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과 굿 그리고 DMZ

 

Q : 신(神)이 무엇입니까? 세상 거의 모든 종교는 자기들이 믿는 신(神)을 칭송하고 떠받들며 구원을 바라는데 불교도 신(神)을 믿습니까?

A : 불교는 신(神)이 있다 없다 구분하지 않습니다. 불교는 허구이고 미신적인 절대자나 구원자를 추앙하지 않을뿐더러 신은 불변의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꿰뚫고 있기에 신(神)을 가엾은 제도의 대상으로 보는 것입니다. 불교에서 신은 영원불멸이 아닌 일시적으로 존재하는 몸 없는 중생으로 영가(靈駕) 또는 중음신(中陰身)이라 칭하며 따라서 불교는 난감한 신의 처지를 잘 알기에 사람 몸 받은 이생에 반야지혜를 증득하여 사생육도를 거듭하는 신으로 남지 않는 법을 일러주는 고등종교입니다.

신 또는 중음신이 숙업의 화신인 것은 사람으로 살 때 자비공덕이 부족하여 전생숙업을 청산하지 못한 업장 때문입니다. 목숨이 깃들었던 모든 사바중생 업장이 천차만별 각양각색인 것처럼 신 또한 그러합니다. 신은 몸을 받게 될 내생을 위하여 전생업과에 따라 천상과 지옥 등 8만4천의 저승과보를 받는 독자적인 개체로서 구원종교의 유일신 또한 그 이름에 상관없이 전생업장을 청산하지 못한 근기만큼의 중생인 것입니다. 몸을 갖춘 일체중생은 살아서 진리를 깨닫고 유여열반에 들지 못하면 죽음과 동시 중음신이라는 관문을 필연적으로 거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일체중생의 죽음은 그가 지은 업장만큼의 신이 되는 시작점이기도 합니다.

다음은 신과 결부된 내 경험이기에 이하 경어는 생략합니다. 첫 번째는 1993년 여름 어느 날 밤 창원의 중앙상가지역에서 있었던 신(神)과 관련된 에피소드다. 그해 여름밤 상가 중간쯤의 올림픽 공원에서 좌선중인데 근방에서 북소리와 징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고 그 쪽으로 인파가 몰려가고 있었다. 도심 한가운데서 크게 울리는 징소리도 특이하고 한참을 지나도 그치지 않기에 좌선을 하다말고 시끌벅적한 장소로 갔더니 무대 위에는 엄청 큰 굿판이 벌어져 있었다. 인파를 헤집고 굿판 가까이 다가간 길바닥은 깨뜨려놓은 수박과 생선 등 갖가지 음식물이 흩어져있고 군중 가운데는 고깔모자와 하얀 소복차림에 큰 칼과 창을 휘두르며 춤을 추는 무당들과 북을 치고 장단을 맞추는 박수들이 있었다. 한밤중에 도심가운데서 울리는 굿판 사물도 소음이고 길바닥에 흩뿌려 놓은 음식물이 발에 밟혀 미끈거리는 것이 거슬렸다. 미신적인 푸닥거리도 그렇지만 소중한 음식을 함부로 버리는 행위에 “이 삿된 중생들이” 하는 불편한 마음이 되는 순간 눈에 불이 켜지고 심장이 뜨거워지면서 심파가 발동되었다. 만행 중에 문고리를 부여잡고 “저는 아닙니다”라고 부들부들 떨던 별별 도사들과 마주쳤던 상황과 똑 같은 심파 발산을 제어할 수 없었다. 그 순간 춤을 추던 무당들이 칼과 창을 내팽개치고 이리저리 도망을 치자 장단을 맞추던 박수 또한 북과 장구를 내던지고 줄행랑을 치기 시작하였다. 한참 신명이 올라 펄펄뛰던 박수무당들이 마치 전기에 감전된 듯 길길이 날뛰며 도망을 치자 순식간에 굿판이 난장판이 되었다. 너울거리는 하얀 소복에 고깔모자를 쓴 대표선수들이 미친 듯이 달아나자 굿을 유치한 상가주인과 구경꾼들은 이게 도대체 무슨 조화인가 싶어 떼거리로 따라 뛰니 창원 중심상가가 온통 난리법석판이 되고 말았다. 박수무당들이 주인으로 모시는 신들이 무심법력에 기절초풍하여 줄행랑을 치는 것 일뿐 내가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 굿판을 뒤엎은 것은 아니었다.

신은 영원불변의 진리세계를 다 깨닫지 못한 업장인 것처럼 일체중생은 모두 그만의 신이 깃들어져 있다. 중생의 모습과 성향이 제각각인 것은 천차만별의 신이라는 영혼이었기 때문이며 그 영혼이 부모인연을 만나 지금의 내 정신 내 모습인 것이다. 몸 없는 중생인 신을 추앙하는 인간의 정신세계는 자아(自我)가 아닌 신의 비중이 그 만큼 많다는 반증이다. 특히 구원자나 미신에 매몰된 인간은 주체적인 인격체가 아니라 자기의 신을 지배하는 종교적인 신의 종노릇을 최상의 가치로 삼기에 권세가 아무리 높아도 한줌 공덕도 없어 내생에 사람 몸 받기는 맹구부목 만큼 어렵다.

신은 독립적인 개체와 몸을 지닌 중생의 영혼에 기생하는 개체로 나눌 수 있다. 독자적인 신은 내생에 지렁이 몸이라도 받을 수 있는 근기이고 신을 추종하는 인간은 그가 신의 욕망을 채워주는 도구인 줄도 모르기에 내생에는 하루살이 몸도 받기 어렵다. 몸과 함께하는 신은 모습과 습관, 근성이 표상이고 몸이 없는 신이라고 해서 이 세상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전쟁터나 불의의 교통사고로 혈기왕성한 사람이 찰나에 죽었다면 영가는 그 현장에 오랫동안 머문다. 자신의 몸이 없어졌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영혼은 그 공간을 점유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영향력이 있어 빙의나 다발사고 등 여러 가지 현상으로 나타난다. 왜냐하면 정신도 에너지로서 질량을 가졌듯 영혼이라는 신 또한 전생업장에 비례하는 에너지의 산물이기에 유위법계와 부대낌과 교류가 있기 마련이다.

신(神)과 관련된 두 번째 사례로 1995년 가을 즈음에 경기도 연천 태풍전망대에서 있었던 일화 한 토막을 소개하면, 태풍전망대는 북한을 가까이 조망할 수 있는 DMZ내의 군사시설로서 그 당시는 민간인은 출입을 할 수 없었다. 당국으로부터 출입승인을 받고 일행 다섯 명과 함께 태풍전망대를 탐방하고 돌아서는데 그 부대 소대장인 듯한 장교가 나를 콕 집어 법당 위 범종을 울려달라고 정중히 부탁하였다. 태풍전망대는 법당 외에 성모마리아상과 교회도 같은 장소에 있었다. 그날 동참자 중에는 국가안보실장 고명딸이었던 이정*보살 외 남자 4명은 모두 반듯한 양복차림이었다. 그런데 대뜸 법당 위의 범종을 쳐달라는 그 젊은 장교도 딱 그 시간 그 장소에서 자기의지와 무관하게 불가사의한 영가천도 역사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그때 그 장교가 범종을 쳐달라는 부탁을 하지 않았다면 최전방 군부대 안에서 어느 선지자가 그 시간에 나를 기다렸다가 범종을 울리게 할 것이며 따라서 다음과 같은 부사의한 일도 없었을 것이다.

법당 위 종각에 올라 일체중생 안위를 발원하며 천천히 범종을 일곱 번 울렸다. 늦 가을 석양이 삭막한 휴전선을 비추이는 그곳은 6.25당시 남북한 공히 타국에서 참전한 군인을 비롯하여 수많은 청춘이 산화한 격전장이었다. 한 많은 무주고혼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면서 울리는 범종소리는 가시철조망을 스치고 임진강건너 숨죽인 북녘 땅 저 멀리로 은은히 퍼져갔다. 일곱 번 타종을 하는 중간쯤에 이정* 보살이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더니 얼굴이 하얘지면서 눈물을 쏟기 시작하였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군 장성이었고 미국에서 학위를 마치고 갓 귀국하여 마주친 색다른 풍경에 감정이 남달라서 그런가 하였다. 몸을 떨면서 눈물을 흘리는 보살은 서너 시간이 걸리는 차중에서 말 한마디 않고 하염없이 울기만 하였다. 서울도착 후 첫 마디가 나더러 “못 보았느냐”고 하였다. “뜬금없이 뭔 소리냐”고 물었더니 내가 타종을 하자 여러 피부색의 군인들이 형용하기 어려운 처참한 모습으로 종각에 몰려들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자기가 헛것을 봤나싶었는데 점점 그 수가 엄청나고 무서워서 그 자리에 주저앉았고 너무 놀라서 말을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정* 보살은 워싱턴서 학위를 마친 나름 지성인이라고 자부하던 사람인데 그날 백주 대낮에 시공을 초월하여 전쟁터에서 죽은 수많은 영가(중음신)를 실상처럼 보았던 것이다. 범종소리에 실린 간절한 염원과 초자연적인 파동에너지로 무기(無記)상태에서 깨어난 영가들은 누구를 겁박하려고 종각으로 몰려든 것이 아니라 제도를 받으려는 한 많은 영가의 처절한 몸부림인데 보살이 그런 이치를 알 턱이 없었던 것이다. 부언하자면 혈기왕성한 청춘들이 전쟁의 포화로 육신이 찢기고 터져 산화된 그 상태로 반백년을 오도 가도 못하고 정체되어 있던 중음신(中陰身)들이 내가 타종하는 종각으로 몰려오는 모습을 실상처럼 보았던 경악스러움이 울음으로 터져 나왔던 것이다.

신은 몸이 없기에 우주를 자유자재로 오갈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신은 몸 있을 때 탐욕과 집착을 다 놓지 못한 만큼의 질량을 지닌 영혼이기에 지구중력을 벗어나지 못한다. 과학문명이 발달하기 전 우주를 동경하던 인간들의 염원이 유체이탈이었을 것이고 미지의 세계가 신의 영역으로 해석되었을 것이다. 유체이탈 또한 전기에너지의 도움으로 전생숙업이 멸한 사람의 심체원자가 유체화가 되어 확장되는 부사의한 물리작용으로서 업장의 화신인 신이 도전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신이 미시적 영역의 주체로 인식되고 경외심의 대상이 된 것은 무지의 소치다. 인간과 결부된 신의 종류는 해탈열반에 든 각자(覺者)를 제외한 현생 인류 만큼이고 신의 능력 또한 몸을 지닌 사바중생의 근기 만큼이다. 역병이 창궐하는 이 난세에 신(神)을 규명해 놓지 않으면 허구적인 종교논리에 휘둘리는 뭇 군상의 영혼구제도 아득할 뿐더러 코로나19로 고통 받는 시대를 더 힘들게 하는 개신교처럼 건강한 사회를 기대할 수 없기에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창조성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하여 신축년 초설에 백악산을 마주하며 이 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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