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유인의 마음동산 꾸미기
대자유인은 마음에 잔재가 남지 않는 사람을 일컫는다. 그는 업으로부터 초탈되어 생사경계가 없고 시대적소임을 다하되 잡다한 속세상의 가치관에 구애받지 않는다. 무소유로 더불어 함께하는 공유경제는 인류사회의 보편적인 염원이다. 불도량을 조성하여 탐욕과 집착이 없는 해오자(解悟者)를 배출하지 않는다면 삿된 욕망의 임계점에 도달한 인간사는 머잖아 대문 밖이 곧 황천일 것이다.
21세기 인류사회는 민족과 종교 인종주의로 갈등을 빚고 정보와 자산투쟁은 나날이 격렬하다. 빅 데이터는 인간중심의 사회질서를 파괴하고 생존경쟁에 부적합한 잉여인간을 대량 양산할 것이다. 대의를 상실한 사회는 편견과 증오로 극한대립을 유발하고 코로나19 바이러스로 명명된 천벌은 이미 참담한 현실이 되었다. 누가 무슨 힘으로 재앙으로부터 인류를 구할 것인가. 첨단의술과 진부한 구원종교로 해소될 악업은 없다. 해탈에너지가 깃든 대자유인의 마음동산이 난세를 극복할 유일무이한 도량이 될 것이다. 무념무상심을 증득한 대자유인의 일상적인 삶 그 자체가 무명세상의 등불이기에 시대를 계도할 참 사람농사가 절실하다.
너와 나 천지가 둘 아닌 일체동근이며 삼라만상이 빛이었음을 깨달은 환희지로 업의 대전환을 이루고 차마 견디기 어려운 입전수수로 전생습기를 해소한 사람이 바로 대자유인이다. 내안의 극락정토를 개척하고 저자거리에서의 실사구시 공력이 없다면 그는 아직 마음동산을 꾸밀 재목이 아니다. 마음동산을 조성하는 대자유인은 평범한 이웃이지만 그는 결코 속세와 뜻을 같이하지 않고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인간은 무한한 우주시간을 일시적으로 점유한 생명체이기에 시간낭비는 곧 죄악이다.
인간이 주어진 시간을 오롯이 쓰지 못하는 근본이유는 망념 때문이다. 자신이 대우주의 인연소산이라는 사실을 체감하면 주착할 대상도 삼세도 사라진 해방경지를 맞이한다. 분별망상에 휘둘리면 신념도 확신도 희미하여 백년인생 내내 애를 써도 아무런 공덕이 없다. 반하여 망념이 없는 자유인은 매사에 일념으로 임하기에 현실과 어긋나지 않는 실한 삶이된다. 무한한 우주시간을 할애 받은 모든 생명체는 각기 역할이 있다. 시대적소임을 망실한 하열한 근기는 생존본능에만 주착하고 대자유인은 일체만유로부터 해방되어진 마음의 여백에 생사고해의 사바세상을 아우른다.
인간으로 태어난 것은 전생 선근이 주효하였지만 너나없이 불완전한 존재로 이 세상에 왔다. 이성이 내재된 고등생명체이지만 참 자아를 찾지 못하고 생명에너지를 탕진한 전생이력 때문에 상종불가의 괴물이 되는 것은 한순간이다. 특히 역병이 창궐하는 이즈음에 백주대낮 광화문에서 타인의 생명을 위협하고 민생을 도탄에 빠지게 하는 개신교들의 집단난동은 뚜렷한 말세증상이다. 인과가 분명한 과학적인 세계관이 없는 종교는 불문곡직하고 미신이다. 기독교라는 터무니없는 서양미신에 빠져 영혼이 상실된 조현병자들이 부패한 수구보수 적패세력과 결탁하여 국가위상을 추락시키며 생화학테러를 자행하는 저들은 분명 인두겁을 뒤집어쓴 악마의 자손일 것이다. 로마로부터 핍박받던 이스라엘 무당들이 빚은 겨우 5년짜리 예수의 이적정도는 계룡산 박수무당 수준에도 못 미친다.
불교가 해방론인 것은 사바세상이 덧없음을 인식하지 못하는 탐욕중생의 속성에 영원한 자유를 선사하기 위한 가르침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상대분별식이 두터운 하열한 인간일수록 물질에 집착하고 보이지 않는 세계를 신(神)의 영역으로 믿어 자신의 영혼을 신탁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반대로 전생공덕으로 식(識)이 맑은 사람은 유구하지 않은 형상에 속박된 자신의 존재성에 의문을 부여하며 영원한 생명의 길인 해탈열반을 모색한다. 해탈열반세계의 관문인 깨달음은 앎의 경로인 육식(六識)의 확장이 아니라 자성(自性)이 고정관념에 묶인 육식의 장막을 걷어낸 참 자아의 독립선언이자 본래면목의 회복이다.
불교는 인과를 믿고 스스로 깨닫는 길을 일러주는 자각의 종교이지만 여타 종교는 신(神)의 종이 되기를 자원하는 구원종교다. 지금 같은 첨단과학문명시대에 자신의 주인공인 영혼을 몸 없는 중생인 신과의 거래로 안위를 도모하겠다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인간의 운명을 신탁 받은 그 신은 만물의 영장인 인간 몸을 받고도 뭐가 부족하여 몸도 없는 업보중생인 나한테 비느냐고 한탄하지만 듣는 귀가 없는 것이 저 똑똑한 군상들이다.
우리의 정신은 대우주의 섭리와 궤를 같이하는 영혼의 화현이다. 정신을 기르는 최상의 방편이 참선수행이고 그것은 곧 자신의 영혼을 자유롭게 하는 지극한 노력이다. 영혼은 한생에 그치는 존재가 아니기에 사람 일 때 보살만행으로 유, 무위법계를 자재하는 신통력을 강구하지만 불연이 닿지 않은 해오(解悟)는 없다. 삼계(三界)를 벗어나지 못한 근기에게 삼세(三世)를 자유자재하는 불(佛)세계로의 진입은 허용되지 않는다.
무상심심미묘법(無上甚深微妙法)을 구사하는 대자유인은 해오로 환희지가 확립된 불(佛)세계관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삼라만상이 위없이 아름다운 빛이었음을 깨닫는 자아가 법열에 휩싸이는 밝기와 시간만큼이 불(佛)의 원력이다. 초자연적인 역량을 겸비한 대자유인의 마음동산은 삿됨이 범접치 못하기에 일찍이 고뇌와 두려움이 그치고 건강한 몸으로 순수와 자비심을 체득하여 복된 삶을 구가할 수 있다.
작금의 인류는 괴질로 좌불안석이지만 아직 뾰족한 대책도 없다. 탐욕중생의 공업이 이 떼죽음의 역병을 일깨웠다는 사실을 자인하는 것으로부터 근원적인 해법이 나올 것이다. 인류가 진참회로 대오각성하지 않는다면 미래세에 반드시 도래할 죽음의 사신 정신바이러스는 누가 무슨 힘으로 이겨낼 것인가? 우곡의 자이파(慈理波 ZIPA)가 첨단의학과 공동으로 시도하는 융. 복합프로그램이 말세에 철우의 울음소리가 나는 곳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옛 선지자의 참선곡과 빈틈없이 겹치는 시대상황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GK GROUP의 “샹그릴라”는 인류 최후의 지혜인 참 선법(禪法)으로 생.노.병.사를 수렴하는 불국정토이기에 이를 “대자유인의 마음동산 꾸미기”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