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정산 고승의 신족통

 

이 글의 무대는 부산 금정산 모 암자이다. 94년 이른 가을 무렵 업무 차 부산을 갔던 참에 범어사를 찾았다. 초행이라 주차장에서 사찰정문이 어딘가 두리번거리는데 내 옆에 차를 주차한 낯선 보살이 어딜 가려느냐고 물었다. 범어사라고 하였더니 거길 왜 가려고 하느냐며 저 위 원ㅇ암에 도력 높은 큰스님이 주석하는데 자기랑 같이 가자는 것이다. 도 닦는 곳이 절이니 도력 높은 큰스님이 있다는 말에 범어사는 생략하고 보살 뒤를 좇았다.

양복차림에 구두를 신고 계곡 돌길을 건너고 가파른 산길을 미끄러지며 한참을 오르니 꽤 규모 있는 암자가 보였다. 나를 안내한 보살한테 “어디서 큰스님을 만날 수 있느냐”고 했더니 저 위에 주석하는데 계단아래 우측 방에서 기다리라고 하였다. 한참을 우두커니 앉아있는데 멀대같은 중이 나타나 큰스님을 찾는 목적을 물어보기에 “도 보러 왔다”고 하였다. 여기로 오는 도중에 그 보살이 지ㅇ큰스님은 온갖 도술을 부린다고 자랑하였기에 말이 그렇게 나왔던 것이다.

큰스님 친견하러 왔다고 했으면 만남이 매끄러웠을 텐데 당시는 그런 사찰법도가 있는지도 몰랐다. 꽤 시간이 흘러도 도력이 높다던 큰스님이 안 나타나 슬슬 오장이 뒤틀렸다. 절에 시주하러 온 것도 아니고 당돌하게 도 보러 왔다는 인간하고 부딪혀 봐야 별 영양가 없을 테니 기다리다 지치면 돌아가겠지 하는 낌새였다. 나야 여기서 벼슬하려는 것도 아니고 도통한 도인이 있다기에 따라왔던 것뿐이라 가고오고는 내 마음이었다. 초가을 더위에 여기까지 올라오느라 땀이 났던 참이라 선선한 솔바람 불어오는 접견실 돗자리 위에 넥타이를 풀고 대자로 드러누웠다. 선잠이 든 한참 만에 “에헴”하고 인기척을 내면서 작은 체구의 노승이 그 멀대 중을 앞세우고 문발을 밀치며 방으로 들어왔다.

큰스님을 기다리느라 인내심이 바닥나 심상이 뒤틀린 나나, 접견실에서 대자로 퍼져있다는 전갈을 받았을 큰스님이나 꼬인 건 피장파장이었다. 큰스님 도 보러 왔다는 것은 이미 들어서인지 어떻게 왔냐고 묻지도 않고 새색시처럼 새초롬히 앉아 있기에 내가 먼저 “큰스님이 뭐냐”고 물었다. 보통 불자들은 큰스님하면 다짜고짜 그 앞에 엎어지는 것이 정상인데 난 뭐가 커서 큰스님인지 도통 알지 못하는 청맹과니라 그 앞에 엎어질 일도 없었다. 첫인상부터 어긋난 나한테서는 큰스님대접은커녕 뉘 집 멍멍이인가 하는 표정이었을 것이니 큰스님 심기가 편치 않을 만도 하였다.

큰스님이 뭐냐는 질문은 별 어려울 것 같지 않아서 그냥 편하게 던진 말인데 아무런 대꾸도 없이 조그만 눈을 연신 깜박거리며 나를 뚫어지라 응시하였다. 눈은 마음의 창이자 영혼의 힘이다. 생사경계가 없는 무심도인이라면 안팎이 똑같은 세계관이기에 상대편 기색을 살피고 말고 할 것이 없다. 난 산정에서 좌선에 들면 온종일 태양을 정면으로 주시하면서 눈 한번 깜박거리지 않는데 분별중생의 흔들리는 심상으로 나를 제압하려는 시도는 불을 보고 덤벼드는 불나방과 다를 바 없었다. 석가부처님의 무념무상도리를 조금이라도 맛보았다면 절대로 할 수 없는 대단히 무모한 독심술을 쓴다는 걸 알아챘다. 불법(佛法)의 정수(頂首)인 무념무상(無念無想)은 아무생각이 없거나 못 보는 것이 아니라 맑은 거울을 들여다보듯 상대법이 있는 그대로 환하여 생각을 일으킬 필요가 없는 최상의 경지를 말한다. 무늬에 엎어지는 어리석은 불자들로부터 추앙받는 자아도취를 도력이라 믿는 속물중생의 못된 버릇으로 치부하기에는 당시의 난 이글거리는 불덩이 그 자체였기에 독심술을 구사하는 사술도 용납할 수 없을 뿐더러 나에 대한 도전으로 비추어졌다.

무심지혜의 바탕은 생사경계가 없는 순수성이고 법력은 솔직담백한 진실에서 나온다. 절집 창호지 문구멍으로 바깥동정을 살피듯이 나를 판단하려는 그 순간 볼 장은 다 본 셈이다. 큰스님 도를 찾아 여기까지 올라온 것은 나였으니 그를 마냥 묶어둘 수 없어 시장판 주전부리삼아 듣자하니 도가 높다던데 그거 한번 보자고 하였다.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큰스님한테 물을 공부는 없을 듯하여 여길 올라오면서 들었던 신통방통하다는 큰스님 도력을 한번 보여 달라는 아주 간단한 오더만 하였다. 출가 승려는 도 닦는 것이 전문직이기에 이 분야는 소질이 있을 것 같아 동네방네 소문난 큰스님 도를 좀 보자고 했는데 넋이 나갔는지 머리를 푹 숙이고 가타부타 한마디 말도 없이 황금 같은 시간만 흘러갔다. 긴 침묵을 깬 것은 옆에서 지켜보던 멀대 중이 바랑을 들고 와서 지ㅇ 큰스님 더러 은행 마감시간이라며 어깨에 바랑을 걸쳐주자 그때야 제정신이 돌아왔는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벌에 쏘인 듯 늙고 젊은 두 중이 뒤도 안돌아보고 원ㅇ암 산길을 다람쥐같이 내 달려간 금정산 숲에는 긴 황토먼지만 피어올랐다.

그 해 초가을 금정산 원ㅇ암에서 바랑 메고 은행으로 달려가는 도력 높은 큰스님의 기막힌 신족통을 두 눈으로 목도하였다. 산중 출가자도 자본주의 사회구성원이기에 사적인 업무가 있을 것이다. 도력을 보여 달라는 청이 정히 난처하다면 양해를 구하면 될 일을 지체 높은 고승대덕의 그런 괴이한 모습은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과 별반 다르지 않아보였다. 출가자의 두타행에 은행가기 항목이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큰스님이 바랑 메고 은행으로 달려가는 큰 의문을 대혜종고 선사의 1700공안+1화두로 추가함이 가할 듯하다. 그 일로 도대체 이 큰스님 존재가 뭔가 싶어 알아보니 수레가 가지 않을 땐 소를 쳐야지 수레를 치면 안 된다는 금정산 큰스님 화두 해제법문을 어디서 발견하고 수레에 묶이고 소에 묶인 근기로 도를 논하는 서글픈 무명시대를 애도하며 필을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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