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僧과 인연이야기

 

지금은 유명을 달리한 어느 산승(山僧)과의 안타깝고 소중한 인연이야기를 피력한다. 그즈음 나의 불도에서 해탈의 삶을 통칭하는 석가부처님의 불교와 한국의 승가와는 전혀 조합되지 않는 이미지로 굳어진지가 오래였다. 불교를 빙자하여 혹세무민하는 삭발무리로부터 불타의 향기는커녕 진솔한 인간미조차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1997년 늦가을 즈음 강원도 홍천의 수타사가 생사문제로 고뇌하던 이 산승과의 첫 만남이 이루어진 무대다. 난 92년 속초에서의 경계이후 급격한 심신의 변화를 비추어 볼 선각자를 찾아 사업을 전폐하고 수년 동안 주유천하를 하였지만 승속과 타종교 지도자를 불문하고 크고 작은 반면교사뿐이었기에 사찰에서 승려들과 마주치면 내가 먼저 피하여 인연을 맺지 않으려 하였다. 수타사 이야기가 시작되는 그즈음 현실복귀를 위한 입전수수의 고달픈 여정이 시작되는 시기였다. 실사구시는 언감생심이었지만 저자거리 역삼동에 무역회사를 설립하여 세계를 무대로 지평을 열어가는 현실복귀가 진행 중이었기에 주말이면 산사를 찾아 심신을 추스르는 것은 정해진 과제였다.

강원도 홍천 수타사는 공작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동서로 맑은 냇물이 고요히 흐르는 한 폭의 수채화 같은 고찰이다. 당시로는 외지고 고즈넉한 산사이기에 탐방객도 별로 없을 뿐더러 심신의 평정을 도모하는 나에게는 예스러운 풍경 그대로가 안성맞춤 법당이었다. 특히 한겨울 설경이 연출될 때면 자지러지도록 아름다움을 빚어내는 사찰이다. 그해 만추 경내에서 이 승려와 두어 번 마주쳤고 그럴 때마다 그가 헛기침을 하였지만 애써 외면하다가 차 한잔 하자는 청을 박절하게 거절할 수 없어 산방으로 이끌려 들어갔다.

소박하고 정갈하게 꾸며놓은 산방에서 다상을 마주하고 통성명한 이 승려는 수타사 주지소임을 맡고 있는 비구 보*이었다. 병색이 완연하였지만 진정성이 묻어나는 어눌한 목소리의 한마디 한마디에는 절박함이 베여 있었다. 태생적 약골로 소년기부터 몸이 아파 고교를 마치고 바로 중이 되었다는 것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살아도 사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20여년 출가수행도 건강회복에는 별 도움이 못되었고 자기발로 걸어서 월정사 산문 밖을 나가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이런 꼴을 측은하게 여긴 문중에서 주지소임을 맡겨 지금 이렇게 살고 있지만 이제 나이도 들고 자기에게 죽음이 임박했다는 것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커서 어떻게 할 바를 모르겠으니 도와 달라는 것이다. 평생을 병고와 부실한 몸으로 생사의 문턱에 걸쳐있었던 사바중생의 절박함이 절절히 묻어났다.

당신은 생사를 희롱하시던 석가부처님의 자칭 제자고 그 잘난 조계문중의 중 아니냐. 생사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출가사문의 본분사이고 육신의 죽음 또한 생사문제에 당연히 속하는데 지금껏 뭐하였느냐고 물었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벽장문을 주르륵 열었다. 그곳에는 갖가지 불교경전이 벽면 한가득 진열되어 있었다. 20여년을 저 경전에 의지하여 살길을 찾았지만 아직 이 꼴이라는 것이다. 경전에 담긴 석가부처님 법력이야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이지만 생사해탈법이 담길 그릇은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의 몫이다. 당시 이 비구는 육신이 너무 쇠하여 한 번에 법을 쏟아 부을 수 없는 상태였다. 내가 그냥 떠나버릴까 전전긍긍하는 주지를 잡다한 비유설로 수위를 낮추고 달랜 후 그날 밤을 수타사 객사에서 묵었다. 익일 여명이 밝아올 즈음 서울로 출근하기 위하여 마당으로 내려서자 주지가 내 차 앞에서 어슬렁거렸다. 일간 다시 오마 기약하고 수타사를 벗어났던 일련의 사건이 이 비구와 아련한 인연의 시작이었다.

초기 나의 만행은 알에서 갓 깨어난 햇병아리처럼 천지가 비좁기만 한데 와중에 이 비구가 눈에 밟혀 두어 차례 수타사를 방문하였고 밤을 지새우는 참선공부로 급속히 생기가 돋고 활발해졌다. 이듬해 봄 주지와 동행하여 오대산 월정사로 만행을 갔었다. 자기 친정인 월정사에 도착한 주지는 아직까지 적멸보궁은커녕 그 아래 상원사도 가본 적이 없다고 하기에 그럼 지금 가자고하여 상원사를 둘러 적멸보궁까지 올라갔다. 오대산에서 20여년을 승려로 살았지만 적멸보궁을 오른다는 것은 꿈에서도 불가능 하였는데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적멸보궁에 참배하고 눈물을 글썽이며 고마워하던 산승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날 내친김에 적멸보궁 위 오대산 정상인 비로봉까지 같이 올랐다가 하산하였다.

주지의 건강상태는 의학적으로 산행은 전혀 불가능한 체력이었지만 일련의 참선공부 과정을 통하여 병마가 사라지면서 활동영역이 급격히 확대되었다. 해탈인연과의 동행만으로도 육신의 한계를 초월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체험한 산승에게 거칠게 없었다. 오랜 병고로 성찰이 잘된 기반도 있었지만 심신의 변화이후 말 그대로 보살이었다. 당시는 지금의 우곡선원이 설립되기 전이었다. 토요일 오후면 역삼동 내 사무실로 각처에서 참선공부자들이 모여들었고 장소가 협소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이웃에 있는 선학원 강남포교원을 활용하여 대중법문을 하였다. 또 군포의 모 사찰에서 설법과 야단법석이 있을 때 마다 홍천에서 댓 시간을 차를 끌고 법회에 동참하던 어느 날 환하게 웃으며 이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사부대중 앞에서 선언하였다. 그 후 이 산승의 불꽃같은 인간불사 열정과 그의 해박한 불교지식은 우곡선원 오계원의 이론체계를 다듬었다.

비구 보*의 지난 일생은 형언하기 어려운 병마에 시달렸지만 불과 서너 달 남짓에 생사고해의 덧없는 사바세상 이치를 터득한 환희지를 회향하려 무던히도 애쓰던 갸륵한 모습이 마치 어제 같다. 이 산승이 오랫동안 도반으로 같이 있었더라면 석가부처님 정법을 재건하는 승가의 사표가 되었을 것은 자명하며 본원 발전에도 많은 공적을 남겼을 것은 불문가지였다. 참사람이 없는 이 말법세상 어디 한 곳 의지할데 없어 무시로 독야청청 할 수밖에 없는 인간불사 노정인데 어느 날 잠자듯이 훌쩍 우리 곁을 떠나버린 비구 보*를 기억할 때면 애잔한 그리움이 늘 마음 한켠에 맴돈다. 지금은 비록 유명을 달리했지만 고즈넉한 산사의 정취와 산승 보*과의 아름다웠던 여정을 한편의 詩로 반추하고 비구 보* 영가의 극락왕생을 합장하여 발원하며 필을 놓는다.

 

山寺

  Ⅰ

기암괴석 산울타리

높은 담장 위에

새벽 별 무더기

초병을 섰다

 

푸른 갑옷

붉은 휘장 둘러친

천상의 용장들이

삼매에 잠든

산사를 호위하여

피안의 세계로 인도할제

   

댓돌 위에 흰 고무신

저 산승은

꿈속 길도 절로 일세라

  Ⅱ

풍경도 잠든 산사

새벽으로 가는 수레조차 없어

있는 것 그대로 애닯다.

   

괴괴한 정적 익어

베개 위에

머리 얹혀 둠이 서러워

객 방문 열고 닫힘이 너댓번

   

새벽 한기에 절인 산짐승

울부짖는 소리 따라
대청마루 내려서면

풀섶 위에 올라앉은 찬 서리

포행길을 에워싸고

   

여울물 따라 흐르는 고요

음미하는 길손

오지 않을 이를 기다리는 정거장의 사내

별 그림자 쫓으며

경내를 서성인다.

  Ⅲ

산사의 여명은 아리도록 깊다

물안개 일어 기와지붕 휘감아

밤을 밝히던 가로등

잣나무 숲 속에서 졸고

   

깨어날 어둠이 두려워

객방 문고리 붙잡고 연연하는 심사인데

무심한 햇살
노송 끝자락 밝히며

속세로의 귀향을 재촉한다

   

산 까치 날아올라 후원 담장 차지하고

얼룩빼기 산 다람쥐 빈 마당 휘저어도

가부좌 수도승 미동조차 없어

산사의 아침은 또 다른 정적 깃든다.

   

질서 있는 고요함에 취한 나그네

행장 꾸리는 손끝 저려

산사의 하룻밤은

천년의 삶이어라.

살고 죽음이

         

훌쩍 떠나더니

지금은 어디에서 무얼 하시는가

     

이 상강에

생사의 여울목 건너지 못한

저켠에서

찬서리 맞으며 떨고 있지는 않는가

    

아님

열반의 저 언덕

만추의 햇살아래

취해 있는가

   

여보시게 선객

왜 대답이 없으신가

생·사를 멸한 세상에서도

아직

면벽으로 다스릴 마음 있는가

   

그렇게 가버린 후

우리는 많이 슬퍼하였네

   

그대 뜬자리 그리워

산과 들 헤매인

한 절기

생채기로 얼룩졌지만

님의 빈자리에 서린

따스한 온기 그대로구려

    

우리는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우리는 진정 무엇으로

생·멸을 겪어야 하는가

   

가신 길 그곳에서

그대로 놓아버리시게

되돌아오면

그때 다시 가야할 길 억겁만리 일텐데

벗어버린 지금 그 마음으로

그곳에 영생함이

선객의 행실 아니런가

   

이승은

선·악 시비가리고 부귀영화 탐하느라

내 할 도리 다 하지 못하고

희비애락에 휘둘린 삶 아니었던가

    

선객

우리는 살면서 인연꽃 피우는 거름 되겠소

들고 날 때 가끔

그대 머문 피안의 소식 들려주면서

부디 무여 열반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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