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中道成立
1. 中道의 體
불교 가르침의 궁극적 목표는 양변에 묶이지 않는 중도(中道)를 성립(成立)시키는데 있다.
석존의 팔정도(八正道)는 쾌락과 고행에서 자유스러워 지는 중도(中道)의 법(法)으로서 삼천년(三千年)이라는 장구한 세월동안 마르지 않는 강물처럼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중도실현을 수행의 본질로 삼는 불가(佛家)의 긴 역사는 대 스승인 석가세존 한 사람의 철학 세계만을 지칭하지 않는다. 불조(佛祖) 이후 선문납자(禪門衲子)들이 깨달음을 통하여 체득한 고고한 삶의 궤적들도 경전의 한 축으로 자리 매김 되어있다.
교(敎)나 혹은 선(禪)이라는 명제가 달린 각자(覺者)의 중도실상 구현은 생생한 철학적 삶이다. 그것은 팔정도(八正道) 행(行)을 통하여 농익힌 대 서사시(敍事詩)로써 고요하고 맑으며 기민한 정신력은 시대를 계도하는 등불로서 자리매김 되어 있다. 이와 같이 불교는 무슨 절대자나 아니면 특정 대상에게 빌고 구하여 마음의 안위를 얻거나 목적을 성취시키겠다는 피동적인 종교가 아닌 스스로 닦아 능동적인 마음가짐을 배양하는 자력신앙이다.
진리의 스승인 자연과 계합되는 실상법[佛法]만 체득하면 인종과 부, 지식과 권력 등 세속 척도에 아무 상관없이 완성된 법(法)이 성립될 수 있다.
2. 中道의 法
체득된 중도는 고행과 자리이타(自利利他)의 보살행으로 다가온 공력의 화현이며 존재의 완성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중도(中道)의 법(法)은 주거나 받은 바도 없으며 이해득실과 반연(絆緣)에 묶이지 않는다. 이처럼 중도는 무상심(無相心)의 완성이다. 머물지 않는 마음의 힘인 무심(無心)으로 인연도리(因緣道理)를 혁파하며 그의 인생철학으로 시대적 소명인 무주상 보시를 행(行)한다.
공력(功力)과 인연(因緣)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무상도리(無上道理)는 무명에 사로잡힌 중생의 일상인 상대법(相對法)에 걸리지 않는 사유체계의 완성으로서 이를 일컬어 중도성립(中道成立), 해탈 열반 등 불교적 수식어로 장엄하고 있다.
중도의 법칙은 쾌락과 고행이 의식 세계에 자리잡고 있거나 탐·진·치 삼독이 육근, 육식, 육진을 자재하도록 수수방관하고서는 그 어떤 경우라도 내 안의 등불을 밝혀 의심을 걷어낸 중도성립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극한 신심이 바른 계율을 지어가고 참 인간으로서의 공력이 배가될 때 그에 상응하는 해탈의 인(因)이 감응한다. 참 인연으로부터 각성의 씨앗이 뿌려지며 그는 시절 따라 자비의 꽃을 피우게 되며 공력을 더할수록 더불어 지어 가는 삶의 좌표가 표출되기 시작한다. 이러한 심적 변화는 각성으로서 한 경계마다 단생인 이 몸에 의지하여 수시로 거듭 태어나는 환생의 법칙을 스스로 실현하는 것과 같다.
중생은 깨침이라는 여실한 공정을 거쳐 영원히 망실하지 않을 자신의 자산을 마련하게 되며 이렇게 비축한 힘으로 그 어떤 것에도 묶이지 않는 넓은 세상 즉, 자신의 화엄세계를 펼칠 수 있다.
완전한 중도성립은 회향을 실현하는 화엄세계의 구현으로서 그것은 불국토 서원과 그 원에 동참하는 지극한 마음일 때 표출되는 환희지의 삶을 말한다. 이와 같이 환희지와 계합되는 모든 길은 인연법으로서 내 안에 순수의 불씨를 지피는 동기부여가 우선한다.
순수의식은 정신에너지 전도에 의하여 취득한 결과이듯 중도(中道)의 실현은 자아(自我)라는 고유의 전구에 가없는 빛이 밝혀 지 듯한 심신(心身)에너지 파동의 결과다.
지고한 인간성인 깨달음은 초과학적 체계로 이루어져 있으며 정법(正法)은 자연의 섭리에 정확히 계합된 인간의 순연한 정신에너지에서 파생된 언사(言事)다. 이를 일컬어 진리의 체득자라할 수 있으며 진리는 일상(日常)을 지중이 여기는 겸허한 마음에 안착한다.
3. 中道의 用
중도(中道)의 용(用)은 깨달음의 실사구시(實事求是)로서 삼신불(三身佛)이 직접 화현(化現)하는 것이다.
법신(法身), 보신(報身), 화신(化身)으로 그 작용을 나눌 수 있는 진리의 실체인 삼신불(三身佛)은 존재의 근원작용이며 법향(法香)으로서 색(色)·공(空)이 혼존(混存)하는 생멸(生滅)의 법칙에서도 항상 여여(如如)하며 가용할 Energy로서 지복을 쌓은 인간성에 감응하는 최상의 혼(魂)이다. 이러한 혼(魂)은 중도성립의 체성(體性)이며 무념(無念)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중도의 혼(魂)은 인간의 절대성으로서 삶의 목표가 분명히 설정된 완전한 마음바탕일 때 발현되는 무상심(無相心)의 성립이며 중도(中道)의 용(用)으로 방광(放光)한다. 삼계(三界)를 자재하는 힘인 중도(中道)의 용(用)은 전생과 금생에 닦은 선업(善業)이기에 홀로 이루어짐을 결코 용인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주상보시의 삶, 다수의 행복을 인도할 자리이타의 행에서 돋아난 마음의 등불이며 모든 보살의 원력심과 같기 때문이다.
4. 나의 中道
인생은 生·老·病·死의 유전이며 인간을 포함한 목숨있는 모든 중생은 전생에 유여 열반하지 못한 전역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누구나 전생에 해탈에 이르지 못한 업장으로 이생에 태어나는 고(苦)를 받았으며 또, 반드시 죽어야 하는 숙명을 짊어지고 이 사바세계를 살게 되었다. 필연적으로 도래할 죽음에 이르러도 목숨과 명리에 집착한 삶과 희·노·애·락에 길들어진 세속적 가치관을 내려놓고 초연이 죽음에 순응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지금 고민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왜냐하면 필연적 죽음이 목전에 도래할 때 바쁜 마음이 한없는 회한만 일으키게 될 것은 아닌지를 냉철히 따져볼 수 있는 객관적 사고의 배양이 올바른 지혜 종자가 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이라는 당연한 이치에 입각한 결론적 이해의 힘으로 윤회 굴레에서 벗어나는 안심(安心)의 체(體)를 구축할 수 있으며 집착이라는 질곡의 삶에서 해방된 중도(中道)의 혼(魂) 즉, 무심(無心)에 이를 수 있다.
무심(無心)의 터전을 마련하는 방편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출세간 법이 아닌 희비가 엇갈리는 세간에서 그 묘책이 성립된다. 두타행을 하는 출가자는 청정한 계율 속에서 무심에 들 수 있는 길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며 보편적인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은 가장 합리적인 인생유전을 수렴한 이념의 실천 토대 위에서 중도(中道)의 묘(妙)를 성취할 수 있다.
즉, 가장 평이한 중도구축은 유·무위를 자재할 완전한 생존보장이 우선한다. 그것은 순연한 生·老·病·死와 그 이후까지의 역사가 자신의 손아귀에 쥐어진 듯한 세속적 가치관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중도성립의 길이 당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牛谷禪院은 일찍이 불조(佛祖)의 근본 가르침을 실현시키려는 원력으로 다난한 인생유전을 혁파하였으며 그 이념으로 禪Center를 기획하였다. 그것은 生과 老 病, 死와 그후 영가까지 안위를 보장받을 입지를 마련하였고 이 터전 위에서 중도(中道)의 묘(妙)를 터득한 현인을 하늘의 별처럼 탄생시켜 더 밝은 세상을 만들어 갈 것이다.
牛谷 禪Center 사업이념을 실현시키는데 있어 석존의 가르침을 근간으로 삼는 것은 오도되지 않은 근본불교는 인간이 착을 내려놓게 하는데 있어 그 어떤 가르침보다 심오한 철학과 정교한 방편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간파한 이력 때문이다. 이처럼 수승한 불법(佛法)을 숭상함으로서 일찍이 깨달음에 도달되어 지고, 피안의 세계를 열어 보이는 牛谷의 선법(禪法)으로 지극한 현실인 자신의 중도세계(中道世界)를 지어가라는 원(願)에서 시대의 중도(中道)를 피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