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장 없는 門
지난 한달 동안에 빚어진 사연은 짧은 하루 긴 고뇌의 시간이었다. 천년의 어둠을 밝히듯 불법(佛法)과 선(禪)이라는 명제에 묶여 황무지를 걸어간 절대 고독의 뒤안길에는 홀로 두지 못할 반연(攀緣)들이 수없이 생성되어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미증유의 선도(禪道)를 헤쳐온 나의 지난 행적을 뒤집어 해석하고 이행하면 지금쯤 세인들은 나를 신비로움과 이적을 일으키는 사람으로 재 포장하여 인간 원숭이로 만들어 놓았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이야기다. 한마디로 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도사행사나 교주로 추앙될 개연성이 늘 상존하는 오류의 늪 한가운데 놓여진 삶이었다.
지금까지 牛谷禪院 이름으로 제방에 널리 알려진 오뚝한 선법은 불조(佛祖)의 심인(心印)에서 한치만 벗어나면 세간의 하근기 심신수련단체들이 추구하는 무슨 도술이나 법력으로 전이되었을 것이다. 즉, 수행이라는 이름으로 무슨 도사집단이 되었든지 아니면 기(氣)수련이라든가 특수한 신흥종교로 반전될 가능성이 충분히 잠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보편적인 인간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대폭발의 체험과 그로 인하여 직접 실연하고 정제시킨 심신에너지[氣]는 약간의 교리만 각색하면 범부 중생들이 염원하는 현란한 추종의 대상이 되고도 남는다.
정신수행자들이 전 인생을 투신하여 찾아 헤매는 무슨 도력(道力)과 기(氣)라는 것을 나는 상머슴 밥먹듯이 구사한다. 이러한 이치를 세속적 가치관으로 본다면 체득된 특이한 힘으로 손쉽게 부와 명리를 구할 수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으며 또 그 알량한 방법도 꿰고 있다. 그러나 한 티끌이라도 상(相)으로 내세운 것은 반드시 무너져야 하는 법리를 더 잘 알기에 원래 소명인 심법으로 임할 뿐이었다.
무심삼매(無心三昧)는 절대고독의 향(香)이다. 그것은 중생이 가져야할 영원한 자산으로서 세속의 온갖 바램을 접은 혹독한 일상과 가혹하리만큼 절박한 단애에 가 닿은 절대고독이기를 강요한다. 오매불망 고지가 저기임을 가르치는 牛谷禪院의 철학으로 인하여 선원 소임자들의 고행과 애환은 고달픔의 한계를 벗어난지 오래다.
오늘날의 牛谷禪院이 있기까지 내면의 뼈아픈 사연들이 결코 자랑스러울 수 없다. 그러나 스스로 할 수 없는 입지로 내 몰려진 심신(心身)으로 말미암아 체득된 무소유적 힘은 그 어떤 세속적 가치관도 능가한다. 다시 말하면 유위상을 세우면 언제라도 특수한 정신단체를 이끌 자질을 갖춘 것은 말할 것도 없으며 그로부터 세속적인 모든 욕구의 성취도 손쉽게 이룰 수 있는 역량도 당연히 확립하고 있다.
확고한 신념 없는 마음공부와 무슨 수련이라는 이름으로 익힌 어설픈 힘들은 불 확신의 도피처이기 때문에 어느 시점에는 대부분 불행스러운 타력에너지[神氣]와 접목한다. 한 경계만을 추구하는 수련은 대다수 황당한 미래예언과 역이나 신에 의거하여 인간의 길흉화복을 점치거나 혹은 무슨 기수련 등등으로 질병을 낫게 한다는 사술(邪術)에 초점을 맞춘다. 조금 더 진행된 자들은 신흥종교를 만들거나 소속된 종교집단에서 독립적 행사를 하는 경우 등이다. 그러나 선도리(禪道理)에 입각하여 다듬은 평정의 힘은 앞서 열거한 술수와는 비교할 수 없는 광대한 역량이다.
불도에 들어선 공부자들도 어느 정도 힘이 생길 때 올바른 가르침을 단 한치라도 벗어나면 교주를 꿈꾸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또, 이 말법시대는 무심(無心)을 맛 볼 수 없어 정신 수행자들은 막연히 육신을 길들이는 낮은 수행을 하고 있다. 이처럼 대책 없이 타락한 정신사조가 횡행하는 시대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심신을 다 바쳐 맨 나중이자 마지막이라는 못난 세속적 가치관에 충실하는 일 뿐이었다.
하심(下心)의 본분사인 낮은 곳에 머물지 않으면 혹시라도 우리의 선 논리가 삿된 교주의 꿈으로 비추어질 수 있다는 우려와 세속적 반연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항상 나를 질책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평이한 세속적 참여의 길인 공익단체 사단법인을 설립, 참선과 정신수련에 관심있는 인연자들을 수렴할 것이며 또 이를 실현시키려 한다.
아울러 각고의 인고로 세운 지고한 선철학의 토대 위에 남녀노소 누구나 동참 가능한 牛谷 禪 Center의 이념을 확립하였고 그 위에 화엄세계의 초석을 놓아 각자의 원(願)을 회향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인연 있는 모두는 자유의지로 牛谷 禪 Center를 마음의 고향이자 안심(安心)의 터전으로 삼을 수 있는 권리가 있으며 그러한 신념들이 모여 삶을 더욱 기름지게 하고 영원한 안식을 취하라는 우리의 작은 바램이 빚어낸 소산물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산문(山門)을 걸어 잠그고 그 이름마저 지워야 한다는 명제를 부여해 주었다. 애써 그려놓은 그림을 미련도 없이 불 태워 버리듯 내 삶의 흔적 그 자체를 모두 접어버릴 빌미를 찾아 엄동설한에 산하를 헤매고 다녔다. 이것만이 선(禪)이라는 무한 명제에 삶의 무게를 다 실어온 내 질곡의 인생을 해방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며 세속 잡사에 묶여 구구한 사연을 엮어낸 내 과거를 확실히 지우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회향의 도리를 왜곡한 일부 학인들의 언사는 불문곡직하고 산문을 폐쇄해야 될 명제를 만들었고 시운은 나를 황량한 광야로 내몰아 갔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牛谷禪門은 안에서 대문을 걸어 잠글 빗장고리가 없었다. 중생의 속성인 배반조차 염두에 두지 않고 오로지 선 이치로 미루어 풍진세파를 헤쳐 나갈 힘만 길러주면 누구나 가마솥 숭늉 같은 구수한 보살도로 거듭 날 줄 믿었다. 왜냐면 정신수행은 영원한 귀향 처로 돌아간 자신의 몫이기에 가장 낮은 곳으로 임하는 내 삶의 모습에서 각자는 인천(人天)의 스승으로 인도코자 하는 牛谷의 선 철학에 회향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회향 없는 수행은 무용하다. 즉, 단(檀)[보시]바라밀을 토대로 올바로 깨닫지 못하면 자신만의 초월적 삶을 위하여 시대적 소명을 기피한 이기적인 이면이 그대로 드러나 보이는 것이 심법(心法)의 맹점아닌 맹점이다.
내 안의 금수를 접하는 순간 나는 좌절하였고 그 날로 산문폐쇄 선언을 한 후 훌쩍 떠났다. 제방에서 독보적 자리를 굳힌 사이버 선원도 당연히 폐쇄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牛谷山門은 대문을 걸어 잠글 빗장을 달아 두지 못한 무경계가 화근이 되어 기어이 반연(攀緣)을 끊어내지 못하였다. 경진년 동짓달에 牛谷山門을 영원히 폐쇄하려던 계획은 뭇 사연으로 원래로 되돌려 졌다. 하지만 불타(佛陀)의 삶에 비추인 존귀한 牛谷의 선법을 삿되거나 헛된 곳에 소진하려 들면 그 날로 牛谷山門은 영원히 폐쇄될 것이다. 폐 일언하고 앞으로 내 들고 남이 부자연스럽지 않도록 대비할 것임을 고지하면서 오늘 속진(俗塵)의 늪으로 되돌아서게 된 일화를 선도(禪道)에 새겨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