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眞理란 무엇인가?
1. 이야기Ⅰ
1999년10월18일자 중앙일보 31면에 실린 기사내용입니다.
道닦는데 걸림돌” 40代 성기절단
16일 오전 3시10분쯤 광주시 동구 김모(43)씨 집 안방에서 김씨가 “종교생활에 걸림돌이 된다”며 자신의 성기를 절단,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봉합수술을 끝내 거부했다. 김씨는 군 제대 후 특정 종교에 심취해 결혼도 하지 않고 산중 생활을 해오다 3년 전부터는 집에서
두문불출해왔다.
2. 이야기 II
최근 주요 일간지 하단 전면
광고내용입니다.
칭하이 무상사 “사랑의 바다” 아시아 순회강연
“神을 체험하라!!!”
일시: 5월8일 오후 7시
장소: 삼성동 COEX 신관3층 컨벤션홀
神이 존재한다고 여러분을 설득할 생각은 없습니다. 나는 단지 여러분을 神과 연결시켜 주고자 할 뿐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자신의 本性, 자신의 神性을 발견할 것입니다. - The Supreme Master Ching Hai -
3. 이야기 III
약 2,500년 전 북인도의 한 사람이 인간의 고통을 근본적으로 탐구해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결국 여러 가지 방법들을 시도해 본 몇 해 동안의 탐구 끝에 그는 자신의 본성을 꿰뚫어 보는 방법과 고통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어 참다운 자유를 경험할 수 있는 길을 발견했습니다.
고타마 싯다르타(Gotama Siddharta), 붓다 즉 ‘깨달은 사람’으로 알려진 이 사람은 인간 그 이상의 무엇을 결코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모든 위대한 스승들처럼 그는 전설적인 인물이 되었습니다. 비록 붓다의 전생에 관한 놀라운 사건과 위력에 관한 이야기들이 있을지라도 결코 붓다는 神이라든가 神에 의해서 힘을 받았다든가 하는 주장을 하지 않았습니다. 붓다가 지닌 특별한 힘들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들은 그를 완벽하게 만든 탁월한 인간적 자질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붓다가 성취한 모든 것은 인간이 노력하여 얻을 수 있는 인간의 능력 내에 있는 것입니다.
붓다는 어떤 종교나 철학 혹은 믿음 등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붓다는 그의 가르침을 法(Dharma) 즉 ‘법칙’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어떤 교리나 주의 주장, 어설픈 사변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대신 본질적 문제에 대한 보편적이고 실제적인 해결방법을 제시하였습니다.
그는 언제나 말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고통(苦)과 고통의 소멸(滅)을 가르친다’ 그는 고통의 질곡으로부터 벗어나는데 도움을 주지 않는 문제에 대하여는 언급하기를 거부하였습니다.
이 가르침(法)은 붓다가 발명한 것도 神에 의해서 계시된 내용도 아니며, 단순하게 붓다 자신의 노력에 의해서 또 前代의 사람들이나 後代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서도 발견되어질 수 있는 실재하는 眞理일 뿐입니다. 붓다는 진리의 독점권을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진리에 관하여 사람들이 가지는 마음이나 가르침의 논리적 성격과 같은 어떤 권위도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붓다는 인간이 고통의 질곡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기의 내면을 철저하게 성찰하고 탐구하여 無智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무엇이든 함부로 믿지 말라. 과거의 세대로부터 전해오는 상식이든, 경전에서 이야기된 것이든, 단순하게 연역된 것이든, 추론되어진 것이든, 외적인 형식이나 어떤 견해에 의해서든, 그럴듯한 설득이나 스승의 말이든 그것을 단순히 眞理로써 인정하지 말라. 그러나 ‘이 원리들은 건전하지 못하다. 현인들에 의해서 비난 받을 만하다. 만약 이것대로 실행된다면 피해와 고통을 야기시킬 것이다.’라고 당신이 깨달았을 땐 그것들을 주저없이 포기하라. 그리고 만약 당신이 ‘이 원리는 건전하고 현자들이 비난하지 않고 칭찬할 만하다. 이것을 채택하여 적용시키면 번영과 행복이 올 것이다.’라고 직접적으로 느꼈다면 그때 그것을 실천하라.”
"그대들 각자는 그대들의 섬이며 자신의 의지처이다. 또 다른 귀의처는 없다.
眞理를 그대들이 의지할 섬으로 삼고, 眞理를 그대들의 귀의처로 삼으라 또 다른 의지처는 없다". (自燈明 法燈明)
인생에 있어 참다운 귀의처, 딛고 설 수 있는 굳건한 대지, 올바르게 인도하고 보호해 줄 유일한 권위는 몸소 경험하고 검증한 법(法),
진리입니다. 그리고 붓다가 가르침에서 최고로 중시한 것이 眞理에 대한 직접적 경험입니다.
붓다는 스스로 경험한 진리를 가능한한 명료하게 설명해서 다른 사람들도 몸소 진리를 실현할 수 있도록 안내자 역할을 했습니다.
"내가 제시한 가르침은 안팎의 구별이 없다. 감추어진 것은 하나도 없다”
붓다는 선택된 몇 사람을 위한 비밀스런 가르침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붓다는 자기의 法이 가능한 한 아주 쉽고 평이하게 널리 가르쳐져서,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 혜택을 받았으면 하고 원했습니다.
法의 실현자로서 그는 개인적 신앙이나 종교적 교단을 설립하는 데 관심이 없었습니다. 붓다의 가르침(法)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눈 먼 신도로 만들기보다 그들에게 어떻게 그들 스스로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붓다에게 과도한 숭배를 나타내는 사람들에게 그는 말했습니다.
“색신으로 나를 보거나 음성으로써 나를 求하면 이 사람은 사도를 行함이라 능히 如來를 보지 못하리라”
붓다의 가르침은 모든 사람이 갈 수 있는 길입니다. 붓다는 이 길을 서로 밀접하게 관련된 8가지의 수행, 성스러운 八正道라고 불렀습니다. 이 길을 걷는 사람은 누구든지 거룩한 마음,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운 개인이 된다는 의미에서 성스럽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眞理 實現의 길이고 存在의 本質을 꿰뚫는 통찰의 길입니다.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진실로 있는 그대로의 우리 자신을 보아야 합니다. 또한 미묘한 진리를 파악하기 위해서 외형적 모양을 뛰어 넘어 마침내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운 궁극적 진리를 경험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 진리는 열반, 극락, 천국 그 외에 무엇이라고 부르든 그 이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바로 그것을 직접 경험하는 일입니다.
진리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은 내면을 들여다 보고 자기자신을 관찰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항상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이나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관찰하는 데에는 익숙해 있지만 자기자신의 정신과 행동, 자신의 참다운 성품 등을 검토해 보려는 노력에는 의외로 익숙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무지의 영역에 계속 남겨둘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이 무지가 얼마나 해로우며 알지 못하는 우리 내부의 힘에 의해 얼마나 오랫동안 노예상태로 남아 있었던가를 깨닫지 못합니다.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 즉 자기 외적인 대상을 역사상 가장 성공적으로 그리고 가장 믿을만하게 설명하였던 학문이 현대 물리학이라고 한다면, 인간 자신의 내면 문제를 가장 치열하게 다루면서 마침내 그 모든 외적 조건으로부터의 완전한 자유 즉 해탈이 가능하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인 것이 바로 고타마 싯다르타(Gotama Siddharta) 즉 붓다로부터 시작한 佛法이라는 체계입니다.
현대 물리학과 불교라는 인간의 이 두 가지 정신활동 사이에는 시간적으로는 약 2,500년이라는 간극이 존재하고, 다루는 내용이나 방식마저도 판이하게 다르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실험과 관찰을 위주로 하는 현대 물리학의 세계 이해가 오직 명상과 참선만으로 이루어진 불교적 세계관으로 정확하게 접근해오고 있다는 또 하나의 불가사의를 우리는 20세기에 들어와서 경험하고 있습니다.
미시세계에서 ‘불확정성의 원리’를 도출하여 양자역학을 확립한 하이젠베르크(W. Heisenberg)는 이렇게 술회하였습니다 “원자이론을 포함한 거대한 우주 존재 드라마의 본질을 이해하려면 석가모니가 일찍이 부딪혔던 인식론의 문제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20세기의 대표적 원자물리학자인 보어(N. Bohr)와 오펜하이머(J. R. Oppenheimer)는 다음과 같이 독백하였습니다 “원자물리학의 근본과제들은 불교사상 속에서 매우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앞으로 물리학자가 추구해야 할 것은 옛 지혜의 예증이며 장려이고 그것을 한층 갈고 다듬는 일 뿐이다”.
眞理는 하나이며 모든 학문과 종교체계는 궁극에는 眞理라는 자리에서 필연적으로 만나게 됩니다.
진리는 어느 한 사람의 말로 說해지거나, 어떤 종교나 학문의 이름으로 표현되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는 說해지거나 表現되는 것이 아니라 우주와 자연의 모습으로 그냥 드러나 보여지는 있는 그대로의 현상입니다. 成住壞空하고 生住異滅하는 자연의 섭리야말로 진정한 眞理의 스승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