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와 걸사리 비사

 

Q : 불교는 왜 사리를 신성시 합니까. 득도한 사람은 몸에 사리가 생기고 뼈에서 나온 사리 숫자나 크기로 깨달음의 경지를 판별하는 것입니까. 불교의 사리와 득도는 무슨 관계인지 궁금합니다.

A : 한국불교에서 소중히 여기는 사리는 신라의 자장율사가 중국 오대산에서 석가부처님 진신 사리를 모셔와 봉안하였다는 5대 적멸보궁이 대표적입니다. 석가부처님 몸에서 나왔다는 사리를 해탈지혜의 상징물로 대각자와 교감하려는 불자들의 염원이 사리를 신성시 하였을 것입니다. 인도가 아닌 국내에서 석가부처님 진신 사리를 찾았던 비사를 통하여 사리의 진면목을 정의합니다, 고승대덕들이 결사의지로 사리를 찾는 걸사리 기도가 있었던 무대는 경남 김해시 무척산 서편에 있는 작은 암자입니다. 인도사람인 허왕후가 고국의 어머니를 위하여 지었다는 구전을 뒷받침하듯 모은암 법당뒤편 바위굴에는 인도에만 있다는 파사석이 지금도 보존되어 있습니다. 가야국의 시조 김수로왕의 부인인 허왕후는 인도인 승려 장유화상의 누이인 허황옥입니다. 기원전 즈음에 장유화상이 불법(佛法)을 전하려고 배를 타고 머나먼 동방 한반도 남단에 왔었고 김수로왕의 인품을 보고 자기 누이를 데리고 와서 혼사를 맺은 것은 포교를 위한 인도불교의 정략일 것입니다.

한반도에 불교가 들어온 역사를 고찰하면 중국대륙을 거치면서 잡동사니가 되었을 고구려 아도화상의 신라불교보다 이미 300여년전 인도에서 바다를 통하여 김해로 직접 들어온 장유화상의 가야불교가 훨씬 더 순수성을 지녔을 것은 자명한 이치인데 가야가 신라에 합병되어 사료가 없는 것이 유감입니다. 가야는 인도에서 소를 지칭하며 불교의 해탈진리를 실천하는 보살을 소로 비유하는 것과 연계하면 가야국의 탄생과 통치철학은 인도승려인 장유화상의 불국정토 염원에 의한 지략이었을 것으로 유추합니다. 한반도 남단의 소국인 가야가 철기문명을 선도하였고 6가야라는 연합 국가를 유지하며 골육상쟁이나 권력투쟁 없이 근 5백년동안 평화시대를 구가한 배경에는 불교의 무소유정신과 자리이타실천이 근간이었을 것으로 충분히 짐작됩니다.

망산도의 사랑과 이별의 칠불암 등 신비스런 가야사는 금곡국제여행사의 6가야 문화탐방투어프로그램에 상세히 소개되기에 이만 각설하고 아래는 모은암 걸사리 기도에 얽힌 내 개인사이기에 경어는 생략합니다. 1994년 늦가을 어느 날 미국에서 지인이 찾아 왔기에 학인 한사람과 동행이 되어 난생처음 내 고향 근처 무척산 모은암을 갔었다. 암자까지는 차도가 없어 가파른 길을 걸어 올라가니 꽤 추운 날씨인데도 암자 입구의 커다란 너럭바위를 앞에 두고 염불을 하는 노승과 눈이 마주쳤고 법당으로 향하는 나를 따라 몸을 빙그르 돌리면서 목탁을 치는 속도가 빨라지는 것이 왠지 반연이 될 것 같았다.

당시는 사람과의 만남을 극도로 피하던 시기였기에 서둘러 참배를 하고 암자를 벗어나는데 뒤쪽에서 절 마당을 나서던 학인이 갑자기 담장을 붙잡고 “선생님 저 스님이 저를 못가게 합니다.”라고 소리치면서 그 자리에 딱 달라붙었다. 염불하는 승려의 염력에 학인이 걸려들어 승려의 뜻을 나한테 전달하는 기이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난 그 의미를 알기에 “야, 얼른 내려와 가자”라고 재촉하였으나 담장을 부여잡은 학인은 요지부동이었다. 갑자기 목탁소리가 요란해지고 사찰기운이 어수선한 것을 감지한 듯 건너편 요사채 방문이 벌컥 열리더니 꽤 기풍 있는 승려가 달려와 잠시 쉬었다 가라면서 소맷자락을 붙잡기에 일행과 함께 요사채방으로 들어갔었다.

방안에는 마당에서 염불을 하고 있는 1인 외에 6명의 근엄한 승려들이 벽을 등지고 죽 둘러앉아 있었다. 우리일행을 붙잡은 사람은 당시 모은암 주지이자 해인사 강주로서 제방에 잘 알려진 선승 송*이었다. 차례로 6명의 승려를 소개받는 가운데 염불교대로 한 승려가 나가고 조금 전 마당에서 염불하던 노승이 들어왔다. 불국사가 본사라던 이 승려가 방으로 들어서면서 하마터면 귀인을 놓칠 뻔했다고 말하자 덩치 큰 승려가 벌떡 일어서더니 삼배를 하면서 자기는 아직 깨닫지 못한 땡중이라면서 나더러 깨달음을 달라고 애원하는 어처구니없는 촌극이 벌어졌다. 당시 내 앞가림도 간신히 이어가는 주제에 내가 무슨 수로 자칭 한국의 고승대덕들에게 깨우침을 줄 수 있단 말인가. 얼떨결에 큰절을 받았지만 손사래를 치면서 뒤로 물러앉으니 주지가 상황정리를 해주었다.

지금 저 목탁소리는 28일 동안 한 순간도 염불이 그치지 않는 걸사리기도 중이라는 것과 여기 7명은 전국각처에서 모인 고승대덕으로서 걸사리 기도를 할 법체를 갖추었다는 것이다. 고승대덕의 면면은 알바 없고 걸사리가 뭐냐고 물었더니 여기 무척산에는 허왕후가 인도에서 가야국으로 올 때 모시고 온 부처님 진신사리가 비장되어 있다는 것이다. 고승들이 결사하여 두 시간 교대로 28일 동안 끊어지지 않고 기도를 하면 무척산 산신령으로부터 진신사리가 묻혀있는 장소를 점지 받을 것인데 오늘이 27일째 되는 날이라는 것이다. 고승들이 애쓰는 건 알겠는데 바위위에 번쩍이는 탑신을 마주하고 염불하는 모습도 거북스럽고 사리라는 뼈를 찾아서 도대체 뭘 어쩌자는 건지 요령부득이었다.

법체 높은 고승대덕들이 모인 사연을 귓전으로 듣는 내 모습에 주지가 우리 일행을 안내하여 법당 뒤 바위굴속에 세워놓은 인도의 파사석 유래와 모은암에 얽힌 구전을 열심히 설명하였지만 한심스런 짓거리로만 보였다. 죽기를 각오한 결사의지로 사리를 구하겠다면 법당에서 마음을 다잡는 것이 승려의 당연한 도리일 것이다. 만일 그랬다면 지극정성에 감응한 불보살이 혹 생 사리를 알아보는 혜안이라도 열어줄지 모를 일이었다. 부처님을 앞세워 시주밥에 의존하는 승려들이 미신적 존재인 산신령한테 비는 작태는 목불인견이고 불법(佛法)을 부정하는 배반행위로 보였다.

진신사리란 누구의 뼈 조각이 본질이 아니라 ‘불성(佛性)을 회복한 각자(覺者)’를 뜻한다. 해탈진리를 증득한 사람의 존재가 금은보화보다 더 귀한 사리로 인식되는 것은 그가 석가부처님의 해탈법을 이어가는 불교의 중심이고 일체중생을 구하는 원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특히 물질문명이 발달될수록 삼계에 걸림 없는 해탈에너지가 균형추 역할을 하지 않으면 임계점을 넘은 사바중생의 무한탐욕과 이해충돌로 핵을 가진 인류는 어느 날 한 순간에 소멸될 수밖에 없는 것이 엄연한 현실임을 주지하면 생 사리의 존재가치는 분명해진다.

불교가 위대한 것은 궁극의 가치를 지닌 깨달음도 사적인 영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고승들이 정법이 소멸된 이 말법세상이 안타까워 진신사리 출현을 절감하였다면 해탈진리를 체득한 당처인 생 사리를 찾아 그와 함께 망실된 불도를 재건하려는 노력이 온당한 걸사리 염원이고 시대적 소임일 것이다. 고승대덕들이 내리 27일 동안 목숨을 건 결사의지로 무척산 산신령한테 부처님 진신사리를 찾게 해달라고 기도한 덕분인지 난 그날 난생처음 내 고향집 인근의 모은암을 방문하게 되었고 덕 높은 자칭 제자들이 떼를 지어 부처님을 배신하는 무도한 짓을 목도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수년이 흘러 다시 찾은 암자는 폐사형색이고 너럭바위 위에 번쩍거리던 탑신도 보이지 않았다. 당시 걸사리 기도에 동참하였던 고승대덕들의 근황을 수소문으로 듣고 만나본 참상은 차마 언급할 수 없어 이만 필을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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