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주좌와 어묵동정(行住座臥 語默動靜)
여보게, 자네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 아직 선(善)·악(惡)을 구분하고 명암(明暗)을 가리며 곡마단 외줄을 타듯 정·부정의 길을 걷는가. 삼라만상은 항상하지 않고 실체가 없어 허망한 것임을 어찌하여 깨닫지 못하는가.
진리(眞理)로 다듬은 무심(無心)은 삶의 요소 그것이 무엇이든 분별하지 않을 수 있는 마음의 평정이며 곧 지혜(智慧)의 힘이다. 일생은 수없이 많은 사연이 교차한다. 한마음 돌리면 누구나 갖출 무심 세계로 귀의하지 못한 삶은 망상의 괴로움에서 헤어나기 어렵다. 분별은 훈습(薰習)이 되고 업인(業因)을 낳아 윤회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윤회(輪廻)의 인(因)은 행주좌와(行住座臥) 간에 정(靜)이 되지 못한 분별심이지만 잘 닦아 기른 선정(禪靜)은 지혜의 바탕이고 평정된 마음 그릇이며 가장 알찬 삶의 지평이다.
사람은 누구나 바른 인연을 만나 마음을 닦아 갈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되어있다. 그러나 집착에서 헤어나지 못하여 의식의 대 전환을 맞이할 개오(開悟)의 기회를 맞을 수 없으며 아울러 정(靜)을 확립하지 못한다. 그러나 수행원력이 높아지면 무엇을 위한 목적의식으로 살아가는 피동적인 삶이 아니라 스스로 중심 잡으며 살아갈 수 있는 자정능력이 구축된다. 이를 행주좌와 어묵동 중에도 흐트러지지 않는 정(靜)이라 한다.
무상[無心]과 동색인 정(靜)은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항상 밝고 건전한 사고로 무장되어 있어 세속 반연(絆緣)이 그를 어쩌지 못한다.
또한 정은 확신이며 자연섭리에 순응하는 지혜의 원천이며 우주를 다 담을 수 있는
마음그릇으로서 만상의 이치를 통달할 선(禪)과 나란히 한다.
만추(晩秋)에 선(禪)과 한 몸인 행주좌와 어묵동정(行住座臥 語默動靜)을 간략히
論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