六祖壇經 序說

 

깨달음은 무엇인가?

깨달음은 언제나 뚜렷하고 삼라만상 일월성신을 모두 포용하지만 말과 글로서는 전할 수 없는 도리입니다. 영겁 이전부터 전해오는 이 소식은 석가부처님은 물론 그 누구도 안다, 모른다 할 수 없습니다. “입을 열면 그릇되고 생각을 내면 일그러지는 본래의 一圓相은 전하고 받을 수가 없으니 오로지 佛緣을 지어 올바른 수행정진으로 자기자신이 무념무상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뿐입니다. 깨우침을 얻는 것은 전광석화처럼 한 순간일수도 있지만 깨달음을 얻은 이후가 더욱 중요합니다.

깨달음의 효용은 마치 텅 빈 하늘에서 때에 따라 바람과 구름, 뇌성번개가 치고 비를 내리게 하듯 인연에 응하여 자재한 妙用을 나타냅니다. 불교진리를 깨우치면 숙세의 반연에서 벗어나 자유자재하고 편안하며, 古佛古祖와 같은 무진법문으로 세상을 구제하는 능력자로서의 재탄생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백년사에 깨달음만큼 보람된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깨달음의 길을 일러주는 佛敎修行으로 無量大福을 짓는 것입니다. 복력이 없으면 깨달아 지지 않습니다. 깨우침의 福은 지혜에서 나오고 지혜를 밝히는 가르침이 불교8만4천 교설입니다. 하나를 깨우치면 만법과 그대로 상통되는 도리가 불교에 있기 때문에 頓悟 이후에는 자연히 정법을 수호하는 호법신장이 되어 지며, 살며 경험하는 日常이 모두 복전이고, 지혜의 밑거름이 되는 것입니다. 믿음과 진실, 자비실천으로서 만이 천지만물의 이치를 꿰뚫는 大法을 우리자신들의 法[我空]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탐욕과 집착, 환상에서 놓여나면 그 어렵다는 불교경전이 마치 만화책처럼 쉽고 그대로 사사무애(事事無碍)가 되어집니다.

특히 이 육조단경은 ‘敎를 뛰어넘어 곧바로 불교 가르침의 핵심인 법륜[八正道]을 자재로 굴리는 경지에 들게 하는 귀중한 말씀이자 佛法因緣이다.’라고 믿어 의심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경전과 조사어록이 있지만 이 육조단경은 조계문중의 源泉이고 八萬法藏의 진수이며, 즉시 見性成佛하는 最上乘의 門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이 단경이 만들어진 동기는 혜능대사가 소주자사 위거의 청으로 대범사 계단에서 無相戒를 설한 법문을 그의 문하생들이 기록한 것으로, 단(壇)은 계단의 壇이고, 경(經)은 無相戒 法門인 마하반야바라밀다경을 교의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혜능대사가 대범사 계단에서 관료 비구 비구니 도교인 등의 무리들에게 마하반야바라밀다경을 설한 무상계 법문을 그 뒤에 혜능대사의 행적과 정혜(定慧) 좌선(坐禪) 기연(機緣) 돈점(頓漸) 선조(宣詔) 부촉(咐囑) 등을 합본하여 단경 혹은 육조법보단경, 육조단경, 법보단경이라 하고, 이러한 단경은 돈황본 대승사본 흥성사본 등이 있으나 우리가 공부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유통되는 종보본입니다.

석가부처님의 말씀을 법보라 하고, 설법을 정리 기록한 것을 經典, 역대 조사들의 말씀을 語錄이라 하는데 유독 혜능대사의 어록을 經이라고 하는 것은 후세 사람들이 혜능대사를 그만큼 높이 보기 때문일 것입니다.

육조단경은 석가부처님께서 49년 동안 설한 종지를 그대로 드러내 보인 교의로서 마음을 전하여 깨닫게 하는 격외도리인 禪의 종지가 과연 어떤 것인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여기서 禪의 역사를 간략히 살펴보면 禪은 불교 이전 요가의 生天을 위한 심신수련이 그 기원이며, 이것을 석가부처님께서 마음을 밝히는 법 즉, 日常이 禪임을 자각하는 해탈법[禪法]과 또 불립문자 교외별전 직지인심견성성불 즉, 문자를 세우지 않고 언설의 가르침밖에 별도로 전한 법으로서 마음을 바로 가르쳐 성품을 보고 부처를 이루게 한다는 이심전심의 달마禪이 있습니다. [달마선은 가섭의 삼처전심이 시발점: 다자탑전분반좌(多子塔前分半座), 영산회상거염화(靈山會上擧拈花), 사라쌍수곽시쌍부(沙羅雙樹槨示雙趺]

中國 禪의 시조인 달마대사는 초조의 28대손으로 중국 양나라 무제 때 인도에서 건너온 인도 僧이었습니다. 달마대사와 양무제의 3천개 절 불사 공덕일화는 당시 중국불교가 얼마나 잘못 되었는지를 여실히 반증하는 것입니다. 석가부처님을 빙자한 삿된 불교로부터 이심전심으로 깨달음을 주는 法이 달마대사[서기527년]로부터 유포되었지만 2대 혜가, 3대 승찬, 4대 도신, 5대 홍인까지는 중국선종의 창립적인 과정으로 볼 수 있으며, 홍인으로부터 의발을 전수받은 업보로 17년 동안 사냥꾼 생활을 하였던 혜능대사[638~713]로부터 중국불교의 판도가 바뀌는 계기가 되었던 것은 불교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공부하려는 이 육조단경은 중국선종의 시조인 달마대사와 초조인 석가부처님에 필적 할 만큼 깨달음과 불법종지를 고스란히 담고 있어 선가의 소의경전이 되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禪宗에서는 달마 혈맥론이나 여타 조사어록들이 체계적으로 편찬되어 전해지는 것이 없으며, 있다 하여도 소의경전으로 삼기에는 너무 간략하고 그 뜻이 단경에 모두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육조단경은 부처님의 마음전하는 법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수많은 불자들이 의지하는 보경이 되어왔고, 혜능대사를 통하여 부처님의 마음이라는 禪의 핵심을 분명하게 알 수 있게 된 것은 잡동사니 엉터리가 주류를 이루는 지금의 한국불교에 더 없이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육조단경의 기본요체는 無相戒와 마하반야바라밀다법입니다. 무상계는 형상계 즉, 유위법계는 실상이 아니듯 이 육신 또한 眞我가 아니기에 집착할 것이 없으며, 마음의 본바탕은 佛이라는 것을 일러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佛은 본래 청정한 법신불과 청정한 가운데 지혜의 빛을 관조하는 보신불, 공적한 가운데 무궁무진한 변화를 일으키는 천백억 화신불로 그 역할과 작용을 나누어 설명할 수 있습니다. 또한 삼신불은 예경의 대상이 아니라 수행공덕으로 얻게 되는 신통한 능력을 말하며, 모든 존재는 삼신불이 아닌 것이 없다는 사실 즉, 삼신불의 본래 의미를 진실로 깨닫는 것이 바로 頓悟입니다. 이러한 돈오는 無我의 시발점이며 곧 眞我의 회복입니다. 이럴 때 이 세상이 바로 극락이고 내가 바로 이 아름다운 극락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자각하며,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 지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은 결코 자비를 실천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마하반야바라밀다를 해제하면 마하는 인도의 고어로서 크다 많다 수승하다는 뜻을 가진 말로서 우리의 근본 마음자리는 무한대이며 이와 같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반야는 지혜라는 범어이며, 바라밀은 상대분별, 번뇌가 멸한 도피안의 세계를 지칭하는 것으로서 정리하면 마하반야바라밀은 큰 지혜, 밝은 지혜로서 생사를 뛰어넘어 해탈열반의 세계, 부처님의 세계에 들어가는 법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육조단경의 요지는 마음을 찾아 밝힌 自性定 自性慧와 그 수행법을 말하는 것으로서, 번뇌 망상을 여윈 無念을 宗으로 삼고, 일체의 분별을 초월한 無相으로 體를 삼으며, 선악과 고저장단에 집착하지 않는 無住處 無住心을 깨달아 실천하는데 있다 할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단경의 가르침대로 탐욕과 상대분별, 집착이 떨어진 진정한 대자유인으로 거듭나는 것이며, 그것이 해탈자이고 창조자이며, 진정한 행복을 구가하는 生佛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소중한 단경공부로 마음을 밝고 고요히 함으로서 속진을 여의고 무수한 삶의 경계와 生死를 뛰어넘는 지혜의 힘을 증득하시기 바랍니다.

                                                                                                           2006年 7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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