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양산 공양과 본지풍광
불도는 초조인 석가부처님의 삶과 해탈법이 정석이다. 또한 불교는 지고지순한 진리의 보고이지만 시대와 인종 무늬에 상관없이 누구나 기연이 닿으면 개오하고 생사해탈지혜를 득할 수 있다. 다음은 홀연히 다가온 불(佛)과의 인연이후 광대무변한 불세계로의 만행여정에서 벌어졌던 나의 유별난 구도역정 한 토막을 피력한 것이다. 92년 3월 8시간의 경계마지막 현실세계인 유위법계로의 귀의 첫 장면에 등장한 불타의 미소로 내 삶은 송두리째 불도(佛道)에 올인 되었다. 단 한 순간도 멈출 수 없는 심신의 행로는 가톨릭이었던 당시 내 종교와는 무관하게 오로지 불(佛)세계로만 내달렸었다. 전대미문의 희유한 경계체험으로 불성(佛性)이 활화산처럼 용솟음쳤으나 칠통 같은 전생습기는 쉬 사라지지 않았다. 오감이 작동하고 생각을 일으킬 때 마다 들숨날숨사이의 찰라가 억겁의 기나긴 고통이기에 결코 마음을 흩뜨릴 수 없는 절대고독의 선상에서 비추어 볼 정명경을 찾는 길 없는 길로의 주유천하가 일상이었다.
이 글은 94년 4월 초순경 문경 희양산 봉ㅇ사에서 있었던 점심공양에 얽힌 사소한 사건이 오도된 불도에 경종을 울리는 단초가 되었지만 불가는 아직 오밤중이다. 공양사건이 일어난 후 서울 한복판에서의 목탁 참상이 전국에 생중계 되는 등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한동안 불문이 요동을 쳤었다. 그해 이른 봄 한 승려와 만행 차 들른 봉ㅇ사는 재가자 출입을 통제하는 출가자 전용 참선수행 도량이었다. 경남 창원서 눈길을 헤치며 심산유곡을 가다보니 점심시간을 훌쩍 넘겨 사찰에 도착하게 되었다. 법당참배를 마치고 계단에서 공양간이 어디 있나 두리번거리는데 때마침 마당을 가로지르는 승려에게 나와 일행이었던 비구승이 점심공양 좀 하자고 말을 건넸다.
사찰에서 점심 한 끼는 길손을 위한 관행이기에 공양간이 어디라고 눈짓만 해주어도 될 일을 두 중이 눈 내리는 절 마당 한가운데서 말다툼을 하였다. 마치 산적 같이 생긴 중은 거만스럽게 뒷짐을 지고 “스님은 어디 문중이고 은사가 누구며 왜 처사랑 여기 들어 왔느냐”는 둥 시종일관 시비분별이었다. 참 사람답게 살려고 삭발염의로 중노릇 하는 본분은 어디 팔아먹었는지 언사가 저자거리 시정잡배 뺨칠 정도였다. 눈발이 휘날리는 심심산골의 차가운 날씨도 그렇고 허기가 지는데 중들의 개떡 같은 짓거리에 기어이 불통이 터졌다. “밥 좀 먹자는데 개 족보 보다 더 못한 중 족보는 왜 따지고 지랄하느냐”고 희양산이 갈라지도록 냅다 고함을 질렀더니 마당 아래쪽 요사채 방문이 열리며 풍채 좋은 백발보살님이 이리오라고 연신 손짓을 하였다.
백발보살님은 공양간 아랫목에 방석을 깔아주며 마당에서 주지와 다투는 소리를 다 들었다는 것이다. 당신은 세속 업을 접고 이생에 마지막으로 부처님께 회향하려고 공양주 소임을 자임하였다는 예사롭지 않은 풍모의 보살님이었다. 임금님 수라상 같은 밥상을 차려 주고는 여기 선방에 80명 대중이 사는데 당신 눈에는 중 같은 중이 한명도 없다는 것이다. 하루 세끼 공양을 해주는 위치이기에 대중들의 일거수일투족이 밝은 눈에 확연히 관찰되었을 것이다. 참 사람의 길을 깨쳐 알지 못한 사바중생은 배우고 경험한 것을 자기로 알지만 그것은 표면의식일 뿐 밝은 눈에는 속성이 다 드러나기 마련이다. 특히 음식물을 섭취할 때는 동물본성이 표출되는 것을 감출 수 없기에 아귀모습 등 전생습인에 의한 중생근기를 단박에 알 수 있다. 불교는 사생육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바중생의 속성을 팔난으로 비유하고 있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소름 돋는 심리철학이다. 난 중을 만나러 여기 온 것이 아니라 산천경개 만행 중이라고 말하고 그만 자리에서 일어서려니 누룽지를 끓여오고 과일을 내놓으며 굳이 발길을 잡는 깊은 뜻이 있었다.
조금 있으면 서ㅇ종정스님이 대중법문을 할 건데 꼭 참석해서 법문을 들어보라고 신신당부를 하였다. 난 그때까지 종정스님이 뭐며 법문에 대해서도 전혀 아는바가 없는 천둥벌거숭이였다. 얼마 후 차 소리가 나고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부산서 오는 불자들인데 저 위 설법전으로 들어가면 종정 법문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설법전은 사람들로 가득차서 맨 뒤쪽 벽을 등지고 섰었다. 중간은 재가불자들이고 양 벽면은 족히 백여명은 될 듯한 승려들이 가사를 걸치고 쭉 늘어서 있었다. 반대편 문으로 큰 지팡이를 든 노승이 들어와 착석하자 부산 불자들을 이끌고 온 승려가 법상 위에 큰 봉투를 올려놓으며 “약소하지만 얼마 넣었습니다.”라고 말하며 큰 절을 세 번 하였다. 연이어 마당에서 중 족보 따지던 승려가 죽비신호로 “자 다같이 종정스님께 삼배합니다.”라고 하면서 절을 유도하였지만 난 벽을 등지고 가만히 서있었다. 법당참배는 하지만 승려한테 삼배를 해본적도 없고 더구나 돈 봉투를 앞에 두고 절을 할 수 없었다.
대중 3배가 끝나고 자리정돈을 한 후 가만히 서있는 나를 주지가 죽비로 가리키며 “저기 처사는 왜 종정스님께 삼배를 안하느냐”고 힐책하였다. 승려가 유가의 ‘처사’라는 하대 존칭도 귀싸대기 깜인데 중한테 돈 바치고 절 바치는 괴이한 장면에 얼떨떨해 있던 참에 시비를 걸어왔다. 절을 하든 말든 그건 내 사정이고 공양주보살님한테 점심 대접받은 빚 갚음으로 억지춘향이 짓하느라 여기에 참석했을 뿐인데 상황이 묘하게 돌아갔었다. 종정법문이 얼마나 석가부처님 정법을 대변하는지 알 수 없지만 이 자리에 동참하였다고 터무니없는 종교행위에 빠진 맹신자이거나 중을 떠받드는 천치 등신은 아니다.
무늬에 도취되어 천지분간도 못하는 까막눈이 잠자는 사자코털을 뽑는 것도 유분수지 석가부처님의 무상심심미묘법을 조금이라도 맛보았다면 절대로 할 수 없는 대단히 위험한 망동이었다. 불교공부에서 반야심경은 삼라만상 존재이치를 터득하는데 약방의 감초와 같고 특히 출가자는 이런 반야경을 입에 달고 산다. 우주법계 제행은 허망한 것임을 깨닫고 나[我]라는 색·수·상· 형·식 오온(五蘊)에 속지 않아야 반야지혜가 생긴다는 너무도 간단하고 당연한 석가부처님의 생사해탈법은 엿 바꿔 먹었는지 시건방진 아상이 끓어 넘쳤다. 마당에서 중 족보 따지다가 털린 앙금으로 생트집을 부리는 산적 같은 중을 건너뛰어 설법전이 터질 듯한 톤으로 “종정이라는 당신 왜 돈 받고 절 받는지 사유를 말해보라”고 일갈하였다.
그 순간 좌중이 얼어붙었고 두 손으로 움켜잡은 종정의 커다란 주장자가 한동안 다르르 떨리더니 마치 전기에 감전된 듯 주장자를 휙 내던지고 옆문으로 나가버렸다. 종정이 돈 받고 절 받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물었는데 대답도 없이 도망치듯 나가버리기에 난 신발 벗어놓은 반대편으로 나와 마당가운데서 종정을 세워놓고 중이 돈 받고 절 받는 이유가 뭐냐고 다그쳤다. 그리고 그와 나는 장승처럼 마당가운데 우두커니 서있게 되는 기묘한 상황이 연출되었지만 아무도 개입할 엄두를 못 내었다. 한참을 지나 종정을 시봉한다는 승려가 이러지 말고 들어가서 정리하자는 말에 초가지붕으로 단장한 종정거처에 삼자가 앉았지만 중이 돈 받고 절 받는 법문은 끝내 못 들었다. 이런 상황을 목격한 봉ㅇ사 원로들이 나를 해오자인지 점검하겠다고 청을 넣기에 헛소리 걷어치우게 하고 따뜻한 객사에서 머물다 송별을 받고 그날 저녁 희양산을 떠났다.
태백산 각화사에서 며칠을 정진하고 동해안을 거쳐 창원자택에 도착한 즈음에 서ㅇ종정이 갑자기 사임하였다는 소식을 뉴스로 접하였다. 종정이 돈 받고 절 받는 법문을 요청한 날로부터 딱 7일만이었다. 공양주보살님이야 당신의 눈에 비추이는 말법 증후군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에 내가 가공되지 않은 원석임을 알아보고 엉터리불교가 제도되기를 바랐던 것이겠지만 그로 말미암아 후폭풍은 거세었다. 석가부처님의 정법과는 천리만리 어긋난 불도에 취한 주장자의 소멸로 서울 한복판에서 목탁참상이 벌어지고 나와 탁마하던 태백산 선승이 내 만류에도 봉ㅇ사 회주로 옹립되어 탁발로 대중을 거두다가 도중하차 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한 끼 공양문제로 촉발된 본지풍광에 오염된 풍토가 뒤집어 졌지만 뿌리 깊은 까막눈 세상은 여전하고 불타의 정법을 꽃피울 불종자로의 씨앗갈이는 아직도 요원하다.
불교를 표방하는 모든 사찰은 누구의 소유물이 아니라 모든 불자들의 수행도량이자 고달픈 영혼의 안식처로 존재하는 성스러운 전당이다. 더구나 구도여정인 길손에게 밥한 그릇 재보시하는 것은 자리이타의 고상한 불도 이전에 아귀다툼 저자거리에서도 결코 저버리지 않는 인간사의 기본 도리다. 한국 선불교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봉ㅇ사에서 한 끼 점심공양문제로 촉발된 후폭풍이 불교역사의 한 획으로 그어졌지만 불타의 무상 도리를 알 턱이 없는 무상한 세월은 오늘도 살같이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