는 과학자와 현대 과학의 성과를 부인할 필요는 결코 없습니다. 그리고 사실 우리는 과학자와 현대 과학에 대해서 충분하게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바깥 세계를 탐구하는 과학자일 필요는 없습니다. 부처님은 眞理를 직접 몸으로 경험하셨던 내적 세계의 과학자였습니다.
진리를 실현한 사람들은 자동적으로 마음의 습관이 變하고 일상 생활 속에서도 진리를 따라 살아가기 시작합니다. 모든 행동은 그 자신의 善과 타인의 善을 위해 行하여 집니다. 만약 내적 경험이 결여되어 있다면 과학은 잘못 이용되어 비극적 종말을 맞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내적 실재를 탐구하는 과학자라면 우리에게는 모든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지혜가 顯現될 것입니다.

2. 마음의 흐름

동심이란 태어날 때 가지고 나온 때가 묻지 않은 마음 상태 즉 순진 무구하고 천진 난만하기만 했던 어린 시절의 성품으로 순수한 성품이 자랄 수 있는 텃밭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순수한 성품(淸淨心)이란 그 텃밭이 참 인연을 만나 씨앗이 뿌려지고 그 씨앗이 발아(頓悟)하여 새싹이 돋아나고 다시금 거목으로 성장하듯이 동심이 참 스승과 正法을 만나 올곧게 정진하여 스스로에게 주어진 역할을 걸림없이 다할 수 있는 힘이 배양된 성숙한 성품을 지칭합니다.

동심은 아직 발육이 되지않은 미성숙의 단계로 순수한 성품으로 가기 위한 시발점은 될 수 있으나 동심을 곧 순수한 성품으로 착각하여서는 안됩니다.

무엇이 되겠다는 강한 염원을 가지고 오랫동안 관념적인 수행만을 계속하다 보면 현실과의 괴리감이 증폭되어 현실을 혼탁한 것으로만 인식하고 배척의 대상으로 삼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는 바르게 간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을 수용하면서 살아나갈 능력이 부족할 뿐 아니라 주변 환경이나 시대 상황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므로 수행자의 기운이 균형을 잃어가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불균형이 발전하면 순진무구하고 천진난만했던 과거의 동심을 동경하게 되고 나아가 이것을 마치 순수한 깨달음의 모습으로 착각하여 어린아이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면서 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태어나 세월의 연륜을 쌓으면 제 역할을 당당하게 할 수 있는 어른이 되어야 하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지, 껍데기는 어른이나 그 주인인 성품은 아직도 미숙하여 어린아이의 동심에 젖어 머물러 있다면 어떻게 이런 사람들을 善知識이고 覺者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순수한 성품이라는 것은 걸림 없는 마음으로 만상을 부정하지 않고 모두를 수용할 수 있는 지혜를 갖추고 있는 성품을 말합니다. 이를 존재 형상으로 이야기하면 주어진 역할을 외면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은 채 능력껏 行을 다할 수 있는 마음이 된 것이고, 삿된 견해가 일어나지 않는 성품이 되어 목적하는 바를 올바로 추구하는 것입니다.

현실을 부정만하면서 이를 대긍정심으로 전환할 수 있는 힘이 없는 수행자가 참 인연 만나 성품의 씨앗에 불을 당기기는 어렵고도 어려운 일입니다. 현실을 부정하고 부패한 것으로만 보면서 자기는 순수하다는 아만에 젖어 자기 의지대로 그 무엇을 찾아 깨달음에 이르겠다고 생각한다면 스스로 관념의 노예가 되어 성숙하지 못한 어린아이의 동심에 머물러 있는 정신적 미숙아 신세를 면할 수가 없습니다.

고려의 禪僧 眞覺國師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한낱 침묵만 지키는 어리석은 선정은 벽돌을 갈아 거울을 만드는 격이고,
문자만을 찾는 미친 지식은 바다에 들어가 모래를 새는 격이다.
그것은 모두 걸림 없는 기틀과 자재하고 미묘한 작용을 모르는 것이다.

3. 오늘의 KEY WORD

순수한 성품은 깊은 밤 저 멀리서 어둠을 헤치고 다가오는 불빛과 같은 것이고, 동심은 미래에 순수의 등불을 밝힐 등잔을 준비하는 단계와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