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담도론 道談道論 1
<정신세계 웰빙라이프/2006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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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4월 17일, 서초동 우곡선원牛谷禪院에서 이루어진 인터뷰를 원고로 정리한 것입니다. 정신세계 웰빙라이프에는 지면 사정으로 대폭 축약해서 게재했던 아쉬움이 있었는데 이 글을 통해서 더 자세하고 정확한 정보를 얻으시길!
여기의 원고는 깨달음과 해탈에 관련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정리하였고 아울러 별도 녹취록의 자료에는 원고에 없는 우주와 실상관법에 대한 설명 등 추가적인 내용이 있습니다. (보기 드문 좋은 자료라 생각됩니다.)
취재: 문경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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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곡선사를 처음 보았을 때 일반인과 확연히 다른 것은 그의 눈이었습니다. 火氣가 충만하여 눈동자가 홍채와 동공이 구분되지 않고 하나인 것처럼 보이는데 이 상은 옛 부터 내려오는 깨달은 신체의 증거로 봅니다.(참고로 문기자의 주 전공분야는 氣, 불교학, 명리학(간지학, 음양오행학), 풍수지리학, 체상학, 무술 관련분야입니다.)
선이 굵은 외모와 달리 부드러운 미소와 확실한 음성을 가진 분이셨고, 겸손하지만 강한 자신감이 느껴지는 분이었습니다.
우곡선사가 세간에 알려진 계기는 불교종단과의 불도에 대한 논쟁과 불교의 기복신앙적 변질과 폐단을 직접적으로 거론하면서 기존 불교 종단들의 물리적 공세에도 굳건히 살아남은(?) 유일한 개인이기 때문입니다. 기사로 표현하기에 부적합한 내용이라서 줄입니다만... 지금은 바른 불교의 철학을 알리고 외국인 참선교육이나 다양한 활동으로 지식인들 사이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고 실상관법이라는 우곡선원의 내용이 불교 기존 종단에 수행의 한 과정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도담도론의 첫 인물로 우곡 장명화 선사와 인터뷰하게 된 것입니다.(기타 우곡선사에 대한 자료는 우곡선원을 검색하시면 자료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우곡선사의 말부터 시작됩니다)
저는 과거 불자가 아니었습니다. 가톨릭이었고 집안내력도 3대째 가톨릭이었습니다.
젊어서부터 사업을 했고 때문에 부유했습니다.
우리 집안은 아버님이 교직에 계셨고 유산을 받을 만큼 부유하지 않은 상황에서 욱일승천旭日昇天 하듯이 부자가 되었어요. 젊은 시절 사업이 잘 되었는데 정신적으로 이루어진 상태가 아니다 보니 그 돈으로 중생놀음에 빠지기도 했고 종교가 다른데도 불구하고 불교 예불의식이나 도량석에 마음이 편했습니다.
전생 때문인 거 같아요. 당시 축산을 했을 때 내가 한국양돈협회 발기인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다 지금 돌이켜 보면 전생에 바르게 산 공덕으로 불꽃이 일듯 경제적으로 자수성가했는데, 정신적으로 통제가 되지 않아 속물 중생으로 살았던 것이죠.
그러다가 속초에서 경계가 있었는데 당시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고 그때 경계가 한 번에 대폭발하여 느끼게 되었고 그것이 불교로 밖에 해석이 안 되어 절에 가야만 해답이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1992년 3월, 속초에서의 경계 그 이후에 3개월 동안 아, 이게 깨달음의 세계구나! 무소불위의 삶이구나! 살아갈 뿐인 상태, 내 스스로 극락을 만들어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세속과의 충돌로 상처를 입으니까, 자꾸 부딪치니까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내 경험을 검증받지 못하니까 궁금한 것이지요. 그래서 “아! 이게 불교에서 말하는 것이고 큰 스님이란 사람들을 만나면 해결이 되겠구나!” 라고 생각했어요. 나는 불교를 알던 사람이 아니고 해서 밥을 먹다가도 라디오에 큰스님이 나오면 자리에서 그대로 일어나 곧바로 찾아 가곤했어요. 도착하면 새벽 1시고 2시고 그냥 내 눈에는 사회적 관계없이 그냥 가서 물었습니다.
무엇을 물으셨습니까?
그냥 바로 묻는 거예요. 내 머리가 왜 이렇게 아픈가,
내가 빛 속에서 본 경계가 무엇인가, 내가 그 후 변했는데 이것이 대체 무엇인가...
불교에 답이 있는 것 같아 이렇게 물었던 세월이 4년~5년 되는데 답할 수 있었던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지금 보면 요식적인 답변입니다만, 나는 아니다 라고 회피하는 사람, 내 공부는 이것 밖에 없습니다 라는 사람, 또 어떤 분은 문고리를 잡고 안 들여 보내주는 거예요. 자기는 아니니까 들어오지 말라는 분들이었습니다.
문고리를 잡고 안 들여 보내시는 분들은 답을 알고 계신 분들 아닌가요?
자기는 내가 찾는 사람이 아니니까 들어오지 말라는 거예요. 답을 알지 못하니 만나지 않겠다는 분들이었어요. 당시에는 내 눈빛을 바로 볼 수 있는 사람이 없었지요. 지금도 안정적인 눈빛은 아니지만 당시는 불을 뿜고 있었지요. 그 분들은 최소한 나를 만나기 전에 찾아오는 사람의 이런 기운을 느낀 거예요. 하지만 그분들로부터, 사람들로부터 전혀 답을 구하지 못했어요.
어떤 분들을 만나셨습니까?
그 당시 한국불교의 원로라는, 언론에 나오는 분들 모두 다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서O 종정, 월O 종정, 지O 스님, 성O 스님, 당시 법주사 주지 정O 스님 등등 돌아가신 분들도 계시니까요.
그럼 그 후 답을 어떻게 구하셨습니까?
사람을 통해서는 해결할 방법이 없는 거예요. 그러다 산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당시에 지리산으로 들어갔는데 짚차를 타고 제일 먼저 텐트를 친 곳이 ‘삼정’이라는 곳입니다. 좌측 칠불암, 우측 쌍계사가 있는 곳이에요. 민가는 하나도 없어요. 그 다음 해 봄 이었나, 당시 머리가 아프니까 산에서 그렇게 밥도 해먹고 목욕도 하고 그러다 보니 안정이 되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전국을 다 다녔죠. 이후 좋은 물과 좋지 못한 물, 물의 냄새와 맛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찰에 가면 물의 맛과 깊이, 물을 통해서 환경을 파악하게 되고 이론으로 말하지는 못하지만 알게 되는 거죠.
물맛이 가장 좋았던 곳이 어디셨습니까?
우리나라에 명당이 아닌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만, 그 당시 잘 정화되고 기운이 좋았던 곳은 산청 율곡사, 우리나라에서는 최고일 것입니다. 참으로 좋았습니다. 내 경험에서는 그랬어요.
물이 우리 생명을 가꾸어 가는 하나의 원천 아닙니까.
답을 얻게 되신 것은 언제입니까?
창녕 화왕산 안에 청룡사라는 암자가 있었는데 그 곳에 납승이 한 분 있었어요. 이 분과 많은 얘기 중에 ‘내가 보는 책인데 아무리 봐도 모르겠으니 거사님이 한번 보시면 알지 않겠느냐’ 해서 제가 보게 되었습니다. 그 책이 육조단경六祖壇經이었고 처음 본 불교 경전이었지요. 육조단경을 처음 접하고 ‘그래 맞아, 이거지! 이게 불교지! 날 설득시키려 하는 것, 그건 중교지!’ 했습니다.
육조단경 첫 장을 보니 바로 알겠는 거예요. 그때 그분이 그 책을 주신 겁니다.
그래서 창원 집에 돌아가 다시 보니까 내가 해결하지 못했던 것, 내면의 뭉클했던 것들이 터져 나오는 듯한 것들이 육조단경을 통해서 알겠는 거예요. 안 밖이 밝은 그 자체가 자성불인데 뭐 밖에서 구할게 어디 있냐고, 달리 보아서 구하려고 했던 것이 문제였고 몸에 걸렸던 습이 내적 갈등의 원인이었구나, 그 후에 육신도 나아지고 할 일이 없는 거예요. 그러나 더 근본적 문제는 해결이 안 되었지요.
그럼 다시 사회생활을 시작하셨습니까?
그 후 서울에서 무역회사를 설립했어요. 다시 사회생활에 접근하기 시작한 거죠.
그때 무역회사를 하면서 일어나는 과정들이 여러 가지 있었는데 보편적 경영원리나 이런 것들로 해석할 수 없는 이적들이 일어나는 거예요. 97년-99년도에 작은 무역회사가 통일부의 남북경협 사업허가도 받았죠. 당시는 대기업도 불가능했던 때입니다.
또 무역회사를 통해 세상 만행을 다했어요. 그 당시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종교를 다 접하고 다녔어요. 교주나 최고책임자를 만났었고 그 단체를 통해서 관련을 맺게 되어 실상을 볼 기회가 많았습니다.
한 예로, 내가 케냐 대통령의 초청으로 케냐까지 갔었어요. 그때 모 기독교 단체에서 아프리카 선교를 해야 하는데 아프리카는 회교국가가 많아 기독교 선교 목적으로는 입국 자체가 안 될 때였어요. 당시 모 기독교 서울교구장이 아프리카대륙 선교책임자로 선정되었지만 들어갈 길이 없었던 겁니다. 내가 그사람과 그의 가족까지 대동하여 들어가면서 문호를 열 수 있었고, 현재 목사들이 케냐에 들어가 활동하는 것은 그런 연유가 있었습니다. 그런 것들이 쉽게 자유자재로 되는 거예요.
그런 것들이 쉽게 된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정신력입니다. 일반적인 논리나 상식을 뛰어넘다 보니까 세속적 관행이 따라오지 못해 일반 논리로는 이해가 안 되는 거죠. 너무 거리가 머니까. 이런 세계가 정신세계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구체적으로 실행시키기에는 시대적 제약이 아직은 있어요. 이건 종교도 아니고 종교일 수도 없고 종교란 카테고리에 묶여서는 이런 힘이 나올 수도 없고 그러나 이런 힘의 원천은 불교정신이고 그것도 근본불교에서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요식적인 종교의례나 의식, 미신이나 신비, 기복에 사로잡혀 있거나 상대에 대한 기대가 있거나 의문에 걸려있는 상태에서는 이런 원론적 힘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것은 불교에서 무심이란 말로 설명됩니다. 무심은 생각을 않는 것이 아닙니다. 무심은 세상을 다 가졌으되 마음에 지닌바가 없고 능수능란하되 한 곳에 묶여있지 않는 다시말하면 색과 공에 저촉 받지 않는 중심잡힌 마음의 힘, 자세, 능력을 저는 무심이라고 정의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이런 것들이 오늘날의 나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지금도 무역회사를 하십니까?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