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覺의 正論
<불교세계/2001.10月號, 풍경소리>
사람은 누구나 그만의 절대세계를 가져야 한다. 그것은 깨달음으로써 지금 이 몸으로 저 피안의 세계에 거듭나야 한다는 지엄한 명제를 말한다. 깨치기 전의 우리 삶은 변모하는 대상에 휘둘리고 항상하지 못할 것들과 거래를 하느라 참 자아(自我) 즉,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 되어야 할 당연한 입지를 확립하지 못한 상태다.
나의 존재는 인연취산(因緣聚散)의 결과이며 윤회의 산물이다. 인간은 삼라만상 유·무정 중에 존재의 왕으로 이 사바세계에 출현하여 해탈세계로 진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은 셈이다. 이때 참 인연을 지어 무심(無心)에 들어야만 생사윤회의 고통이 반복되는 육도(六道)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모든 중생은 삼세(三世) 간(間)에 반드시 한번은 깨우치기 마련이다.
깨우침은 윤회로부터의 탈출이며 인과(因果)에 묶이는 탐심을 끊을 때이다[三法印]. 개시허망(皆是虛妄)함을 깨닫지 못한 생명은 왕후장상일지라도 윤회(輪廻)굴레 속에서 허우적거려야 한다. 生·死가 거듭되는 중생의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굳은 신심과 엄격한 계율, 효과적인 수련으로 마음의 힘을 키워야 한다. 그러나 이 시대 대부분의 구도자들은 진정한 해탈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지 못한 채 진리라는 무비판적 종교논리에 의지하여 해탈을 모색하거나 아니면 낮은 심신수련기법에 기대는 수준이다.
석가세존 회상당시와 같은 야단법석(野壇法席)을 통하여 해탈세계를 들어 보인 공부를 근간으로 하지 않는 심신수행은 불교문중을 막론하고 모두 외도이고 추종자 양성집단에 불과하다. 특히 오늘날 정신계를 대변하는 대다수의 종교는 특정지역 민족의 생존논리이거나 기복과 환(幻), 토속신앙을 재구성한 소설을 신앙으로 삼을 뿐, 인간의 의식을 올바로 계도하는 참 진리와는 거리가 한참 멀다.
정각(正覺)은 구원이나 거래가 아닌 모진 인고를 감당할 수 있는 자(者)에게 안착되는 제불(諸佛)의 심인(心印)이며 진 해탈(解脫)의 기준이다. 또한 정법(正法)은 무상(無相)이므로 무심자에 의한 동기부여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물질이 시대를 선도하는 첨단시대 일지라도 참다운 선지식 인연이 닿지 않으면 이치(理致)가 드러나는 각(覺)은 멀다.
근본불교는 무명(無明)을 밝히고 중생을 극락세계로 인도하는데 있다. 더불어 모든 인류를 번뇌의 고통으로부터 구원하는 것이 불교정신이다. 그러나 오늘날 길흉화복을 점치고 복을 구하는 불교는 불타(佛陀)의 뜻도 아니거니와 정신세계의 주축이 되어야 할 역할마저 상실시키고 있다. 특히 지옥을 면하고 천국을 운운하며 선(善)을 앞세우는 제 종교는 진리의 가르침이 아니라 어리석은 인간의 감정에 빌붙어 영혼을 황폐화시키는 혹세무민의 근원지다.
중생은 부처 맛 즉, 무심(無心)을 맛봐야 만이 미혹에서 벗어나 해탈세계의 삶인 중도(中道)를 이룰 수 있다. 중도(中道), 정도(正道)는 물과 같은 성품으로 생명을 잉태하고 스스로 가장 낮은 곳에 임하지만 결코 한 곳에 머물지 않으며 구름과 비, 얼음, 강을 이루고 가로막히면 산도 뛰어넘는 위용이 있다. 이처럼 묘(妙)한 힘을 구사하는 깨우침을 위하여 사람들은 여러 구도방법을 모색하고 있지만 정법(正法)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알에서 갓 부화된 새끼 오리에게 사람이 첫 대면하면 새끼오리는 사람을 제 어미로 인식하고 따르듯이 이 말세는 온갖 사법(邪法)에 견성(見性) 오도(吾道)한 도인들은 전문 장인(匠人)이거나 익히 알던 각설이와 동격이었다.
대각(大覺)은 한꺼번에 중생심을 소멸시키는 폭발을 통하여 성취된다. 본성은 종교교의나 특별한 모습의 구도행위로서가 아니라 홀연히 순리에 함몰되어지는 가치관의 전도다. 이때부터 색(色)·공(空)에도 자유스러우며 마주치는 경계가 모두 오달(悟達)의 동기가 되어지기에 전·후가 불필요한 순간 순간이 삶의 전부다. 대각[獨覺]은 천지가 감응하지 않으면 만에 하나도 이루기 어렵거니와 지금처럼 온갖 허구가 판치는 난법(難法)시대는 정각(正覺)의 맛과 종지를 제대로 알고 있는 문중도 없다.
대각(大覺)은 무주처(無住處)로서 고불고조(古佛古祖)와도 나란히 하지 않는다. 길 없는 길을 걷는 절대고독한 자(者)일뿐이다. 그는 태허(太虛)에 함몰되어진 심신(心身)이기에 때로는 세인들로부터 경탄과 찬사를 불러들이기도 한다. 또한 각(覺)은 중생심의 원수이기에 비판과 시비 질시를 이끌고 다닌다. 따라서 대각(大覺)은 위세나 권능이 아니라 시대의 소임에 충실한 자(者)의 심성(心性)이고, 할 수 없어 사는 자(者)의 삶과 인생이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