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세계 통과 체험기[Ⅰ]∼[Ⅲ]
사후세계 통과 체험기[Ⅰ]
본문에 앞서 경전을 비롯하여 선각자들의 구도역정에서 그 누구도 이 몸 그대로 사후세계를 통과하며 전생숙업을 소멸시킨 사례가 없고 존재의 절반 무위법계를 더 상세하게 표현할 적절한 용어가 없어 유감스럽다.
나는 홀연히 저승이라 할 사후세계, 즉 무위법계 전 과정을 통과하면서 숙업을 소멸한 아주 희유한 체험이 있다. 때아닌 폭설이 하얀 밤을 만들어 놓았던 92년 3월 초하루 강원도 속초 바닷가의 한 콘도에서 또렷한 인식과 항거하지 못할 오체투지로 8만4천 저승세계를 다 통과한 경계체험을 말한다. 업보중생은 인과에 따른 여러 모습의 생멸을 거듭하면서 신(身) 구(口) 의(意) 삼업(三業)을 정화하지만 나는 하룻밤 꼬박 8시간동안 자아(自我)가 육신으로부터 초탈된 상태에서 또렷한 감각과 인식으로 사후세계를 통과하며 숙업을 제도 당하였던 희유한 역사를 정법이 멸한 이 무명시대 불도(佛道)의 등불로 밝혀놓는다.
이생의 생명력으로는 도저히 진입할 수 없는 차원의 저승세계 그 단절의 강 건너에서 겪은 무위법계 만행은 속성으로 전생숙업을 소멸하고 식(識)의 대전환을 이루는 드라마틱한 계기가 있었다. 불교는 문외한이었지만 개오(改悟) 관문을 통과한 불가사의한 역사로 말미암아 오늘날 사단법인 우곡선원과 실상관법이 태동되었다. 그로부터 강산이 두 번 바뀌어 우곡선원의 실상관법은 역동적인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은 실사구시로 해탈의 본래면목을 일러주는 이정표가 되었다.
중생업장이 소멸된 무심지혜는 염라대왕도 어쩌지 못하는 정신력이며 영원한 자산이다. 생사에 걸림 없는 깨우침을 위하여 불도를 닦지만, 정법이 소멸된 말법시의 심신수행은 거의 사마외도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모습들이다. 상(相)과 환(幻)에 덧씌워지는 구도와 종교는 식(識)의 정화가 아닌 육근(六根)에 맛 들이는 착업이기에 닦을수록 어둡고 해탈은 아득하다. 특히 속물 중생의 무한 탐욕 충족과 저승세계의 두려움으로 구원종교에 매달리지만 머잖아 죽음의 문턱에 들어서면 구원은커녕 업경대에 비추어진 자기 죄업에 경악하는 영혼뿐이다.
대우주 일체만법은 색(色)과 공(空)의 조합이지만 말법 종교는 공(空) 도리 요해가 불가능하기에 저승이라 일컫는 존재의 절반 무위법계를 신비나 가설로 꾸며 혹세무민한다. 더구나 몸 없는 중생 신(神)에 함몰되거나 천당 지옥에 관한 잡설에 기대는 구도는 닦을수록 아둔하고 깨우침은 멀어진다. 세간의 엉터리 종교와 사후세계이야기는 현대문명 시대와 도저히 함께할 수 없는 낭설이지만 지식인들이 구원종교에 목매는 것은 인간사 최후의 과제인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섭리에 빈곤한 영혼 때문일 것이다.
이 세상 모든 종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만들어졌고 제각각 영혼의 안식처를 자처한다. 이즈음 SNS에 나의 사후세계 통과 체험기를 띄우는 것은 혹세무민의 온상 사이비종교와 주술사 진령군의 난동이 가뜩이나 혼탁한 정치사회를 휘젓는 이 말법시대 정신계의 새로운 이정표가 되기 위함이다. 왕후장상과 성현도 죽음만은 피하지 못하였듯 세상에 태어난 모든 생명체는 반드시 죽음을 맞이한다. 어느 날 들숨 한숨으로 육신에 깃들었던 생명력이 끝나는 순간부터 오감으로부터의 단절이고 이승과의 이별이지만 육신에 깃들었던 정신은 살았을 때 지은 업(業)을 따라 미지의 저승세계로 들어서는 외로운 영혼이 된다. 호흡이 끝나는 찰나에 마주치는 저승은 부모 형제와 배우자, 자식, 친구 등 정리와 사랑으로 애지중지하던 모든 인연은 물론 신앙적 구원자나 절대자 그 누구도 등장하지 않는다.
제행(諸行)이 무상(無常)하고 제법(諸法)이 무아(無我)인 사바세계 본래면목을 깨닫지 못하고 부질없는 속세의 욕망을 좇아 허둥지둥타 한숨에 생명의 끈이 뚝 떨어지는 즉시 닿는 저승은 더 없는 공포와 고통, 적막뿐인 암흑세상이었다. 육신의 온기가 식는 것과 비례하여 밀려드는 공포에 휩싸인 내 영혼은 육신에 깃들어 주인공 노릇 하였던 8만4천 무명업장이 마치 육신이 낱낱이 분해되어 회자정리 당하듯 안타까움과 처절함으로 시작되었다.
난 속초에서의 그날 생물학적인 죽음이나 자발적인 의지가 아닌 찰나에 호흡이 없는 그럼에도 인식이 선명하게 작동되는 저승이라는 사후세계로 진입되었다. 해탈지혜는 생사를 뛰어넘은 마음의 힘이듯 참선공부는 살아서 전생업장을 소멸하는 인간세상에서는 유일무이하고 신묘한 심신수행법이다. 그 당시의 난 오묘한 참선법은커녕 영남 알프스에서의 불가사의한 인연으로 어쩔 수 없는 풋내기 불자였지만 희유하게도 저승인 무위법계가 중생업장을 소멸하는 참선도량이 되었다. 불교는 업장이 소멸된 깨끗한 영혼으로 순간순간 지혜로운 사람으로 거듭나는 해탈법이 코어다. 그날 찰나에 항거할 수 없는 힘에 포획된 듯 이승과의 단절이 되는 순간 헤아릴 수 없는 암흑에 둘러싸인 자아(自我)가 경악하는 장면이 첫 번째 저승 관문이었다. 오욕칠정으로 길들여 놓았던 습인이 사후세계 첫 관문에서의 경악스런 공포와 찢어지고 으깨어지는 육신에서 분리되지 않으려고 버둥거리는 영혼의 처절함은 두려움 그 이상이었다. 무명중생이었던 난 사후세계에 구원자나 절대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할 틈도 없이 와락 찢어지는 공포와 사지를 찢어 발리고 몸과 정신 세포 하나하나를 낱낱이 헤아려 업 인자를 뜯어내는 듯한 처절함은 누구에게 구원을 바랄 여지도 없었다.
뼈를 우려내는 듯한 저승형벌은 육신에 깃든 훈습이 버틸 수 없는 지경까지 고통이 죄어지다가 어느 순간 훌렁 천길 절벽 아래로 뚝 떨어지듯 하였다. 그로부터 단절의 벽에 가두어진 형벌은 사지를 찢어발기는 듯한 고통이 여러 단계가 있었다. 대다수 영혼은 저승 초입인 이 경계에서 무간지옥에 떨어지든지 좁쌀만큼의 선업이 남아있으면 몸 없는 중음신(中陰身)으로 대기하고 아니면 하루살이 같은 미물이나 축생, 인두겁 쓴 금수의 몸을 받는다. 명부전 초입에서 지옥형벌을 치르고 만물의 영장 인간 몸을 받는 것은 이승에서 자비공덕을 지으라는 명왕의 뜻이지만 대다수 명(命)을 거역하고 삼독심의 노예가 된다.
난 이날 이전까지 불교는 물론 구도와 심법은 완전한 백치였다. 지금 이 세상에는 별짓으로 도통하고 구원받아 천국 가겠다는 전문 종교인들이 수억 수십억인데 하필 시대를 앞서가던 청년사업가의 운명을 한순간에 뒤튼 것은 유·무위 법계를 아우른 정법을 구현할 적자를 선택한 제불의 뜻이 아니라면 그 어떤 이유로도 내 삶과 부합하지 않는다. 인간사에서 전무후무하게 이 몸 그대로 사후세계 전 과정을 통과하였던 것은 죽고 다시 태어나는 윤회 없는 생생한 기억으로 8만4천 사후세계를 정의(定義)하여 무명시대를 밝히라는 명(命) 때문일 것이다.
본론으로 돌아와 세상에 공짜가 없듯 저승도 전생 빚을 갚는 처절한 통과의례를 거치고 한 차원 높은 영혼으로 발전할 기회가 주어지는 시스템이었다. 저승은 이생과는 정반대여서 업장이 가벼워질수록 고통의 강도가 더욱 선명하고 단호한 것은 사태를 인식하는 식(識)이 그만큼 맑아진 탓이지만 이 지점에서는 고통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뻗대던 의지도 끊어졌었다. 업을 제도 하는 자와 덩어리로 지옥형벌을 받는 자, 극한의 괴로움에 자지러지는 자와 그런 모습에 경악하며 안타까워하는 자와 이런 처절한 상황을 물끄러미 인식하는 자아(自我)가 동시에 작동하는 기이한 5차원의 인식세계를 딱히 설명할 방법이 없지만, 불꽃같이 선명하였다.
저승세계를 통과하는 수많은 차원의 담금질 과정에 잠시 압박이 멈추어지는 틈새로 속물근성이 삐져나올 때마다 끊어지는 아픔이 죄어왔다. 저승 초입부터 육신과 정신세포를 낱낱이 분해하여 그 속에 기생하는 집착의 인자 하나하나를 뜯어내는 청산과정은 상상 그 이상의 고통이었지만 숙업은 그 정도에서 모두 소멸되지 않았다. 가혹한 지옥형벌을 면하려면 전생 습을 완전히 놓아야 하지만 처절한 고통 속에서도 틈틈이 상대분별이 발동하는 것은 억겁 세월 동안 쌓인 숙업이 그만큼 질기다는 반증이었다. 결코 용서라는 것이 없는 저승형벌은 아상이 꼼지락거릴 때마다 더 큰 고통을 유발시켜 아주 작은 틈새에도 자아가 머물지 못하도록 몰아붙였다.
단절의 벽에서 순간순간 지옥형벌이 멈추어진 경계가 나타난 것은 한 차원 높은 영혼과 몸을 받는다는 기미였지만 내 영혼은 해당 사항이 없었다. 야속하게도 난 미세업장마저 지니지 못할 극한의 고통이 가해져 전생 업장을 몽땅 놓고 버리지 않으면 안 될 처지로 내몰렸었다. 만약 이 지점에서 저승형벌이 멈추어 졌더라면 자기 소리가 없는 무기(無記) 근기를 과묵한 생불쯤으로 알고 추앙받느라 지금쯤 세상이 온통 시끌벅적할 것이다.
제방의 사후세계이야기는 대다수 죄와 벌에 의한 심판으로 암흑과 광명 누구의 인도를 받아 어디로 가는 등의 이승을 그대로 옮겨 놓은 2차원의 그림이다. 그러나 내가 겪은 사후세계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승의 상대적인 인식과 자의적인 역량이 작동되지 않는 저승은 암흑과 공포 고통, 무기, 유혹 등 1차원의 오직 그것뿐 타의에 의한 구원이나 자의적인 상황변화는 절대 불가능하였다. 사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험악한 형상의 사천왕상은 저승과 이승의 경계지점을 관장하며 영원한 자유 피안의 세계로 진입하려는 영혼이 저승을 통과하며 업을 완전히 소멸시킨 청정법신 여부를 점검하는 불세계 최후의 신장이다. 사바세상 일체중생은 언제 어느 생이든 반드시 한번은 사천왕을 만나야만 사생육도를 면할 수 있지만 8만4천 지옥관문이 가로막혀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종교 속성이 그렇듯 해탈법에 대한 앎이 얕을수록 요란한 가설로 저승세계를 묘사하고 허구인 절대자를 설정하여 사후세상의 안위를 보장받는다는 교리가 단골 메뉴다. 다행히 불교는 사생육도가 무섭고 괴로우니 사람일 때 깨달아 너 스스로 생사윤회를 면하라는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가르침이지만 청맹과니 무명시대는 여전히 마이동풍이다. - 2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