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에서 통찰한 무위법계[Ⅰ]∼[Ⅱ]

 

[Ⅰ] 케냐 바링고의 인과윤회

 

이 이야기는 1996년 7월 아프리카 케냐 북부 소말리아와 인접한 Baringo Club에서 마치 한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듯 4시간 동안 나의 내면세계에 투영되었던 불가사의한 무위법계 관찰기이다. 당시 나의 아프리카 행은 만행수행이 목적이 아니라 신생무역회사 대표로서 탄자니아와 케냐에 기계류 수출과 자원개발을 위한 업무출장이었다. 무역업은 생소한 분야였지만 어쩌다보니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최초로 기계류를 수출한 기업인이 되어 KOTRA에 선구자로 기록되었다.

지금은 케냐 직항로가 있지만 당시 출장길은 2박3일에 걸쳐 네번 비행기를 갈아타고 비행시간만 27시간이 소요되었다. 그즈음 아프리카 행은 특별한 동기가 아니면 엄두조차 낼 수 없는 하늘 길을 수차례 오가는 일상이 역동적인 참선공부도량이 되었던 것은 가없는 제불보살님의 배려였을 것이다. 마치 신화와 같았던 일련의 해외출장 사연들은 더 넓은 인간사회를 직접경험하지 않으면 마음에 잔재가 남을 것을 우려한 제불의 뜻이 아니라면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이 글은 당시 출장업무 틈틈이 대학노트에 기록해 두었던 책 두 권 분량의 아프리카 출장일기 중 참선공부에 참조가 될 일부분을 발췌한 것이다.

참선수행자들에게 간접경험이 될 것 같은 케냐 Baringo Club에서의 무위법계 실상을 서술하기 전에 아프리카 행로에서 빚어진 에피소드 일부를 피력한다. 그즈음 한국의 보편적인 생활여건상 부처공부를 하려고 아프리카까지 날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아프리카 대륙에는 불교역사도 없을 뿐더러 나 역시 아프리카 만행은커녕 그곳과 무역사업을 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불세계의 인간불사 프로그램은 내 의지와 무관하게 불교의 불모지 아프리카에서 주경야독하며 무위법계의 한 단면인 인과와 윤회실상을 통찰하는 아주 희유한 경계가 주어졌었다. 벽면서생 같은 마음공부로는 결코 궁극의 열반적정에 들 수 없다는 것쯤은 익히 알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어 좌절할 즈음 무위법계를 관찰할 결정적인 동기가 있었다. 지금이야 해외가 이웃집 나들이와 다름없지만 당시는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었고 특히 아프리카는 아득히 먼 미지나라 이야기였다.

해외출장이야기가 나온 김에 비자와 관련된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면 그즈음 미국비자를 받는 것이 시대적 과제였다. 국제 LOAN과 관련하여 워싱턴시티 교민회장 초청을 받고 비자신청을 하였더니 접수조차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비자발급 조건도 엄청 까다롭지만 면접 신청자들이 광화문 미국대사관을 둘러싸고 심지어 국회의원도 비자가 거부된다는 것이 뉴스가 되던 시절이었다. 기존관행으로는 적기에 미국행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여권만 달랑 들고 미국대사관을 찾았다. 철옹성 같은 미국대사관 정문에서 비자문제로 대사를 만나러 왔다니까 당연한 듯 상무관실로 안내하였다. 왈0겔라 상무관에게 여권을 던져주며 단도직입적으로 비자를 내달라고 하자 당신은 신문도 안보냐고 하였다. 나를 외계에서 온 괴물취급하기에 난 대한민국 국민이고 비즈니스로 미국에 가려한다는 뜻을 전달하자 고개를 가로 저으며 단숨에 거절하였다. 그 순간 이 속물중생이 한낱 종이쪼가리에 불과한 비자딱지로 감히 어디서 유세를 부리나 싶었다. “미국이 없으면 당신 나라에 갈일도 없다” 여기 너희 대사관을 미국으로 때 가라고 일갈하자 일체 구비서류나 비용청구 없이 이틀 만에 10년 멀티비자를 붙인 여권을 역삼동 내 사무실로 배달해 주어 한동안 미국출장을 잘 다녔다.

아프리카 입국은 장벽 높은 미국 같지는 않지만 불합리한 입국절차는 피곤하기 그지없었다. 두 번째 아프리카행일 때는 케냐 대통령의 초청장을 받아 출장준비를 할 즈음 통ㅇ교 서울 교구장이 내 초청장에 끼여 같이 들어가게 해달라는 간청이 있어 흔쾌히 허락하고 김포공항에 나갔더니 그들의 송별행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는 단순한 케냐 여행이 아니라 교주의 명에 따라 그들 종교 아프리카대륙 최고 책임자로 부임하는 길이고 부인과 며느리까지 동반한 이삿짐이 산더미였다. 나이로비공항에 도착해서 비로소 속사정을 알게 되었지만 이들은 선교가 목적이었기에 그전에 이미 케냐 입국이 거부된 상태였다. 난 케냐 정부가 통ㅇ교의 선교활동을 철저히 막는다는 사실을 몰랐었다. 교구장이 2박3일 비행동안 내 곁에 달라붙어 온갖 아양을 떨었던 것은 그런 내막 때문이었다.

케냐 대통령초청장을 받고 들어가기에 정장을 휴대하였다. 최종 기착지인 아부다비공항에서 양복으로 갈아입었어야 했지만 숨 막히는 아랍 기후에 엄두가 나지 않아 면바지에 셔츠차림 그대로 나이로비공항에 도착하니 입국장이 난리판이었다. 여기저기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고 검은색 정장을 입은 검은 사람들이 도열한 가운데 내목에 화환이 걸리기에 어안이 벙벙하였다. 내가 한국기업을 대표하는 인물도 아닌데 나이로비 관계자들이 LOAN을 보고 판을 너무 키워 놓은 결과였다. 환영행사가 있는 줄 알았다면 격식에 맞는 복장이라도 갖추었을 텐데 면바지차림에 서류가방을 손에 들고 있었으니 꼴이 아니었다. 그 형색으로 vip룸으로 안내되어 환영행사를 하는 도중에 교구장 가족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행사장 구석에 몰려있어 화환을 벗어 교구장 목에 걸어주었다. 난 그때까지 이들이 케냐 입국 거부자인지 알지 못하였다. 시끌벅적한 환영행사가 끝나자 케냐 당국의 태도가 싸늘하였다. 입국심사에서 교구장의 정체가 드러나고 가족까지 대동한 엄청 많은 짐 때문에 이들은 입국을 시켜줄 수 없다는 것이다. 교구장이 나를 속인 건 패주도록 괘씸하지만 마누라와 며느리까지 지켜보는 수만리 이국땅에서 쥐어박을 수도 없었다.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난 상황을 감지한 교구장이 입국이 되도록 힘써달라는 애걸에 이들을 내쫓으면 나도 입국하지 않겠다고 버티었더니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입국허가가 나왔다.

그 후 알고 봤더니 신분을 위장한 목사여럿이 이미 나이로비에 들어와 있었다. 입국과정에서 내 위상을 확인한 교구장은 현지 목사를 대동하여 내가 묵는 호텔 로비에 진을 치고 비즈니스로 호텔을 들락날락 할 때 마다 다가와 인사를 하였다. 나한테 지극정성을 들이는 이유를 물어보니 케냐정부 실력자들을 소개받아 신분을 보장받고 워싱턴에 있는 자기들 교주한테 보고해야 성과를 인정받는다는 것이다. 공항 환영식 때 생뚱맞게 며느리가 열심히 사진을 찍었던 것은 이런 사연 때문이었다. 내 업무 중에 케냐 정부차원의 협의절차가 있어 정책특보를 만나기 위하여 케냐 대통령궁에 들어갈 때 교구장을 대동시켰다. 그의 간절한 부탁도 있었지만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의심 없이 그의 청을 들어주었다.

케냐 대통령궁은 수 만평이나 되는 아름다운 정원가운데 있었고 정책특보의 사무별관도 그 안에 있었다. 케냐는 오랫동안 영국의 지배를 받았기에 핵심관료 대부분이 영국 옥스퍼드에서 수학한 인재들이었다. 두어 시간 특보를 면담하고 대통령궁을 벗어날 즈음에 특보로부터 전화가 왔다. 교구장이 끌고 온 목사가 특보에게 명함을 주더라며 왜 그런 인간들을 대동하였느냐는 거였다. 그들이 숭배하는 유대귀신에게 자신의 영혼을 신탁한 목사로부터 국제신사도는 기대할 수 없지만 한나라의 고위층을 만나는 일에 똘마니가 미치지 않고서는 끼어들 수 없는 자리였다. 차를 세우게 하고 교구장과 목사를 추궁하였더니 작별인사를 하는 어수선한 틈에 이 목사 녀석이 정책특보에게 명함을 건네며 만나달라고 부탁하였다는 것이다. 인간은 깨닫지 못하면 고쳐 쓸 수 없는 동물이다. 전생공덕이 미약하면 아무리 똑똑하고 고상한 척해도 전생습성과 탐욕을 버릴 수 없는 인두겁 쓴 속물중생일 뿐이다. 특히 예수탄생 서기 이후 인류사에서 가장 참혹한 전쟁역사는 사랑을 앞세우는 그들의 사악한 종교이념 때문이었듯이 맹신자의 정신세계 또한 그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 실수였다. 교구장과 사이코패스 같은 목사를 대통령궁 담벼락에 두 손을 들게 해놓고 차를 출발시켰더니 운전기사가 저기 방치하면 경호원한테 총살당한다는 것이다. 대통령궁은 워낙 넓어 차를 타고 한참 나와야 정문을 벗어나는 구조였다. 천하에 이기적이고 배은망덕한 족속들이지만 타국에서 총 맞아 죽게 놔둘 수 없어 정문을 나서기 직전 되돌아 두 쓰레기를 담아 싣고 나와 나이로비 거리에 내버렸다. 이 속진세상 사연 없는 인간사가 없지만 후진국과의 비즈니스는 권력과 불가분의 관계이다 보니 늘 목적을 그르치는 반연들이 양의 탈을 쓰고 대사에 끼어들었다. - 제2편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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