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산 영우선사의 사자후

　

<불교세계/2002.6月號, 풍경소리>

이 글은 당나라 혜능의 4대 법손인 위산 영우선사(771∼853)의 추상같은 수행경책이다. 위산 영우선사가 창시한 위앙종은 150년을 이어지다가 송나라 때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서기 850년 때 영우선사는 방만한 수행풍토를 탄식하는 어록을 남겼지만 속진에 물든 중원의 말세불교는 해탈정신을 이어갈 선지식의 사자후를 저버렸다. 본 우곡선원은 길을 묻는 선문납자들을 위하여 위산의 사자후를 해제하여 선이야기에 띄운다.

업(業)은 형체에 매임을 면치 못하여 부모인연을 빌려 이 몸으로 이루어졌다. 사대(四大)로 지탱하는 몸은 항상 서로 등져 생·노·병·사가 예고 없이 다가와 아침엔 살았다가도 저녁에 죽어 찰나에 저 세상 영가가 된다. 몸은 마치 봄 서리나 새벽이슬 같아서 잠깐 사이에 사라지며 허망하기는 우물 속에 비추인 넝쿨과 같다. 한 순간에 숨이 떨어지면 그대로가 저승인데 어찌 허송세월을 하랴.

그대 납자들은 부모를 봉양하지도 않고 육친을 이별하였다. 나라에 기여도 하지 않고 가업을 버렸으며 속세를 떠나 삭발염의 하고 계를 받았다. 그렇다면 안으로는 망념이기는 공부를 부지런히 하고 밖으로는 다투지 않는 덕을 키워서 티끌 같은 세상에서 아득히 벗어나기를 기약해야 한다. 그런데 계를 받자마자 "나는 비구다."하며 상주 시주물을 받아 먹으면서도 그것이 어디서 왔는가를 생각할 줄 모른다. 그리고는 공양 받는 것을 당연시하고 머리를 맞대고 세상잡사만을 논하니 괴로운 과보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무수한 세월 속에서 6진(六塵)에 휘둘려 한 번도 자신의 처지를 돌이켜보지 않고 날이 갈수록 받아쓰는 것만 늘어나 업은 더욱 무거워 지고 찰나에 해가 지는데 업 녹일 생각은 하지 않고 허망한 육신만 붙드는 일에 몰두하는구나.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도 닦고 몸을 단속하는 데에는 옷과 밥과 수면 이 세 가지를 넉넉하게 하지 말라"고 경계하며 법도를 지어주셨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쉬지 않고 덧없는 탐욕으로 세월을 보내 어느덧 백발이 된다.

껍데기는 중인데 도 닦는 교리에는 원래 뜻을 두지 않았으므로 현묘한 도를 깨달을 씨앗이 없다. 그러고도 나이 먹고 법랍이 많아지면 속은 빈 것이 아만을 부리며 거만만 가득하다. 법도와 계율을 몰라 전혀 조심성이 없어 교만하고 큰소리치며 위아래 사람을 공경하지 않으니 바라문의 떼거리와 다를 바 없다. 산중에서 거슬리고 괴팍스러운 행동이 사문의 특권처럼 여기며 법도와 소소한 몸가짐도 갖추지 않았는데 무엇을 가지고 성품을 단속하겠는가. 그래서는 후학들이 본받을 것이 전혀 없다.

그런 처지로 남을 훈계할 때는 '나는 승(僧)이다'라고 하지만 올바른 불법수행은 들어 본 적도 없고 오직 티끌 같은 바깥경계에만 생각을 둔 비구일 뿐이다. 이 같은 소견은 발심부터 졸렬하고 게을러 도철이처럼 세속에 뜻을 두고 산중에서 그럭저럭 세월을 보내다가 심신이 황폐해지고 그러다 늙게 되면 마주치는 일마다 은산철벽을 마주한 듯 캄캄하게 될 것이다. 이때는 후학이 물어도 지도할 말이 없고, 설사 있다 해도 경전의 말씀과는 관계없는 말이 될 것이다. 혹 업신여기는 말을 듣기라도 하면 예의가 없다고 화를 낸다. 그러다가 하루아침에 병상에 눕게 되어 뭇 고통이 조여 오면 아침저녁으로 생각해 보아도 두렵고 앞길만 아득할 것이다. 이러고 나서야 자신의 허물을 후회하게 되지만 그때는 당장 목이 타서 우물을 파는 격이니 어찌 하겠는가. 수행을 저버리고 방일타가 늙고 병들면 제 허물에 스스로 한스러워하다 죽음이 임박하면 두 손을 허우적거리며 두려움에 떤다.

죽음은 육신에 의지하던 식심(識心)이 막아 놓았던 병뚜껑이 열리듯 업(業)을 따라가는데 마치 빚진 사람이 힘센 여러 빚쟁이에게 먼저 끌려가는 것처럼 갈래갈래 무거운 업 쪽으로 떨어진다. 염라대왕은 내 뜻대로 수명을 연장해 주지 않으며 지은 업(業)은 다시 태어남을 면하지 못한다. 윤회전생하며 받아온 몸은 그 세월이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겁수(劫數)를 따져 볼 수도 없다. 회한과 탄식으로 가슴이 저려오니 어찌 입을 봉하고 경책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다만 한스러운 것은 상법이 다하고 말법시대에 태어나 부처님 세월이 아득하다는 점이다. 불법은 생소하고 사람들은 게으름을 많이 피우므로 좁은 소견으로 뒷사람들을 일깨우려 하는 것이니 교만심을 버리고 생사윤회에서 벗어나라. 출가사문이면 세속을 뛰어넘어 몸과 마음을 달리해야 한다. 부처종자를 이어 융성하게 하고 마군을 항복 받아서 부모 스승 국가 시주의 은혜에 보답하고 3계 중생을 제도해야 하니 만약 그렇지 못하면 사문의 대열에 끼어든 자일뿐이다.

어버이를 하직하고 결연한 마음으로 먹물 옷을 입은 것은 무엇을 뛰어넘으려 했던 것인가. 아침저녁으로 생각하면 어찌 마음 편하게 세월을 보내랴. 불법의 대들보가 될 것을 다짐하여 뒷날 본보기가 되길 항상 서원해도 조금밖에 상응하지 못한다. 납자는 말을 꺼내면 반드시 경전에 들어맞고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도 옛 것을 상고해야 하며 우뚝한 몸가짐과 고고한 기상을 가져야 한다. 먼 길을 갈 때는 좋은 도반과 동행하여 자주자주 눈과 귀를 맑게 하고 머무를 때에도 반드시 도반을 가려 아직 듣지 못한 것을 들어야 한다. 그러므로 속서에 이르기를 "나를 낳아준 사람은 부모이고 나를 완성시켜 준 사람은 벗이다."라고 하였던 것이다. 덕 있는 자와 가까이 하면 이슬 속을 걷는 것처럼 비록 당장에 옷이 젖지 않아도 점점 촉촉하게 그 덕이 스며든다. 한편 악한 사람과 친하게 지내는 사람은 나쁜 지견을 길러서 아침저녁으로 악한 짓을 하며 가까이는 목전에서 과보를 받고 멀게는 죽은 뒤에 윤회 고를 받게 된다. 한번 사람의 몸을 잃으면 다시 인간 몸 받기 어렵다는 경책이 귀에는 거슬리나 어찌 마음에 새겨두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마음을 씻고 덕을 길러 자취와 명성을 숨기고 정신을 깨끗하게 길러 마음에 시끄러운 경계를 끊어야 한다. 만일 참선으로 현묘한 도에 이르려면 번뇌는 나루터에 두고 정밀하고 묘(妙)함을 끝까지 파고들어야 한다. 심오한 뜻을 결택하여 참 근원을 깨달아야 하며 선지식에게 널리 묻고 좋은 도반을 가까이 해야 한다. 묘한 도리는 깨닫기 어려우니 참으로 빈틈없이 마음을 써야 한다. 그러다가 본심[正因]을 단박에 깨달으면 그대로 티끌세상과 수행점차를 벗어나니 이것이 곧 3계 25유를 타파하는 것이다. 안팎의 모든 법이 실제가 아니라 마음을 따라 변하여 일어난 것으로 모두가 거짓이니 그 쪽으로 마음이 끄달리지 마라. 감정이 사물에 끄달리지만 않는다면 사물이 어찌 사람의 장애가 되겠느냐.

법성을 흐르는 대로 맡겨둘 뿐 끊으려 하지도 말고 이으려 하지도 말라. 소리를 듣고 물건을 볼 적에도 일상대로 하면 이쪽과 저쪽에 응용하되 조금도 모자라게 하지 말라. 이렇게 살면 법복을 입은 것이 헛것만은 아닐 것이다. 나아가 4은(四恩)에 보답하고 3계 중생을 구제하며 세세생생토록 도에서 물러나지 않으면 끝내는 성불을 기약하리라. 또한 3계의 손님으로 왕래하면서 나고 죽는 이들의 본보기가 될 것이다. 이러한 법(法)은 참선(參禪)이 가장 오묘하니 마음만 굳히면 그대를 속이는 말은 아닐 것이다.

너희들은 청산에 기대어 살면서 보지도 못하였느냐? 소나무에 감긴 칡넝쿨이 높이 솟아오르는 것은 훌륭한 바탕에 의지한 인연 때문이다. 재(齋)와 계(戒)를 성실히 닦아서 부족하거나 넘치게 하지 말라. 출가자가 된 것은 수승한 선업이 있기 때문이니 허송세월을 보내서는 아니 된다. 이행치 않으면 부딪치는 곳마다 걸리니 사람들에게 업신여김과 기만을 당한다. 옛사람은 말하기를 "그가 장부였다면 나도 대장부니 결코 자신을 가볍게 여기고 퇴보해서는 안된다."라고 하였다. 만일 이렇지 못하면 부질없이 절집에 있으면서 일생을 그럭저럭 보낼 뿐 조금도 이익이 없을 것이다.

간절히 바라노니 맹렬한 뜻과 각별한 마음을 내어 상근기를 바라보고 처신할지언정 함부로 용렬하고 비속한 이들을 따르지 말라. 깨달음이란 다른 사람을 통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확신을 가져라. 알음알이를 쉬고 반연을 잊어 모든 번뇌와 마주하지 말라. 마음은 빈 것이고 경계도 고요하건만 단지 오래 막혔기 때문에 통하지 못할 뿐이다. 이 글을 잘 읽고 수시로 자신을 경책하여 굳세게 주관을 세워 인정을 따르지 말라. 반연에 이끌리면 홀로 서기 어렵느니라.

목소리가 온화하면 메아리가 순조롭고 모습이 반듯하면 그림자가 단정하다. 인과는 형상처럼 분명하기에 어찌 삶을 근심하고 두려워하지 않으랴. 경(經)에 이르기를 "인과를 남기면 영원한 세월이 지나도 지은 업은 없어지지 않고 인연이 회합할 때 지은 과보를 다시 받는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지옥, 아귀, 축생 삼도가 사람을 얽어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열심히 닦고 부질없이 세월을 보내지 마라. 사대오온 생사가 허물과 병통임을 깊이 성찰하여 수행할 것을 권하며 백천만겁도록 어디서나 다 같이 도반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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