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각인(刻印)

 

동해안 어느 마을에 범을 잡겠다는 포수가 살고 있었다. 이 포수는 각고의 노력을 한 결과 말로만 듣던 범을 잡기 위하여 사냥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그해 봄 골 깊은 산에 범이 있다는 단순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순진한 포수는 점쟁이한테서 사냥하기에 좋다는 날짜까지 택일 받아 산으로 들어갈 것을 결심하였다.

모일에 사냥을 떠난다는 소문에 일가친척들이 모여 환송연을 베풀어주니 마음이 든든해지는 것 같고 꼭 범을 잡고야 말겠다는 신념에 얼굴까지 벌겋게 상기되었다. 마을을 벗어날 때까지는 주변 사람들의 응원이 있으니까 두려움도 없고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어떠한 의심도 없었다. 이웃집 나들이하는 기분으로 배웅 나온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 고갯마루를 넘기 시작하니 등골이 으슬으슬해지기 시작하였다. 범을 잡겠다는 생각이 전혀 없던 때는 익히 잘 알고 있던 이 산길을 매번 넘어 다녀도 지금처럼 으쓱한 느낌이 없었는데 오늘따라 이상하다는 생각을 놓을 수 없었다. 골이 깊어질수록 두려운 마음은 점점 커져 갔다. 한 발 한 발 산 속으로 들어 갈 때마다 간이 오그라 붙는 기분이고 발자국도 잘 놓아지지 않아 우왕좌왕하면서 망설이다 보니 생각이 바뀌기 시작한다. 당장이라도 범 잡는 일을 그만두고 싶은데 그 동안 준비해 온 과정이 아깝고 또 출발할 때 시끌벅적한 환송식까지 하고 떠난 것이 마음에 걸렸다.

포수 체면에 금방 되돌아 설 수 없어 나무 그늘에 앉아 미적거리니 해는 중천을 넘고 소변은 자꾸 마려워졌다. 이쯤에서 과감하게 돌아 설려니 이런 저런 일들이 눈앞에 선하여 포기할 수는 없을 듯하고 그렇다고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간다는 것은 말로만 듣던 범 아가리로 들어서는 기분이었다. 무섭지만 이를 악물고 앞으로 나가다 보니 어느덧 몇 등성이 산을 넘었다.

발걸음이 멈추어져 주위를 둘러보니 이곳은 난생 처음 와보는 산중이었다. 주변은 어둡고 으쓱하여 금방이라도 범이 뛰쳐나올 듯하고 골짜기에는 어둠이 배여 들기 시작하니 좌불안석이 되면서 공포감마저 밀려들었다. 이때부터 범 잡을 생각은 천리만리로 달아나고 우선은 이곳에서 벗어나야 되겠다는 강박관념에 왔던 길로 되짚어 뛰었다. 괴괴한 적막이 어려 있는 산길을 되짚어 내려가는 포수는 처음에는 범을 잡겠다는 목적의식을 포기했는데 나중에는 자신의 발자국 소리에 놀라 총은 물론이고 꾸려간 행장마저 던져 버리고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뛰기 시작하였다.

다급한 마음으로 아무리 뛰어도 갈 길은 줄어드는 것 같지 않고 숨만 턱에 걸려 헉헉거리면서 가파른 길을 오르락내리락 하다 보니 집으로 되돌아가는 길마저 놓쳐 버렸다. 혼신을 다해 길을 찾아도 길이 보이지 않자 마루턱에 걸터앉아 숨을 몰아쉬었다. 온몸을 적시면서 비 오듯이 흘러내리는 땀이 잦아들자 조금씩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약하고 못나 보이는 자신의 본 모습이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환경 요인에 의해 생각이 바뀌어 지니까 조금 전까지 허둥거리게 하던 공포심이 희석되면서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다. 가쁜 숨이 잦아들자 확신이 결여되어 있는 자신을 모르고 허상을 지어 타인들에게 큰 기대를 걸게 한 무책임한 행위가 더 큰 멍에가 되고 있는 줄을 깨닫게 되었다. 자신의 입지를 냉철하게 살펴보지도 않고 밖에서 들려오는 타인의 소리에 이끌려 범을 잡겠다고 만용을 부린 것이 후회스러워 지기 시작하니 집으로 돌아갈 생각마저 없어지고 그냥 멍한 기분만 들었다.

그 동안 살아온 경험과 목적의식을 놓아 버린 뒤 산 속에서 며칠을 헤매다 보니 육신의 기운은 다 떨어지고 의식마저 가물가물 해질 때쯤 되어 저만큼 산 어귀에서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아, 이제는 살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을 가지고 엉금엉금 기다시피 하면서 불빛 있는 곳까지 도달하니 조그마한 암자의 문틈에서 새어나오는 촛불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이 고향 마을 어귀쯤에 있는 작은 암자를 다니시던 기억이 있어 사찰은 낯설지 않았다. 자신이 직접 불법에 귀의한 적은 없었으나 그의 집안은 조부모님과 부모님이 모두 독실한 불자였기 때문에 심정적으로는 불교인이나 마찬가지였다. 불교에 관한한 간접적으로 보고 들은 것이 많아 친근감이 있는 터에 이런 산중에서 암자를 보게 되니 돌아가신 부모님을 다시 뵙는 것처럼 반가웠다.

오랜 출타 후에 내 집에 되돌아 온 듯한 마음으로 인기척을 하니 불교의 수도자 일습을 갖춘 사람이 나와 자초지종을 묻는 것이다. 며칠 동안 길을 잃고 헤맨 육신은 지칠 대로 지쳐 쓰러지기 직전이고 의식마저 가물거려 도움을 청하니 아무 조건도 붙이지 않고 흔쾌히 맞아 주는 수행자가 고마워 정신마저 의탁할 수 있었다. 사냥꾼은 이번 일로 말미암아 부모님으로부터 간접 체험해 왔던 불교인들의 일반적인 수행상을 직접적으로 체험하게 되는 동기가 되었다. 수행자와의 대화가 깊어 갈수록 차츰차츰 삶의 바닥 깊숙한 곳에서 흙탕물이 올라오듯 한 고뇌덩이들까지 들추어내어 이야기할 수 있었다.

확신도 없이 명분과 실리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한꺼번에 다 잡겠노라고 허둥거리며 살았던 미련스런 과거사가 회한이 되어 내면의 의식 세계를 지배할 때는 초연하게 살아가는 듯한 수도자에 대한 믿음은 점점 깊어 갔다. 평상시 같으면 들을 수도 없고 알지도 못하였던 인생 항로의 앞선 이야기가 샘물처럼 흘러나오는 수도자에 대한 신뢰는 끝닿는 데가 없었다. 자신이 어릴 적 할머니와 어머님이 수행자들에게 맹목적으로 절하면서 따르던 희미한 기억이 떠오르면서 믿음은 더욱 커져 갔다. 그러나 수행자가 비유로서 법문처럼 말하는 이런저런 이야기는 정법에 입각한 객관적인 사고가 아니라 방황하는 사냥꾼에게 자신의 한을 각인시키고 있었다.

한 번 의지가 꺾여 버린 사람의 마음은 물먹은 백지와 같다. 이런 나약한 사람의 마음에 정법을 빙자한 사술이 그려지면 앙칼진 고양이 발자국 같은 각인이 새겨진다. 순진한 사냥꾼은 일습까지 갖춘 수행자의 언행을 정법으로 알고 평생 동안 가슴에 담아 있게 된다.

임의로 혈육 인연까지 끊고 불가에 귀의하여 해탈성불 이루겠다고 경을 수지 독송하고 경전을 독파하며 수백 번 강원을 수료한 경륜을 가지고 있으나 나와 내 것이라는 집착심을 놓고 버리지 못하면 무위로 가기 위한 방편에 불과한 이런 저런 수행 방법과 정진중일 때 잠깐 나타나는 환과 깍지 끼게 된다. 수행을 하여 무엇이 되겠다는 목적의식에 생각이 갇혀 있는 수행자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허상을 그리고 또 환상을 남에게 알리려 한다. 지금 시대는 남의 외투를 껴안고 있는 것을 수행의 결과로 착각하고 있는 외도 마종들이 우글거린다.

목마른 소가 산중을 헤매다가 골짜기에 고여 있는 물을 만났는데 그 물을 마시지 않을 수 없듯이 순진무구한 사냥꾼은 일습까지 갖춘 수행자가 불법을 빙자한 이런 저런 말들을 하게 되면 그것은 당연한 진리쯤으로 받아들여 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물은 주술에 걸려 있는 사약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갈증 해소는커녕 점차 기력마저 떨어져 시간이 지날수록 순수하고는 거리가 먼 주의주장으로 뭉쳐진 독 덩어리가 된다. 사냥꾼은 올바른 주인 의식이 살아 있는 당당한 수행자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고 남의 것을 뒤집어 쓴 종의 말을 들으면서 그의 뇌세포는 지금 보고 듣는 이것만이 오직 진실인 것으로 각인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인간의 사고에 주의주장의 각인이 새겨지면 중생심으로는 벗어 놓기 어렵다. 여린 마음에 잘못 각인된 독기운은 전설 속의 명의인 화타가 환생하여 치료한다고 해도 어렵다. 독기운으로 점철된 집착심에 묶여 있는 사람의 사고를 긍정심으로 새롭게 일깨운다는 것은 태산을 옮겨 놓는 것만큼이나 힘들기 때문이다.

바른 수행은 현실과의 접목이 우선이다. 지금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각박한 현실에 적응을 하지 못하여 자칫 길을 잃고 헤매다가 불법을 빙자한 사숙에 걸려들 요인들이 많이 있다. 무엇을 찾는다고 헤매다가 자신의 한풀이를 하고 있는 영혼의 사냥꾼에게 포획된 범 사냥꾼이 지금 나의 모습이 아닌가를 되돌아 볼 때가 되었다.

한 젊은이는 이 시대 최고의 명성이 있는 학교를 졸업하고 대그룹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일상이 죽음과 같은 마음병을 앓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 청년은 할머니 때부터 다니던 고향 근처의 암자에서 있었던 순진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회인으로 성장한 지금까지 영혼이 포획된 사냥꾼의 삶을 살고 있었다. 육신이 처해있는 사회적 환경과는 전혀 다른 엄청난 마음 고통을 앓게 된 연유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단 한번 잘못된 믿음은 참담한 결과를 불러온다는 사실을 공감할 수 있었다. 이런 사건들은 개인적인 운명론 정도로 비추어 질 수도 있으나 그 내면을 잘 살펴보면 시대적인 병폐임을 통감하게 되면서 방황하는 의식을 사냥꾼으로 묘사하여 오도된 믿음과 각인의 모순점을 해부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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