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參禪 入門論
1. 禪과 나
참 선(禪)은 석존(釋尊)의 삶과 인생의 향기로서, 중생의 허구적인 삶을 타파하는 진리의 빛이며, 윤회(輪廻)의 고통을 그치게 하는 유일무이(唯一無二)한 힘입니다. 또한 참선수행은 완전한 인간조건[full energy]을 갖추게 하는 지고한 법(法)이며 해탈(解脫)의 정도문(正道門)입니다.
우리 인생은 무한 우주시간을 잠시 점유한 한시적 산물입니다. 단 한번뿐인 소중한 일생을 여한 없이 사는 길은 만법(萬法)을 구족하여 내 안의 무명(無明)을 다 밝힐 때 비로소 생사(生死)가 여여(如如)한 삶이 될 것입니다.
깨달음은 세간사를 떠나 달리 없습니다.
21세기 첨단시대는 지혜(智慧)와 자비(慈悲)를 실천하는 참 사람의 몫입니다. 참 사람은 모든 업(業)이 그를 속박할 수 없는 무심(無心) 자(者)이며, 만상과 통(通)하는 세상의 중심(中心)이기 때문입니다.
초조(初祖)인 석가세존의 삶과 인생을 올바로 알지 못하는 깨달음도 없으며, 8만4천 교설(敎說)이 중생을 해탈세계로 인도하는 나룻배임을 이해하고 그 존귀함을 계승발전 시키려는 성의 또한 참 사람의 몫입니다.
2. 佛敎入門
1) 信行은 因果로부터
불교는 삼라만상의 존재를 집약한 원대한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초조인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과 그 후 역대조사들의 어록으로 결집된 8만 4천 경전(經典)과 선구(禪句)는 가히 학문의 보고이며 인간의 완전한 정신체계를 구성하는 최선의 명약입니다.
불교 가르침은 시대적 상황에 따른 선지자의 사상체계를 가미한 일정한 틀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근기에 따라 문자에 의존한 교(敎)든 아니면 이심전심(以心傳心)법인 선(禪)이든 가르침을 임의로 선택하여 수행을 지어갈 수 있도록 그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입문의 첫 단계로 불교에서는 존재의 시작과 결과법칙인 인과(因果)를 먼저 믿게 하였습니다. 석존께서도 인과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불문의 제자로 받아들이지 않았듯이 인과가 있음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과거와 현재 미래의 자신을 성찰케 할 수 있으며 방대한 이치를 깨쳐야 할 수행에서 물러서지 않는 용맹을 키우는 초석으로 삼도록 하였습니다. 그 다음 실상의 이치를 논하는 반야사상으로 지혜로운 삶의 길을 열어 보여 분별에 끄달림 없는 효율적인 인생을 살도록 하였으며 법화와 화엄 사상은 보살지를 취득하여 부처의 세상인 연화장 세계를 걸을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깨달음의 시작은 지금 이 모습의 원인과 결과[因果]를 분명히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여 차츰 우리 삶의 지배요소를 밝혀 나가는 것입니다.
자신의 존재 구성은 업(業)입니다. 업이란 나의 몸[身]과 말[口] 뜻[意]으로 짓는 모든 행위입니다. 선한 행위를 하면 그것은 선업(善業)이 되는 것이며 악한 행위를 하면 악업(惡業)으로 귀착됨을 지칭한 것입니다. 스스로 지어 가는 업으로부터 가족과 사회, 국가, 우주관이 성립되어 자신의 삶의 척도가 설정됩니다. 그것은 어느 누구의 것이 아닌 자신의 지배요소임을 올바로 성찰케 함으로서 더 큰 지혜를 얻고 미혹에서 벗어난 영원한 자유의 길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2) 초조인 석가세존으로부터
불교 교리에서 무엇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일반인들이 거대한 대해와 같은 불교의 가르침을 다 꿰뚫어 피안의 땅에 귀착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특히 한국 불교는 간화선 계통의 선풍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 석가모니 부처님에 대한 중요성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으며 역대 조사들의 선문답 몇 마디를 익혀 위안을 삼고 있는 것을 수행으로 인식할 소지가 농후한 것도 주지의 사실입니다.
불교의 가르침은 개인의 근기와 소양에 따라 차등된 교리를 통하여 진리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것 중에 초조인 석존의 인생관을 통하여 불법(佛法)을 이해해야만 올바른 불교 철학관이 성립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깨달음은 옛 사람의 향훈(香薰)으로 나의 마음을 지어 가는 공정이기 때문입니다. 깨달음을 직시하는 많은 가르침 중에 인간으로서는 벗어놓기 어려운 숱한 한계를 극복하고 완전한 삶으로 거듭난 석가모니 부처님의 생애를 통해서 가장 올바른 길을 모색할 수 있습니다.
3. 석존의 탄생과 시대배경
석존은 중부 인도 지금의 네팔 Tarai 지방에서 태어났습니다.
석존께서 탄생하셨던 B.C. 5세기경 인도의 정치상황은 토후세력들이 통치하는 작은
도시형태의 국가였습니다. 석존의 탄생시기를 전후해서 여러 나라로 구성되어있던
도시국가가 전제군주 국가로 이합집산(離合集散)하며 급속히 변모해 가는 양상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석존의 아버지가 통치하던 카필라국은 인구 약 백만명의 작은 도시국가였으며 시대
상황은 이웃의 코살라국을 비롯한 대제국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당시의 혼란스런
정치 상황은 태자의 출가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입니다.
석존께서 탄생될 시점에 카필라국은 이웃의 전제군주국인 코살라국에 병합될 위기에
놓여져 있었으며 실제로 그의 부친이 다스리던 카필라국은 싯다르타 태자가 성도
후 그의 숱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웃 국가인 코살라에 의해 합병되었습니다.
1) 聖人의 탄생
당시의 혼란스런 시대상황에서 석존의 아버지인 정반왕은 나이 50이 넘도록 대를 이을 자식이 없었습니다. 주위의 강대국들에 맞서 카필라국을 부흥시킬 강력한 지도력을 갖춘 후세가 태어나기를 갈망하던 때에 마야부인은 여섯 개의 상아를 가진 흰 코끼리가 연꽃을 들고 나타나 침실을 세번 돌더니 부인의 오른쪽 옆구리로 들어오는 태몽을 꾸었고 해산달에 이르러 출산을 위해 친정인 콜리(Koli)성으로 가는 도중 룸비니(Lumbini) 동산에서 태자가 탄생하였습니다.
태자가 태어나자마자 스스로 좌우 몇 발자국을 걸어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는 자기성찰을 천명한 일성(一聲)을 터트렸다는 설화는 대 성인의 길로 걸어가신 그분의 존귀함을 극적으로 표현한 후세 사람들의 찬탄으로 받아들여야 마땅합니다. 이 부분을 잘 못 이해하면 보편적인 인간이 아닌 무슨 터무니없는 신격화의 단초가 될 수 있습니다.
석가세존의 탄생에 관한 많은 설화는 매우 극적이며 신비로운 모습으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오욕칠정에 묻혀 사는 중생들의 인생관과 차별을 두고자 하는 후세 사람들의 의도가 강하게 작용한 결과입니다. 태자의 탄생을 유별스런 모습으로 각색한 기록들은 불교 역사의 크나큰 오류이며 대승불교의 시대적 정황이 만들어낸 슬픈 발자취이기도 합니다.
2) 붓다의 성장기
태자의 출생으로 카필라국은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지만 태자가 태어나고 불과 7일만에 그의 어머니 마야부인은 별세하였습니다. 그후 그는 이모인 마하파자파티 손에 의해 길러졌습니다. 일찍 어머니를 잃은 사건은 후일 그가 삶의 무상함을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한 동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 당시 아시타라는 예언가는 국가의 부흥을 바라는 정반왕의 기대와는 달리 싯다르타 태자는 출가해서 도(道)를 이루어 세상에 둘도 없는 진리를 증득한 부처(Buddha)가 될 것임을 예언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건들은 정통 바라문교의 교리와 브라만들의 권위가 퇴락할 때 즈음 혼란한 정신계를 통일해서 하나의 올바른 믿음을 세워 주기 바라는 그 당시 사상계의 일반적 염원이 태자에게 반영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인도의 정신사상계는 정치적 상황 못지 않게 매우
혼란한 시기이며 석존 당시에도 육사외도(六師外道)를 중심으로 수많은 종교 사상가들이
저마다의 교리를 펼치고 있었습니다.
석존께서도 성도 이전에는 그들에게서 배운 수행으로 상당한 경지에까지 들어갔다는
많은 기록들이 있습니다.
태자는 태어 난지 10일만에 당시 브라만의 통과의례로
이름이 싯다르타[Siddhartha: 모든 것을 성취한 자]로 명명되었으며 붓다(Buddha)는
종교적 혼란기에 정신세계를 바로 잡아 줄 종교 지도자의 바램이 담겨진 호칭입니다.
싯다르타는 7살 때부터 주변 강대국들에 맞서 자신의 나라인 카필라국을 수호할 강력한
왕이 될 제왕 수업을 받았습니다. 태자는 비슈바미트라 스승으로부터 당시 갖가지
학문을 사사 받았으며 이어서 왕자로서 갖추어야 될 덕목인 무예와 병법 등을 숙지한
것은 후일 그가 출가 후 설산에서 고행하던 6년을 지탱케 하는 큰 밑바탕이 되었을
것이며 또, 태자로서 갈고 다듬은 풍부한 학식은 성도를 이룬 뒤 대중들에게 적절한
비유로서 설법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3) 끝없는 사유
태자는 타고난 총명성과 다양한 보살핌으로 미래 왕으로서 갖추어야 될 학문과 무예를 기르고 있었으나 인간 삶의 단면인 약육강식의 지배질서에 환멸을 느끼면서부터 화려한 왕궁 생활도 점차 흥미를 잃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약육강식의 비정한 생존 질서와 브라만으로 이루어진 그 당시 인도의 계급차별이라는 불평등의 인간사를 올바로 성찰케 되었으며 그러므로 그 동안 자신이 받아 왔던 왕도교육이 모순된 인간사임을 직시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는 모순으로 점철된 인간사의 단면을 여러 각도에서 사유해 들어가면서 이미 초선(初禪) 단계에 들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염부수(閻浮樹) 아래의 정관(靜觀)이라 하여 태자의 몸에서 방광(放光)이 있었다는 기록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의 이러한 체험은 그후 고행의 시기에 선정(禪定)의 힘을 돋우는 수행의 튼튼한 초석이 되었을 것입니다.
태자가 화려한 왕궁 생활에 흥미를 잃고 내적 인간 삶의 고뇌에 깊이 빠져들어 갈수록 그의 출가를 우려한 정반왕의 염려는 더해 갔습니다. 왕은 삼시전(三時殿)이라는 봄 여름 가을 즉, 계절에 따라 머물 수 있는 궁전을 지어 온갖 호화로운 생활을 하게 하여 출가의 뜻을 막으려 하였으나 결국 궁궐 밖의 현실인 비참한 인간의 생노병사(生老病死) 현장을 목격하고 그 앞에 좌절하는 상황을 맞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태자는 고통의 현실을 막연히 고뇌하는 차원이었지만 성문 밖 다수의 고통스런 생활상과 그 고통을 해결해 나가는 수행자의 모습을 보면서 현실적 고통을 극복하는 것에 관심을 돌리는 대 인식의 전환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형이상학적 이론을 통해서가 아니라 적나라한 현실을 통찰하는 것으로 마음의 정리를 하는 것에 더 큰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같은 경험은 부처님께서 성도를 이룬 후 설법한 아함부 경전인 "유연경"에서 삼시전의 호화로운 생활과 성문 밖 세상을 통해 인생의 고통을 알았노라는 사문유관 상황을 자세히 설명한 흔적으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때 석존께서는 세 가지 경계할 교만심을 설하시는데 그것은 노인의 모습을 통해서 자신은 영원히 젊을 것이라는 생각과 병든 사람을 통해서 자신은 영원히 건강할 것이라는 것과 상대의 죽음을 통해서 자신은 오래 살 것이라는 교만을 경계하였습니다. 이렇게 젊은 날의 태자는 현실에 물들지 않는 철저한 자기성찰로 무한 사고를 키워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4) 왕자의 삶을 내려놓고
태자가 출가에 관심을 두고 있을 때 정반왕은 매일 연회를
베풀고 아름다운 무희들로 하여금 태자를 돌보게 하였으나 그러한 노력은 무위로
끝났습니다. 태자가 어느 날 부왕에게 출가할 의사를 밝혔을 때 왕은 그를 달래기도
하고 꾸짖기도 해보지만 태자의 완강한 태도에 결국 왕실의 대를 이을 후손을 보는
조건을 붙여 그의 결심을 꺾어보려 하였습니다.
왕은 태자가 결혼을 하고 아내와 자식을 두게 되면 출가할 마음이 바뀌어 질 것이라는
기대로 태자의 나이 17세 때 콜리(Koli)성의 공주 야소다라와 결혼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구리'라는 둘째 아내와 '녹야'라는 셋째 아내까지 맞이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세속적 충족요소로서는 인생의 본질에 대해서 크게 고민하는 태자의 굳은
의지를 꺾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29세 때 세속의 모든 반연을 내려놓고 성(城)을
벗어나 구도(求道)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4. 당시 인도의 종교사상계
불교가 일어날 무렵(B.C. 5세기경)의 인도사회는 갖가지의 종교사상이 발생하여 서로 대립하고 있었습니다. 그때의 대립상은 인간의 생사에 관한 각파의 견해차이로 나타나는데 인도의 지배계급인 바라문교에서는 우주의 창조주이며 본질이기도 한 범(梵)이라는 천신에 대한 절대적인 신앙과 공희를 통해서 인간의 모든 문제는 해결된다고 주창하고 있었으며 같은 계통의 우파니샤드 철인들은 인간의 자아(自我)와 범(梵)은 동일하다는 범아일여(梵我一如)를 통해서만이 인간은 생사 윤회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다는 비의(秘義)를 전수하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죽음이 극복될 수 있다는 우파니샤드의 이러한 해탈 철학과는 정반대로 사문계의 순세파(順世派)에서는 인간은 죽으면 그만이라는 단멸론(斷滅論)을 주장하였으며 생활파(生活派)에서는 생사라는 것도 일종의 불변적 요소로서 인간의 의지로는 어쩔 수 없다는 무작용론[決定論]을 내세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계파(離繫派)는 정신을 속박하고 있는 육체에 극렬한 고행을 가함으로 인간은 생사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다는 해탈사상으로 다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싯다르타 태자는 깨달음을 이루기 전에 당시의 종교 사상계 속에서 번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출가 후 곧바로 칼라마와 라마풋타와 같은 저명한 바라문의 스승을 찾아가 그들의 가르침을 받았으나 그것은 생사를 극복할 진정한 길이 아님을 발견하고 서슴없이 그 숲에서 떠났습니다. 그 다음 우루벨라에 가서 사문계(沙門系)의 수행법으로 6년간의 극한적인 고행(苦行)에 들어갔으나 그것 또한 생사를 극복할 진정한 길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그 후 다시 보편적인 생활로 회귀하여 소녀 수자타가 끓여주는 우유죽을 먹으면서 탈진한 기력을 회복하고 부다가야의 보리수나무 아래서 좌선에 들어간 7일만에 새벽 별빛을 보고 '모든 것은 연기(緣起)한다'는 대자연의 섭리[眞理]를 깨달았습니다.
5. 깨달음과 부처
8만4천 불교의 가르침을 한마디로 축약하면 지극한 마음이 되게 하는 방편입니다. 그것은 성주괴공(成住壞空) 생주이멸(生住異滅)하는 대 우주의 실상을 통찰하고 자비희사 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영약인 것입니다.
절대적 능력자로 그려진 경전은 수행자의 마음 냄과 지어갈 바를 일러주는 의인화 된 방편임을 올바로 직시하지 못한다면 수행경륜에 상관없이 이생에 깨우침은 없습니다.
법화경에 제불세존(諸佛世尊)은 시대가 혼탁할 때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으로 이 세상에 출현하며 그는 부처의 지견(知見)으로 중생을 청정케 하며 부처의 지견을 깨치게[悟]하고 불지견(佛知見)에서 중생을 구제하고자 이 세상에 출현한다고 일러주고 있습니다.
그는 육바라밀[布施 持戒 忍辱 精進 禪定 智慧]에 입각하여 보살 행을 하는 사람이며 대자대비(大慈大悲)로 사회를 정화하여 이상적인 복지국가인 불국정토(佛國淨土)를 건설하는데 이바지할 소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참선수행은 원만구족한 지혜의 길이며, 대 자유인이 되어지는 法입니다. 또한 정의롭고 진솔한 마음의 땅을 회복하는 최상의 방편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