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에 심은 소나무
인간 삶의 조건을 충족시켜 주는 요소들 중에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식량자원이다. 모든 생명체는 반드시 먹고 배설해야만 하는 필수조건에 매달려 있으며 그 중에 인간의 식성은 유달리 다양하며 기호에 맞추려 무던히 애쓴다. 아무리 편리한 첨단이기와 근심걱정이 없는 시대를 산다하여도 먹거리가 줄거나 없어진다면 행복은커녕 그날이 바로 아귀지옥으로 떨어지는 날이다.
세상의 평화와 개인의 부귀영화도 넉넉한 식량자원이 확보된 사회기반 위에서만이 가(可)하다. 국가의 존망과 건전한 사회관은 물론 인간의 근본을 형성하는 요소들도 좋은 시대와 넉넉한 식량자원을 모토로 발전하고 결정되어진다. 먹지 않는 성인군자 없고 사흘 굶어 담 넘지 않을 범부 없다. 근자 첨단이라 일컫는 물질문명에 편중되어 가장 소중히 여기고 관리해야 할 식량자원의 소중함을 놓치고 있는 아찔한 오류의 실상들이 여기저기서 드러나고 있다.
문전옥답에 소나무를 심어놓고도 태연자약할 수 있는 지금 우리들은 먹지 않아도 되는 새로운 인종으로 변신 중인가. 아니면 허무한 권세와 부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비뚤어진 시대를 일구는 선조가 되는 길을 걷고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쯤 되돌아 볼 때이다. 온 나라가 부동산 열풍에 휘말린 이즈음 만년 보배인 전답(田畓)에 소나무를 심어 땅값 상승을 바라는 작태는 죽은 정책, 미래가 없는 사회를 창조하는 위정자들의 치적이다. 땅 투기를 통한 국가경제효과는 아랫돌 빼서 윗돌로 삼는 짓이고 내 안의 쌈지 돈이다. 그런 돈으로 싼 외국의 식량을 도입하여 국민을 먹여 살리겠다는 생각으로 논에 소나무를 심는 것을 방조하는 사회라면 공업화의 번창과는 상관없이 우리는 이미 망국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한 나라의 국토는 궁극적으로 개인의 소유가 될 수 없다. 잠시 자산 가치를 지니고 권리로서 관리되어질 뿐이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20년 전만 하여도 이 나라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식량을 확보하기 위하여 농지를 정비하고 식량생산에 총력을 기울였다. 범 국가적인 투자가 되어진 국토에 개인의 영리를 위하여 논에 소나무를 심는것은 인류의 생존을 위태롭게 하는 야만행위이고 섭리를 그르치는 역천자(逆天者)와 다르지 않다.
경기도 양평의 어느 국도 변에는 내보란 듯이 논에 소나무가 즐비하게 심겨져있다. 늘 푸른 소나무의 아름다운 자태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국토를 새로 꾸미는 치산치수 사업으로 논에 소나무를 심는 것이야 일석삼조의 효과를 기대한다지만 개인의 영리를 위하여 식량생산의 기반을 허물어뜨리는 것은 전체사회에 대한 배신과 다르지 않다. 내 귀에는 몸서리치던 보릿고개라는 말이 아직 생생하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식량 자급도는 3할에도 못 미친다는 통계와 공업화로 매년 식량 자급도가 줄어든다고 한다. 급격한 기후변화 또한 심상찮다.
어느날 식량자원 부국들이 공존공생의 인류이념을 저버리고 식량을 무기화하는 날에는 지금 아프리카 일부 및 서아시아 후진국에서 벌어지는 기아의 참상보다 우리에게는 몇 배 더 큰 고통으로 다가올 것이다. 더 늦기 전에 부존자원과 식량기반이 약한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고 대처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잘 못될 미래에 대한 분명한 대안없이 지금의 기우가 현실로 다가오면 이 땅의 인구 7할은 초근목피로 연명하던지 아니면 어디론가 사라져야 될 운명에 처할 것이다.
시대를 오판하여 생존 기본조건을 등한시 하다가 하룻밤 사이에 세계의 이웃들이 변심을 하는 날에는 작위로 논에 심겨진 초라한 소나무가 곧 미래의 내 모습이 될 것 같아 몸서리가 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