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불교와 인간관

 

석가세존 당시의 인도에는 인간의 삶에 대하여 유신론(有神論) 숙명론(宿命論) 유물론(唯物論)의 세 가지의 종교 사상이 있어 서로 대립하고 있었다.
유신론의 경우 인간의 삶이 신(神)의 의지에 의해 결정되어 있고 숙명론의 경우 확정된 운명에 의해 결정되어지며, 유물론은 물질의 구성에 따라 삶이 결정된다고 보았다. 이러한 결정론적 인간 해석에 대하여 석가세존은 단호히 비판하였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그 무엇에도 예속될 수 없는 지극히 자유로운 존재이며 인간을 제약하는 것은 오직 인간 스스로일 뿐이지 어떤 외적인 결정요인이 없다고 천명하였다.

1.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

석가세존은 인간이란 철저히 자유의지에 의한 존재라고 정의하여 인간구성을 육근(六根)으로 파악한다. 인간의 육근이란 눈, 귀, 코, 혀, 몸, 의지의 여섯 근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근이라는 말은 "절대적인 힘을 가진 어떤 것"을 의미하여 육근으로서의 인간은 그 어떤 외적 요인에 결정됨이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운영해 나갈 것을 표현한다.

육근은 육경(六境)과 짝을 이룬다. 육경이란 색, 소리, 냄새, 맛, 촉감, 법의 여섯가지 인식 대상을 뜻하는 말이다. 육근이 절대적인 힘을 가진 존재라고 할 때 힘과 능력이 미치는 대상은 바로 육경이다. 육근과 육경이 함께 쓰이어 십이처(十二處)를 구성하며 "일체존재란 오직 십이처"(눈과 색, 귀와 소리, 코와 냄새, 혀와 맛, 몸과 촉감, 마음과 법)라고 석존은 말씀하셨다. 이는 우주에 온갖 것들이 존재하지만 그것들이 존재로서 인정 받으려면 반드시 인식하는 것이거나 인식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질적 자연물들이 인식대상인 육경에 존재한다고 볼 때 육경에 절대적인 권능을 행사하는 것이 바로 인간을 구성하는 주체인 육근이다. 결국 보이지 않는 창조신이나 숙명적 원리 같은 것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물질 또한 육근인 인간 존재들에게 종속되어 있다는 것이 십이처의 가르침인 것이다. 우주에는 인간의 삶을 결정하는 인간 외적인 것은 없으며 오직 인간만이 인간의 삶을 전개해 나가는 절대적인 권능을 가진 존재이다.

2. 인간 개체의 성립 과정

불교에서는 마음과 물질을 포함한 일체 존재의 본래적이고 본질적인 모습을 밝히는 내용이 십팔계설과 육계설이다. 십팔계설은 십이처에 인식작용인 육식이 참여한 것으로 질적으로 변화된 두 존재 즉, 육식과 육근 육경이 요소로서 참여해 중층적 구조를 이루고 있음을 의미한다. 육계설은 일체는 몇 개의 기본적인 물질요소가 결합해 이루어진 것으로 인도 당시의 사대설을 받아들여 지, 수, 화, 풍의 네 원소를 기본으로 삼아 이들 네 원소의 입장에서 십팔계를 재조명함으로써 地界, 水界, 火界, 風界, 空界, 識界로 구성된 육계의 구조로 일체 존재를 파악한 것이다.

인간 개체의 성립과정을 육계설에 설명하면, 지, 수, 화, 풍으로 대표되는 기본 존재들은 서로 다른 차원의 중층구조 속에 배열되어 주변 존재와의 관계 아래 자유로이 위치를 바꾸며 움직인다. 이 움직임이 어느 순간 집착이 가해져 정지된 일시적 형체를 "나[我]"라고 집착하는 것이다. 이렇게 아집이 가해진 형체는 기본 존재들이 일시적으로 멈추어 있는 상황으로, 다시 흩어지려고 하는 매우 불안한 상태라서 아집이 지속적으로 발생한다. 바로 이러한 불안한 느낌이 두 번째 단계에서 성립하는 것이다. 이렇게 불안한 존재라고 하더라도 일단 집착된 존재들은 나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불안하지만 '나'라고 재확인하는 세 번째 단계의 생각이 발생한다. 연이어 기본 존재를 하나의 개체로 붙여야 된다는 의도가 일어난다. 실지로 떨어진 기본 존재들을 하나의 존재로 결합시키는 네 번째 단계가 성립한다. 이러한 결합이 마무리되면 기본 존재들은 이전과는 모습이 다른 하나의 개체가 된다. 그래서 스스로를 이전과 비교하여 달라졌다고 파악하는 식별이 생긴다. 형체를 식별하는 기능 등의 다섯가지 오온(五蘊: 색, 수, 상, 행, 식)이라는 작용이 인간 개체의 근간을 이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이란 이렇게 성립된 생물의 한 부류에 불과하며 인간의 생명도 그런 과정 끝에 정규적인 생명현상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인간 개체의 형성의 근원적인 것은 일시적으로 집착된 물질적 <형체>와 그를 지속하기 위해 연이어 발생하는 <느낌> <생각> <결합> <식별> 등의 성립이라 할 수 있다.

3. 죽음의 실상과 올바른 수행

불교의 가르침 중에서 죽음의 문제와 관련된 것은 삼세 윤회설(三世 輪回說)과 삼법인설(三法印說)이다. 삼세윤회설을 통해 단멸론을 부정하고 삼법인설을 통해 영혼(靈魂)불멸론(不滅論)도 부정한다.
<중아함경>에 의하면 "만일 고의로 지은 업이 있다면 그 과보를 받게 되니 혹은 현세에 받고 혹은 내세에 받는다."라고 하여 삼세 윤회설을 뒷받침하는 핵심적인 문구가 있다. 이 내용은 죽은 뒤 내세에서 과보를 받을 존재가 있음을 의미한다. 삼법인설에서는 영혼불멸론적인 입장이 아님을 강조한다. 흔히 영혼불멸론자들은 사후에도 영속하는 불멸의 마음 주체가 있어 이를 자아라고 부른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석존은 이러한 주체를 육근 중에 의근(意根)에 포섭하고 있어 실체가 없는 무아(無我)라고 단정한다.

인간 개체의 형성 과정은 일시적인 <형체>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한다. 인간 존재란 상하 좌우로 오르내리고 흩어지려는 기본존재들을 한데 결합하고 있는 구조물이며 이 구조물의 핵심적인 원동력은 결합작용(연기에 의한 인연취산)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결합력은 한동안 지탱하다 끝내 한계에 이르면 붕괴해 버린다. 이러한 결합작용의 종식과 더불어 인간을 구성하던 무수한 기본 존재들도 상하 좌우의 본래적인 위치로 주변 존재의 작용에 따라 오르내리고 흩어지기 시작한다. 죽음의 실상은 결합력의 종식과 함께 큰 덩어리를 이루던 기본요소들이 본래의 자리로 흩어져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결합하고 흩어짐이 끊임없이 계속되는 것을 윤회라고 한다.

인간의 괴로움은 일시적이고 부분적인 <형체>를 '나'라고 집착하는 데서 비롯된다. 그 '나'라는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 집착하여 괴로움을 야기하는 형체, 느낌, 생각, 결합, 식별 등의 오온(五蘊)의 경계를 멸함으로써 괴로움의 극복이 가능하다. 이러한 오온(五蘊)의 벽을 멸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수행 방편을 필요로 한다. 그 길은 우선 인간의 성립과 죽음에 대한 바른 견해를 가질 것이 요구된다. 그것은 팔정도(八正道)와 사성제의 가르침을 실행하고 궁극적으로 일행삼매에 듦으로써 오온(五蘊)의 경계로부터 자유스러움을 확립하는 것이다. 이때 비로소 영겁의 생사고(生死苦)를 뛰어넘을 수 있으며 생사(生死)의 수레바퀴에서 불사(不死)인 법(法)의 수레바퀴로 회귀하게 되는 것이다.

불교는 인간을 철저히 자유의지적 존재로 규정하는 절대적 인간존중 사상임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불교의 참뜻과 함께 하는 마음수행을 통하여 죽음 및 윤회의 고리에서 풀려 날 수 있으며 그러므로 대 자유의 삶을 구가할 수 있음을 일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