禪으로 定을 캔다
선(禪)은 물과 같기에 자위하는 것으로부터
자유스러워 지기 위한 정신 수련 중 가장 지름길로 가는 수행법이다. 깨달음을 얻지
못하면 인간은 관습의 노예와 같기에 유·무위 법계가 자신의 기억 소자 안에 들어올
때 비로소 이해를 하게 되며 유위로 구획된 것만을 존재로 인정하는 편협증에 걸려
있는 소심한 동물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의지라는 것이 있어 스스로 아닌 것을
알게 되는 판단력으로 한쪽으로 치우친 사고의 산물인 집착으로부터 벗어나 영원히
자유스러워 질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이 인간이다.
참 선은 지금 보고 듣고 느끼는 것으로부터도 여여해 질 수 있는 큰마음 그릇이 되는 공부를 지어 가는 것이기에 마음속에 부정한 생각의 찌꺼기가 남아 있다든지 또는, 현실을 외면한 채 자기가 알고 있는 것만이 수행의 본질이라고 주장하는 견해가 강하면 마음의 자유를 얻기가 참으로 힘들게 된다.
참 선 수행 방법을 기능적으로 표현하면,
마음속에 일어나는 한 생각에 생체 에너지를 투자하거나 각인 시켜 그것을 붙잡고
있지 않아도 되는 확신을 키워 가는 과정이다.
마음이라는 것도 생명력 있음을 확인해 주는 호흡 속에서 일어나는 무위 법계의 에너지 작용이다. 호흡 즉 들숨과 날숨간에 일어나는 잡다한 생각 에너지를 뇌 세포 한 곳에 묶어 두지 않고 자신의 육신 구석구석으로 분산시켜 저장해 두어도 배우고 익힌 것이 빼앗기거나 분실되지 않는다는 절대 믿음에서 시작되는 생체 에너지 운용 법이 선 도리다.
인연에 의하여 믿음과 확신이 강해지면 집착에 묶여 있는 마음이 엷어지면서 정체된 자신의 생명 에너지를 스스로 회전시킬 수 있는 단계에 이르게 되면서부터 육근을 토대로한 정신 에너지가 차츰 맑아지게 된다. 맑게 다듬어진 정신 에너지가 일정한 대상에 묶여 있지 않을 수 있는 단계로 잘 여물어 지면 이때부터는 유·무위 법계로부터 끄달림이 없어지는 대 자유에 이르게 된다. 이것을 인용하면 해탈지이고 원각지에 이른 모습이며 실체적인 대 자유인이다. 기혈 회전 작용이 원만하여 걸림이 없어진 마음을 표현한 미사여구는 무궁무진하여 이 세상 종이를 다 사용하여도 부족하며 또 선에 입각한 마음 바탕을 문자로 다 그려낼 수도 없다. 걸림 없는 마음은 곧 생활이며 만상을 긍정으로 바라보는 정신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참 선법을 기교적으로 풀어놓으면 수행자들이
현상을 이해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기는 쉽다. 그러나 선은 잘 이해하는 마음을 만들어
가는데 목적이 있지 않다. 이해한 그 마음도 습이 남아 있기 때문에 맛을 들이면
굳어서 업이 되는 것이 선 도리다. 참 선은 어둡고 협소한 중생 마음인 내 마음을
밝히고 넓히는데 그 목적이 있으며 이것을 일컬어 마음 농사짓는 법이라 칭하기도
한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 자신이 직접 논바닥으로 들어가서 땀흘리며 농사를 지어
봐야 일용할 양식이 만들어지는 의미를 분명히 알 수 있듯이 선법의 의미도 섭리에
순응하는 농사법의 이치를 터득해 내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근자에는 참 선 수행을 한다는 사람들이
순진 무구한 농부들처럼 직접 겪어 볼 생각은 하지 않고 기껏 문자를 익히거나 잡생각을
물리친다고 죽어 있는 언어인 무슨 화두에 매달려 면벽하여 우두커니 앉아 시간을
죽이는 것을 참 선의 정법인양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비일비재하다. 그래도 이
정도는 불행 중 다행이다. 날뛰는 마음을 꾹 누르고 앉아 있으면 미친 마음을 다스리는데
약간의 약이라도 될 수 있을 것이다. 항간에는 멀쩡하게 생긴 사람들이 인간 도리마저
내버리고 무슨 해괴한 호흡법에 매달려 인생을 탕진하는가 하면 풍악까지 곁들인
요상한 동작을 익혀 가면서 감각을 살려내는 것을 공부로 삼고 있는데 이것은 스스로
낮은 근기의 인간이 되려고 돈 들여가며 악을 쓰는 모습이다.
근기가 낮은 사람들이 마음 수행한답시고 몰려다니며 염원하는 그 마음을 문자로 인용하면 이런 저런 방법을 동원하여 무슨 도를 닦으면 고통스런 이 세상이 아니고 살고 죽음이 없다는 저 세상에 태어나거나 아니면 영원히 살수 있는 영생을 얻을 수 있으며, 머리에 먹물이 조금 더 들어 있는 사람들은 당장 건강과 명예를 살 수 있고 돈버는 밑천이 그 속에 들어 있는 무슨 요술 단지를 가질 수 있는 것 쯤으로 알고 벌이 꿀을 만난 듯이 덤벼 들고 있다. 말법 시대의 대표적인 수행 모습은 정신적 공황에 빠져든 사람들 심리를 악용하는 단체들이 곳곳에 간판을 걸어 두고 장사판을 벌이는 경향이 있다. 불문곡직하고 기능에 의존하는 무상 도리는 인류가 존재한 이래로 존재하지 않았으며 인간의 종말이 도래하는 그 날까지도 감각으로 익혀질 수 있는 무심법은 없다.
사람이 마지막으로 해야 될 절대 명제인 마음 농사법인 선 도리는 무슨 기법을 익혀서 가 닿을 수 있는 길이 아니기에 한마디 언어로 참 선법을 요약하라 하면 나는 '선(禪)은 바름이 일어나는 이치를 좇아 매진할 수 있는 확신이 있을 때 비로소 정(定)의 결실을 가질 수 있다'라고 말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