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정 사리와 절 불사

 

사바세상 권모술수가 횡횡하는 인간사를 외면하고 불교를 말할 수 없지만 이 글은 절집 키우는 불사로 사채업자에서 불교종단 종정으로 둔갑한 어느 중의 인생흑막사이다. 절집도 사람 사는 곳이고 이왕지사 편리하고 정갈한 모습이면 더할 나위 없지만 웅장하고 거창한 절집을 법력과 연관 짓는 그릇된 풍조에서 빚어진 한 토막 논픽션이다.

1997년 당시 어떤 중이 쓴 인생ㅇㅇ진법이라는 운명을 점치는 역술 같은 책이 각광을 받아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였다. 그로 말미암아 사주팔자가 세인들에게 초미의 관심사였고 이런 걸 도력이라고 말하는 혼탁한 정신계를 조장한 선구자가 정ㅇ운이라는 중이였다. 이 책으로 말미암아 도력이 높아진 그가 큰 불사를 한다는 소문이 자자하였다.

중 이름도 제법 고상하게 들리지만 법력 높은 도인이라는 풍문에 만사를 제쳐놓고 찾지 않을 수 없었다. 충북소재 주소지를 따라가니 산골짜기를 점유한 재단법인 ㅇㅇ불교라는 가람은 여기저기 절 짓는 공사 흔적에 가건물이 산자락을 차지하여 사람들이 꽤 많이 운집하는 모양새였다. 종정실이라는 간판을 보고 들어가 저자를 찾으니 큰 체격에 걸걸한 노장이 자기가 정ㅇ운이 아버지라며 맞이하였다. 소문으로 들은 도인하고 절집 문중 아버지 혈통과는 아무 상관 없기에 건성으로 듣고 돌아서니 이걸 한번 보라며 응접실 중앙에 진열해놓은 번쩍번쩍한 도자기 함을 가리켰다. 별 시답잖게 이것도 석가부처님 사리냐고 하였더니 종정 자기 자신 사리함이라고 하였다.

그 즈음 전국 만행 여정에 부처님 진신 사리는 묘하게도 여러 곳에서 부각되었다. 지리산 화엄사 각황전에서 참배를 마치고 나오려니 법당보살이 하얀 장갑을 끼면서 꼭 부처님 진신 사리를 친견해야 될 분이 오셨다면서 불단 옆에 전시된 사리함 뚜껑을 조심스럽게 열어 보였다. 화엄사는 당시 탑 해체 복원 공사 중에 발견된 무슨 사리라는 뼈를 보관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불교의 사리는 원래 화장터에서 나온 중 뼈다귀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해탈진리를 증득한 사람의 고귀한 품성을 빛나는 보석인 사리로 비유한 것을 형상에 묶인 군상들이 뜻을 잘못 해석하는 데서 얼토당토않은 뼈 사리가 등장하였을 것이다. 해탈진리를 가르치는 심오한 비유법문을 요해하지 못하면 달은 안보이고 가리키는 손가락에만 매달린다. 불교를 미신과 뒤범벅된 맹목적인 신앙의 잣대로 보면 불타의 해탈법은 오리무중이고 닦을수록 아득하여 눈높이만큼의 절교 중교로 변질된 모습이 지금이다. 당시 나와 일행이었던 승려더러 “이거 네가 전생에 벗어놓은 뼈다귀다” 하였더니 그 중이 날름 받아 “아 예 내꺼 맞습니다.”라고 하자 그 법당보살이 사리함 뚜껑이 깨어져라 꽝 닫고 나가버린 에피소드가 있다.

사흘에 밥이 아홉 그릇인 인간이 자기 뼈를 구워서 담을 사리함을 미리 진열해 놓고 자랑하는 이치들은 전형적인 부처 장사꾼들이었다. 종정 당신은 법당이 커서 저승 갈 때 남보다 장작 값이 더 들것 같은데 그 업 많은 법체에 사리가 나올게 어디 있느냐고 쏘아붙였다. 내 억양을 읽고 자기도 부산사람인데 여기까지 왔으니 차 한잔하자고 붙잡고 늘어졌다. 저 사리함은 자기 뜻이 아니고 정ㅇ운이 짓이라고 아이가 선생님에게 일러바치듯 실토하였다. 이런 해괴한 모사를 꾸민 것은 어리석은 불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영업술책이었던 것이다. 경상도 사람이 다 늙어서 이 추운 골짜기에서 뭐하는 짓이냐며 따뜻한 부산으로 내려가 살라고 충고하였더니 눈물을 쏟는 용ㅇ종정의 하소연은 기가 막혔다.

자기는 원래 부산서 돈놀이하던 사채업자였다는 것이다. 정ㅇ운이 명성을 듣고 절집부자의 연을 맺게 되었고 듣자 하니 부처장사가 사채업 보다 낫겠다 싶어 여기에 몽땅 집어넣은 것이 지금 이 신세라고 하소연하였다. 절 불사가 아니라 절 사업에 투자한 사채업자가 불교종단 종정으로 둔갑되어 있었던 것이다. 석가세존 당시 살생을 업으로 삼았던 앙굴리말라가 그렇듯 중 되기 이전의 직업을 탓할 건 아니지만 아마도 많은 불자들이 걸걸한 용o종정 풍모와 웅장한 사리함을 보고 그 앞에 엎어졌을 것이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추운 날씨에 용o종정이 댓 살 먹은 여자아이 손을 잡고 역삼동 내 사무실로 찾아왔다. 여자아이는 해인사 누구의 불필 같은 자기 딸이라는 것이다. 늙은 중과 전혀 조합되지 않는 그림에 기가 막혔지만 솔직한 그의 언사는 하소연을 듣지 않을 수 없었다. 장안에서 소문을 들었다며 그즈음 내가 남북교류사업 승인을 받아 활동하던 것을 알고 불제자의 실사구시에 감탄한다며 읍소하였다. 냉전과 정치이념이 극명한 북측과 직접 소통하며 무역사업을 할 수 있는 자격취득에 굴지의 대기업도 나가떨어지던 시절 기적적으로 남북교류사업 승인을 받았었다. 반세기 넘도록 대립과 갈등이 첨예한 남북한 상황에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속물중생에게 동족인 북측과의 무역을 자율에 맡긴다는 것은 정부당국도 대단히 고심되는 문제였을 것이다. 그때 제출한 내 신원조사서에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석가부처님이고 취미는 참선, 교우 직업은 승려 누구라고 적었는데 엄격한 세곡동 면접에서 남북교류사업 적임자를 찾았다며 환대하였다. 할머니가 독실한 불자여서 내가 말하는 불교의 무소유정신과 그 원대한 힘을 이해한다는 개신교 장로인 담당관과 인과연기 법칙이 개인과 국가에 미치는 영향과 우리나라 국운상승비전 등 2년여의 참선법이야기로 그는 준 불자가 되었다. 냉혹한 국제사회에서 늘 아슬아슬하고 답답한 남북한이 서로 평화롭게 공존하며 발전할 수 있는 최선은 경제교류라는 판단으로 도전한 일련의 인간불사 원력에 영검한 제불보살님의 가피력이 닿았던 것이다. 각설하고 난 행정전문가는 아니었지만 용ㅇ종정의 딱한 처지를 거절 못하고 문서를 살펴보니 재단법인이 절 짓는 공사비를 주지 않아 소송에 휘말린 관할관청의 최고장 등이었다. 그 유명한 당신 아들이 왜 이걸 해결 안하느냐고 했더니 법적 책임은 자기가 지고 정작 정ㅇ운이는 해외 유람이 일상이라는 것이다. 역술 책으로 명성이 높아진 중이 절 불사 명목으로 사채업자를 끌어들여 종정으로 옹립한 후 자신은 세상꽃구경 중이었던 모양이다.

자기들 절 불사는 내 알바 아니지만 문광부에 호출되어 들어가야 하는데 같이 좀 가자는 노승의 간청을 면전에서 박절하게 거절할 수 없었다. 엄동설한기라 부녀를 내 차에 태워 당시 광화문에 있던 문화관광부 종교과로 올라가니 불교담당 부서가 따로 있었다. 용o종정이 인적사항을 말하자 앳된 여성사무관이 용o종정 면전에서 말끝마다 아저씨라 부르면서 행정 처분에 응하지 않는 노승을 질책하는 태도가 금세 잡아먹을 듯하였다. 안하무인 격인 사무관의 거친 어투는 민원인에게 들볶인 화풀이겠지만 그렇다고 종정이 당장 능지처참할 중죄인도 아니기에 듣는 나는 그게 아니었다. 내 눈앞에서 벌어지는 황망함이 인간의 한계를 넘자 벌떡 일어나 “야 이ㄴ아 넌 애비애미도 없냐. 스님보고 말끝마다 아저씨라니, 눈구멍도 없는 ㄴ이 어떻게 이런 데서 공무원을 하느냐”고 천장이 무너질 듯 호통을 치고 “어떤 놈이 이런ㅅㄴ을 불교담당으로 갖다 놓았느냐”고 다잡는 기세에 불교부서가 발칵 뒤집혔다. 그들의 행정업무는 내 알바 아니지만 국법도 사람이 만든 것이거늘 예의를 벗어난 담당사무관의 일탈에 그만 폭발을 하고 말았다. 나는 덜떨어진 중을 구박해도 남들이 그러는 꼴은 못 보는 성미 때문에 한두 번 곤란을 겪은 것이 아니다. 표충사 사자암 보살 건을 비롯하여 불과 2년 전 나를 의지하여 공부하는 수좌들을 절에서 내쫓기 위하여 통ㅇ사 뭇 중들이 저지른 관룡사 집단폭행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 혈혈단신으로 기성제도권과 크게 충돌하였던 쓰라린 경험도 그 순간은 참고가 못되었다.

사람도리를 벗어난 담당 사무관의 언사로 말미암아 생사가 교차하는 난리판에 종정 업무는 고사하고 불교부서에서 사태수습이 안되자 머리가 허연 사람들이 달려와 사죄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일의 본질과는 전혀 다른 인성문제로 판이 뒤집어진 것을 기화로 용ㅇ종정은 십년 묵은 체증이 다 풀렸다며 여차하면 내 사무실로 찾아왔다. 어느 날 해외유람에서 돌아온 중이 나를 좀 만나자고 청을 하여 잠실의 모 호텔로 나갔더니 직전 VIP 동서라는 작자와 같이 나와 건들건들 시건방을 떨기에 “야 이 중놈아 찻값은 네가 내라”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온 이후로 용o종정과도 연을 끊었다. 이후 그들의 행간을 알 수 없으나 절 불사와 관련한 흑막사 한 토막을 선이야기에 실어 오도된 불도에 경종을 울리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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