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세계 통과 체험기[Ⅲ]

 

해탈의 삶은 별난 재주가 아니다. 불연(佛緣)으로부터 불(佛)씨를 받아 지극한 마음으로 불심(佛心)에 묻고 가꾸며 피안의 세계에 이르는 성스러운 인생여정이다. 불자들은 무심씨앗을 얻기 위하여 계를 실천하고 바라밀행으로 무심인연을 기다리지만 야속하게도 줄탁동기 시절인연은 언제 어느 생일지 기약조차 없는 것이 불도다. 경·율·론 삼장을 모두 섭렵한 삼장법사가 용빼는 재주가 있어도 자기 의지로 무위법계 입성은 불가능하듯 돈오(頓悟)가 인연소산인 것은 유·무위법계를 아우른 업장소멸이 곧 해탈성불의 정도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불은 두 가지 필수조건을 전제한다. 첫 번째는 이승 유위법계 일체 상대가치를 초월한 무소유심과 자비희사 공덕의 결실인 유여열반이고 두 번째는 살아서 저승을 통과하며 전생숙업을 소멸시킨, 즉 무위법계를 관통하는 무념무상의 영속인 무여열반이다. 불교의 해탈법이 두 세계관으로 이루어진 것은 유·무위법계를 아우르지 않은 해탈열반도 무심법력도 없기 때문이다. 교리에 달통하고 청산유수 같은 설법이라도 유·무위법계 섭리와 상통하는 비유법이 아니라면 타인의 영혼을 농락하는 마구니 소리에 불과한 것은 그가 유·무위 두 세계관이 완성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불도의 바라밀행은 전생숙업을 소멸시키는 인고의 현장이자 깨달음의 자양분이다. 바라밀공덕에 해탈인연이 닿는 현상을 돈오, 개오, 해오, 한 소식 등이라고 칭한다. 천년 어둠의 방에 촛불 하나면 찰나에 밝아지듯 마음은 가려짐이 없어 불타의 이심전심이 자유롭지만, 해탈인연을 맞이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몫이다.

천국을 통째로 보시받는 수혜자의 특권도 받아들이지 않자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하였던 격렬한 공포와 위협이 가해졌다. 이전까지 더없이 아름답고 평온하던 극락은 홀연히 사라지고 공포만이 가득한 무간지옥으로 돌변하였다. 금방이라도 짓이겨버릴 듯 달려드는 형상은 마치 사천왕이 직접 출현하여 그 어떤 위협과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는 나를 막다른 골방에 처넣고 통째로 쥐어짜는 느낌이었다. 불법세계를 수호하는 사천왕들이 금방이라도 내 주인공인 영혼을 짓뭉개 버릴 기세인 것은 곧 불세계로 진입할 근기에게 혹여 남아 있을지도 모를 미세업장을 걸러내는 과정임을 그 순간은 감도 못 잡았다. 해탈세계는 부처 조사는 물론 그 어떤 상대개념도 허용되지 않는 청정법신의 절대 영역이기에 유·무위 법계 경계지점을 관장하는 사천왕이 불세계로 진입하는 영혼이 절대 청정한지를 확인하는 최종 통과절차가 있었다. 사찰 입구 좌우에 있는 사천왕은 궁극의 도 무념무상에 혹 섞여 있을 분별 망상의 잡티를 걸러내는 불법 수호 최후의 신장이다. 불교가 어렵다는 것은 8만4천 교법이 형이상학적 비유설이고 보살 신장을 비롯한 모든 등장인물은 해탈자의 일상과 세계관을 알게 해주는 의인상임을 쉬 납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난 경전을 단 한 번도 접하지 않았었지만 이날 이후 경이 구구단보다 더 쉬웠던 것은 전생 원력이 생이지지로 이어진 덕분이었다.

천지사방을 빈틈없이 가득 채운 위용의 사천왕이 극단으로 몰아붙이는 공포와 동시에 마치 전기에 감전된 듯 찌릿찌릿 뼈를 저리는 극한의 고통은 결국 시간과 공간인식마저 사라지게 하였다. 전날 저녁 8시 정각부터 새벽 4시에 이르도록 동쪽으로 오체투지 한 머리 위 문갑에 붙어 깜박이는 전자시계의 파란 숫자를 초 단위로 인식하면서 8만4천 사후세계를 통과하고 있었지만. 사천왕으로부터 시달림을 당하는 이 지점에서는 시간과 공간인식마저 끊어졌다. 무위법계 절대 관점에서는 인간세계 관념의 최극단인 시간과 공간마저 변견이고 허상이었던 것이다.

경악 그 이상의 절박한 경지에서 사후세계 전 과정을 통과하던 이 날 난 세속나이 불혹에 들어서는 생일 전야였다. 하룻밤 동안 처절한 사후세계 통과 후 천지개벽과 다름없는 심신의 변화가 있었다. 이날 이후 육신의 병마가 씻은 듯 사라지고 불혹에 사지 뼈마디가 곧고 반듯해지는 것은 물론 옆구리에 마치 삼보 같은 종기로 한동안 농이 흐른 후 어린아이 같은 피부로 탈바꿈되는 생물학적으로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변화를 겪었다. 그로부터 태초의 빛 대적광명을 체득한 심신의 초기 행로에서 신통과 이적은 기본이지만 심파의 강약 조절이 잘 안 돼 현실적응에 애로가 많았다. 컴퓨터 키보드에 손을 대면 회로가 타버려 회사직원들은 PC 근처는 얼씬도 못 하게 하였다. 나를 자극하거나 생각을 하게 만들면 심파가 발동되어 주변의 모든 전자기기가 다운되고 전파가 차단되어 핸드폰은 무용지물이었다. 그즈음 모 법사와 화엄경 토론 중 엉터리에 마음이 불편해지자 손목시계 바늘이 윙윙거리며 바람개비처럼 돌다 멈춰버려 수리를 맡겼더니 이 시계 주인은 불타서 죽었느냐고 되물었다. 한번은 미국출장길 일본 나리타공항 환승검색대를 통과할 때 경보음이 울리자 몇 번을 돌리기에 불쾌한 마음이 가중되면서 심파가 발동되어 공항검색대 전체가 다운되자 난장판이 벌어졌었다. 불교의 해탈법력은 박식이나 불조사로부터의 차용이 아닌 빅뱅 이전 태초의 빛 대적광명(大寂光明)이 체화된 무심도인의 심파(心波) 작용이다. 내가 직접 손을 대거나 마음을 쓰는 원력을 이 세상에서는 딱히 비교 대상 없어 편의상 자이파[慈理波.ZIPA]라 정의(定義)하였지만 불문(佛門)은 이를 신통스런 법력이라 일컫는다. 종교를 망라한 정신계의 기존인식을 초월하는 본원의 실상관법과 자이파(慈理波)가 현실사회에 구사된 이적을 본원 홈에 간간이 수록하고 있다. 우곡선원의 자이파는 일체의 물리력을 배제한 대자연의 순수한 빛, 대적광명 에너지를 원용하여 즉시 중생의 고뇌를 멸하고 한 차원 높은 심신의 면역체계를 도모하며 불치, 난치를 치유하고 일상으로 복귀시키는 선력(禪力)이다. 불교는 이를 아직 오지 않은 미륵불 이후 출현할 약사유리광불이 빛으로 온갖 병을 고치는 광명변조 신통력이라고 말할 것이다.

본론으로 돌아와 저승세계 끝자락은 정·부정도 아무런 욕구도 없이 마냥 무덤덤한 나에게 이것저것 계속 들어다 바치는 휘황찬란하고 호사스런 광경이 마치 이승처럼 느껴졌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진귀한 재물과 최상의 권세를 마치 밥상처럼 차려주는 이 장면은 생명체의 본성을 가늠하는 최종시험으로 이때 일말의 자아의식이 남아 있었다면 현란한 유혹에 넘어갔을 것이다. 지옥과 천국은 물론 일체법에 무심하지 못하고 지옥 고통에 좌절하거나 현란한 천국에 혹하였다면 그 차원의 영성체(靈性體)다. 천국마저 부정하는 경계에서 유·무위 일체 만 법계 형상과 가치를 애원하듯 들어다 바치는 전율과 희열은 형용할 어휘가 없는 묘한 느낌이 휘돌았다. 전무후무한 저승형벌을 치르며 욕계 색계 무색계를 단번에 벗어났어도 온 세상을 다 가져다 바치는 상대가 등장하는 것은 생명본능이 참으로 질긴 것임을 일깨워 주는 최후의 가르침이었다.

나의 전생 업장이 유별났던 것은 불도를 닦아 점차로 숙업이 맑아지는 보편적인 사람과 달리 한꺼번에 단절에 단절을 더하는 경천동지할 업장 소멸의 역사 때문이다. 난 3대째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어릴 때부터 미사 같은 종교 행위가 왠지 시시하여 늘 겉돌았다. 군 입대 전까지 일체 육식을 못 하는 식습관과 세속 잡기가 없었고 사고방식이 반듯한 중이었던 전생 훈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본론으로 돌아와 무명세계를 주관하는 마왕은 십지보살과 별 차이가 없다. 그는 중생구제 서원과 자비를 말하고 아름다움과 평화를 풍미하며 사바세계를 이끌지만, 등각지가 아니기에 언제든 육도 중생으로 떨어지는 것이 해탈법도다.

중생은 태·난·습·화 사생 경로를 따라 생사윤회를 거듭하고 만물의 영장 인간 몸 받는 것으로 농사짓던 소나 알 낳던 닭, 삼겹살 등으로 육신을 통보시 하였던 전생공력을 대다수 상쇄한다. 인간 삶의 영원한 과제 돈오(頓悟)는 거듭되는 윤회전생 과정에서 망실 되지 않는 공력이 이생에 시절인연을 맞이한 결과다. 지금껏 인간사에 사후세계 정설도 없거니와 미신과 뒤범벅된 저승이야기는 떨치기 어려운 두려움의 세계로 인식되어 있다. 그러나 생명체의 죽음은 생자필멸의 자연현상일 뿐 사후세상은 지옥형벌로 이승에서 못다 해결한 업과를 치르고 한 차원 높은 탄생을 준비하는 체계적인 생멸시스템임을 알면 삶에 더욱 진실할 것이다. 제방의 저승 이야기는 대개 죽으면 어둠과 빛, 소리를 따라 어디로 가고 누구를 통하여 계시와 구원을 받고 환생하였다는 등의 그림이지만 내가 체험한 사후세계는 이승의 상대적 인식이 작동될 수 없는 1차원 오직 그것뿐이었다.

지복(至福)인 파라다이스도 받아들이지 않는 내 자아는 곧 해탈 경지에 이른다는 징조였지만 그 순간은 좌고우면할 여지도 없는 아득함뿐이었다. 하룻밤 꼬박 8시간 동안 단절의 저승세계에서 수없이 점층하는 고락의 지옥경계마다 “이건 아니야”라는 무언의 함성으로 부정하고 거부하는 기나긴 인고의 시간이 새벽에 이르러 팽팽하던 동아줄이 툭 끊어지듯 홀가분해진 내면세계에서 홀연히 솟는 찬란한 빛, 대적광명(大寂光明)과 함께 내 영혼의 주인공은 이승으로의 회귀가 시작되었다.

새벽 04시 정각 전생숙업이 소멸된 나의 내면세계 그 심연에서 영원히 샘솟는 화수분처럼 솟아나는 청백 광명은 태초의 빛 대적광명의 발현이자 경탄의 환희지 세계였다. 불성(佛性)이 태동하는 불(佛)세계의 극적인 장면은 이 세상 언어로는 형용할 적절한 어휘가 없다. 천지사방이 아름답고 장엄하며 영롱한 빛 속에서의 숙연한 침묵, 고물고물 새로운 생명력을 감지하는 육신의 전율이 한동안 이어졌다. 그로부터 엄숙하고 분명한 어조로 "너는 어디서 왔느냐? 왜 사느냐? 돈이란 무엇이냐?" 등의 일곱 가지 청아하고 우렁찬 자문자답에 감복하는 장면을 무심히 지켜보며 인식하는 또 다른 내가 있었다. 삼세불(三世佛)의 영역인 해탈세계에 시대와 가치를 달리하는 새로운 불성(佛性)이 창조된다는 법도(法道)가 있음을 알고 그때 질문이 몇 개였느냐고 묻고는 여기서 37년 동안 참사람을 기다린 보람이 있다던 불자는 91년 늦가을 영남알프스에서 내 생명의 끈을 붙잡았던 신비로운 인연 사자암 노보살님이 유일하였다.

전일 저녁 8시부터 금일 새벽 04시 40분까지 미동은커녕 들숨 날숨 눈 한번 깜박거림도 없는 오체투지 자세로 8만4천 저승세계 관문을 다 통과하고 7가지 오묘한 자문자답이 끝나자 나의 내면세계에서 솟는 밝디밝은 빛의 향연 그 찬란한 순백의 근원에서 은은히 드러나는 불타(佛陀)의 잔잔한 미소에 아! 하는 무언의 탄성과 함께 내 영혼의 주인공은 이승으로 회귀되었다. 하룻밤 사이에 천지개벽과 다름없는 변화를 겪은 내 심신은 활화산처럼 용솟음치는 법열이 전신을 휘감아 한동안 어찌할 바를 몰라 절절매다가 떨리는 전율을 간신히 억누르고 이부자리에서 일어나 동쪽 창을 열었다.

속초의 3월 초하루 새벽5시, 동해의 알싸한 풍경과 맞닥뜨리는 순간 내 몸에서 뻗치는 푸른 광채와 고유한 빛으로 이루어진 일체만유 법성이 동체대비 되는 경이로운 광경을 표현할 적절한 어휘가 없다. 이승의 생생한 인식으로 처음 맞이하는 서방정토 극락 맛은 딱 여기까지였다. 불세계(佛世界) 인간불사 프로그램은 냉엄하여 한번 경험한 세계는 다시 한번이 없듯 전대미문의 해탈법도 역사를 새로 쓰며 생사고해를 건넌 열반도 삶의 종착점이 아니었다. 속세를 벗어날 수 없는 현실과 부대끼며 습기를 말리는 환골탈태의 보임 세월을 요구하였고 7년 세월이 흐른 후 대우주 만법계 일체 유·무정과 짝할 수 없는 절대고독의 삶만이 덩그렇게 놓아 졌었다. 그로부터 해탈법의 본래면목은 종적조차 찾을 수 없는 이 무명시대 그림자 없는 장명등을 밝히고 생멸이 질펀한 사바세상 입전수수 세월이 어언 사반세기로 인간불사(人間佛事) 소임은 영일(寧日)이 없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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