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뒤안길

 

봄의 전령은 여명에 문뜩 다가서는 나그네인가 보다. 오늘새벽 서울 한 복판인 안국동 내 우거(寓居)에 뜻하지 않는 해동기별이 닿는다. 나의 지난겨울은 모진 한파와 함께 차마 견디기 어려운 인내를 강요하였다. 시공에 걸림없는 천상에 드러누워야 만이 온전한 숨을 쉴 수 있는 내 기질로 말미암아 본의 아니게 주변 인연들에게 고통을 전가하기도 한다. 특히 속세의 꿈을 몽땅 내던져 버린 벌거숭이로 숨쉬기조차 힘든 서울에서 살게 된 금년 겨울은 더욱 그렇다.

천지가 감응하던 그 날이 없었다면 보편적인 속세의 욕망에 묻혀 살아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을 난 그렇게 살지 못할 운명으로 거듭났었다. 이생에 부처공부를 해본 이력이 전무한 상태로 그 무엇에도 의지하거나 기대어 쉬어지지 않는 나날은 필설로 형언키 어렵다. 반하여 상대하면 그대로 이치가 훤히 드러나는 법열의 순간 순간들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목불인견인 실상의 벽을 넘지 못하고 속세의 욕망과 타협하였을 것이다.

내 앞에 아무 것도 둘 수 없는 참 진리(眞理)로의 귀의도 처절하리만큼 가혹하지만 동시에 천지를 갈아엎을 듯한 용맹심을 놓지 말아야 하는 것이 불(佛)세계로의 티켓이다. 그것은 불보다 더 뜨겁고 얼음보다 더 차가와 타협의 여지가 없으며 잠시라도 엄격한 이성이기를 망각하면 그 경계를 맛본 것을 끝으로 급속히 퇴행한다. 길 없는 길을 홀로 걷는 어려움을 면하기 위하여 상을 갖추어 안주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처음부터 불교라는 상을 인연 삼지 않았거니와 부처는 종교이전이라는 만고철칙이 몸 속에 피처럼 배여 있어 이 말법시대와는 더욱 먼 괴리(乖離)를 만들어 안팎으로 고난을 부르는 셈이다.

봄소식은 무위로 내 집 댓돌 위에 다다랐으나 아직 나의 봄은 요원하다. 어쩔 수 없어 멍석을 깔았던 牛谷禪院이라는 명문이 이제 공익법인으로 거듭나야 되는 시대의 요청과 종합 禪센터 건립을 위한 이론성립과 여러 계층을 위한 참선교육 계획안 등은 더 많은 반연(攀緣)을 짓는 것이기에 나에게 있어 봄은 더욱 멀다. 나의 내면세계 심층에는 잠들지 않는 기운이 항상 고물거리고 있다. 봄보다 더 성성하고 알싸한 이 힘으로 초야에 파묻히면 위없이 안락한 인생을 꾸밀 것을 굳이 망실된 불(佛)세계의 청사진을 다시 그리려는 염원을 놓지 않아 겨울보다 더한 겨울의 삶을 자청하는 꼴이다.

부처마음인 무심(無心)은 애끓는 인고의 결정체이듯 봄 또한 힘겨운 사람들의 간절함이 빚어낸 자연의 희사와 같다. 나와 함께 힘든 겨울을 보낸 인연들에게 보다 나은 세상을 열어줄 봄소식이 별빛처럼 다가와 일구월심으로 하늘을 우러르는 오늘 새벽, 인고의 겨울 그 뒤안길에 새겨진 나의 일상들을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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