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 


14. 세간 법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참선하는 납자는 세간법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불법에 집착해서도 안되거늘 하물며 세간에 매달려서야 되겠는가. 만약 일념공부가 제대로 되면 얼음을 뒤집어써도 차가운 줄을 모르며, 불을 밟고 가도 뜨거운 줄을 모르며, 가시덤불을 지나가도 걸리거나 막히는 일이 없다.[註: 一念의 극단적 표현이 아니면 변견이다.] 이렇게 되어야 비로소 세간법에서 자유로워진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나 바깥 경계에 끄달린다. 여기에서는 조그만 큼의 공부를 이루려 해도 당나귀 해(실현될 가능성이 없음을 비유함)가 되도록 끝없이 기다려 보았자 꿈속에서도 공부의 진전을 볼 수 없을 것이다.

15. 언어 문구를 배우지 말라

참선하는 납자는 문구를 따져 연구하거나 옛사람의 말씀이나 외우고 다녀서는 안된다. 이러한 일은 무익할 뿐 아니라 공부에 장애가 되어서 진실한 공부가 도리어 알음알이로 전락해 버린다. 이러고서 어떻게 "마음의 움직임이 완전히 끊긴 자리"에 이르려 하는가.

16.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

참선할 때에는 알음알이를 가장 두려워해야 한다. 마음을 여러 갈래로 치닫게 하면 도(道)와는 점점 멀어지게 되니 그런 식으로는 미륵이 하생할 때까지 수행을 하여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만일 의정이 문득 일어난 납자라면 허공 속에 갇혀 있어도 그것이 허공인 줄 모르고 또한 은산철벽(깨뜨리기 어려운 장애를 비유함) 속에 앉아 있듯 하여 오직 살아나갈 길만을 모색해야 하니 "살길을 찾지 못하면 어떻게 편안하게 은산철벽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겠는가"라고 생각해야 한다.
단지 이렇게 공부해 나가다 보면 때가 올 것이니, 그때는 어쩔 수 없이 자연히 들어갈[入道]곳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17. 공부로는 도를 깨칠 수 없다는 사견을 조심하라

요즘 삿된 선사들이 납자들을 잘못 가르치는 일이 있다. 그들은 "깨치는 길은 공부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또 "옛 사람들은 한번도 공부해서 도를 깨친 일은 없다"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이런 말은 후학을 미혹케 하여 쏜살같이 지옥으로 끌고 들어가는 해로운 말이다.

대의 선사의 <坐禪銘>에는 이런 글이 있다.

"참구할 필요 없다 절대로 큰소리 말지니
옛분이 애써서 모범이 되어주지 않았던가
지금은 낡은 누각 버려진 땅이라 해서
한번에 영영 황폐시켜서야 되겠는가."

만약에 참구할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문득 "나는 도를 깨쳤노라"고한다면 이는 하늘에서 떨어진 미륵, 땅에서 솟은 석가일 것이다. 이런 무리들을 이름하여 불쌍한 존재라고 한다.

자기 스스로 참구하지 않고 옛 스님들이 도를 묻고 대답한 것을 보고 듣고는 문득 자기가 깨달았다고 착각한다. 드디어 알음알이를 깨달음이라고 생각하여 그것으로 사람들을 함부로 속인다. 그러다가 호된 열병에라도 한 번 걸리면 아프다고 하늘에 닿도록 소리치니 평생동안 깨달은 바가 하나도 쓸모없게 된다. 이윽고 죽는 마당에 이르면 마치 끓는 냄비 속에 들어간 방게처럼 손을 바삐 움직이고 발버둥을 치게 되니 그때 후회해 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황벽스님은 이런 노래를 지으셨다.

"티끌 세상을 벗어남은 보통 일이 아니니
고삐 끝을 꼭 잡고 한바탕 일을 치루라
매서운 추위가 뼛속에 사무치지 않으면
어떻게 매화향기 코를 찌르랴"

이것은 가장 간절한 말씀이니 이것으로써 때때로 스스로를 채찍질하면 공부는 자연히 날로 향상될 것이다. 그것은 마치 백리 길을 가는데 한 발자국을 걸어가면 한 발자국만큼 백리길이 줄어드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한 발자국도 걸어가지 않고 제자리에 머물러 있게 되면 비록 자기 고향 일은 훤히 설명할 수가 있지만 진정한 고향인 깨달음에는 끝내 이르지 못하게 될 것이다.

18. 간절하게 참구하라

참선하는 데 있어서는 <간절함>이라는 한마디가 가장 요긴하다. 간절함은 무엇보다도 힘이 있는 말이니 간절하지 않으면 게으름이 생기고, 게으름이 생기게 되면 편한 곳으로 내쳐 마음대로 놀게 되며 못할 짓이 없게 된다. 만일 공부에 마음이 간절하면 방일할 겨를이 있겠는가. 간절하다는 이 한마디만 알면 옛 스님들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다고 근심할 필요도 없고, 생사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근심하지 않아도 된다. 이 간절하다는 말을 버리고 따로 불법을 구한다면 모두 어리석고 미친 사람들로서 형편없이 빗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엉터리와 참선하는 사람을 어떻게 동일시할 수 있겠는가.

간절하다는 이 한마디가 어찌 허물만 멀리 할 뿐이겠는가. 당장 선(善)과 악(惡)과 무기(無記)의 3성(三性)을 뛰어넘을 수 있다. 이것이 무슨 뜻인가 하면 온통 간절하게[一念] 마음을 쏟으면 선(善)도 생각하지 않게 되고 악(惡)도 생각하지 않게 되며 또한 간절한 마음 때문에 무기(無記)에 떨어지지도 않는다.

화두를 간절히 참구하면 마음이 들뜨는 상태와 어둡게 가라앉는 상태가 없어지고, 화두가 눈앞에 나타나면 무기(無記: 감각이 없는 상태)에 떨어지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간절하다는 이 한마디가 가장 친절한 말이다. 마음 씀이 매우 간절하면 마가 들어올 틈이 없다. 또한 있다 없다를 놓고 분별심을 내지 않아서 외도에 떨어지지 않는다.[註: 一念은 화두에도 묶이지 않는다.]

19. 참선 중에는 앉아 있음도 잊어라

참선하는 중에는 걸어가도 걷는 줄을 모르고 앉아 있어도 앉은 줄을 모르니 이것을 "화두가 현전한다"고 말한다. 의정이 깨어지지 않으면 몸과 마음이 있는 줄도 모르는데 하물며 걷고 앉는 일을 의식하겠는가.[註: 無記 아님인지 살펴야 한다]

20. 주변사에 마음을 쓰지 말라

참선하는 납자는 시를 짓고 노래 부르며 글 쓰기를 생각하는 일을 가장 조심해야 한다. 시나 노래로 대가가 되면 "승려시인 아무개"라 불리 우고, 문장력이 뛰어나면 "글 잘하는 아무개 스님"이라 불리게 되나 참선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일이다.[註: 禪은 生死를 여의지 않는다.]

마음에 맞거나 거슬리는 바깥 경계가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경우를 만나게 되면 그 자리에서 알아차려 깨뜨려야 한다. 그리고는 화두를 들고서 바깥 경계를 따라 굴러가지 말아야 비로소 제대로 되었다 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그렇게 바짝 조여댈 것 없다"라고 말하는데 이러한 태도가 가장 사람을 그르치게 하는 공부이다.

21. 공(空)에 떨어짐을 두려워 말라

참선하는 사람이 흔히 공에 떨어질까 두려워하는데 화두가 현전한다면 어떻게 공에 떨어질 수 있겠는가. 오직 이렇게 공에 떨어 질까봐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미 공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니 하물며 화두가 현전할 수 있겠는가.
참선할 때에 의정을 깨뜨리지 못했으면 마치 깊은 물가에 간듯 살얼음판을 지나듯 조심해야 하니 털끝만큼이라도 한 생각 놓쳐버리면 목숨을 잃어버리게 된다.

의정을 깨뜨리지 못하면 이치를 밝혔다고 한 숨을 놓을 수가 없다. 이런 상태에서 숨이 떨어지면 일생 동안 중음신이 끄는 대로 끌려 다니다가 업식(業識)에 매이는 결과를 면치 못한다. 그리하여 계속 다른 몸을 받고 윤회하면서 머리를 바꾸고 얼굴을 바꾸어도 알아차리지 못하게 된다. 이렇게 하여 의정에다가 또 하나의 의정을 덧붙이게 되어서 화두를 들어도 결정코 밝혀야 할 곳을 밝히지 못한다. 이 일은 도둑 잡는 일에 비유하자면 물증으로 장물을 찾아내야 비로소 잡았다고 하는 것과 같다.[註: 화두병통으로 分別없음 문전에도 도달하지 못한 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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