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
무념(無念)
8. 무념(無念)
선지식들아, 법에는 단박 깨침과 점차로 깨침이 없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 영리하고 우둔함이 있으니, 미혹하면 점차로 계합하고 깨친 이는
단박에 닦느니라.
자기의 본래 마음을 아는 것이 본래의 성품을 보는 것이다. 깨달으면 원래로 차별이
없으나 깨닫지 못하면 오랜 세월을 윤회하느니라.
善知識 法無頓漸 人有利鈍 迷卽漸契 悟人 頓修 識自本心 是見本性 悟卽元無差別 不悟 卽長劫輪廻
선지식들아, 나의 이 법문은 옛부터 모두가 생각 없음(無念)을
세워 종(宗)을 삼으며 모양 없음(無相)으로 본체를 삼고 머무름 없음(無住)으로 근본을
삼느니라.
어떤 것을 모양이 없다고 하는가?
모양이 없다고 하는 것은 모양에서 모양을 떠난 것이다. 생각이 없다고 하는 것은
생각에 있어서 생각하지 않는 것이요, 머무름이 없다고 하는 것은 사람의 본래 성품이
생각마다 머무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지나간 생각과 지금의 생각과 다음의 생각이
생각생각 서로 이어져 끊어짐이 없나니, 만약 한 생각이 끊어지면 법신이 곧 육신을
떠나느니라.
순간순간 생각할 때에 모든 법 위에 머무름이 없나니, 만약 한 생각이라도 머무르면
생각마다에 머무는 것이므로 얽매임이라고 부르며 모든 법 위에 순간순간 생각이
머무르지 아니하면 곧 얽매임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머무름이 없는 것으로 근본을
삼느니라.
善知識 我自法門 從上已來 皆立無念爲宗 無相爲體 無住爲本 何名無相 無相者 於相而離相 無念者 於念而不念 無住者 爲人本性 念念 不住 前念今念 後念 念念相續 無有斷絶 若一念斷絶 法身 卽是離色身 念念時中 於一切法上無住 一念若住 念念卽住 名繫縛 於一切法上 念念不住 卽無縛也 是以無住 爲本
선지식들아, 밖으로 모든 모양을 여의는 것이 모양이 없는
것이다. 오로지 모양을 여의기만 하면 자성의 본체는 청정한 것이다. 그러므로 모양이
없는 것으로 본체를 삼느니라.
모든 경계에 물들지 않는 것을 생각이 없는 것이라고 하나니, 자기의 생각 위에서
경계를 떠나고 법에 대하여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니라. 일백 가지 사물을 생각하지
않고서 생각을 모두 제거하지 말라. 한 생각 끊어지면 곧 다른 곳에서 남(生)을 받게
되느니라.
도를 배우는 이는 마음을 써서 망념을 쉬도록 하라. 자기의 잘못은 그렇다 하더라도
다시 다른 사람에게 권하겠는가. 미혹하여 스스로 알지 못하고 또한 경전의 법을
비방하나니, 그러므로 생각 없음을 세워 종을 삼느니라.
미혹한 사람은 경계 위에 생각을 두고 생각 위에 곧 삿된 견해를 일으키므로 그것을
반연하여 모든 번뇌와 망령된 생각이 이로부터 생기느니라.
善知識 外離一切相 是無相 但能離相 性體淸淨 是以無相爲體 於一切境 上 不染 名爲無念 於自念上離境 不於法上念生 莫百物不思 念盡除却 一念 斷 卽別處受生 學道者 用心 莫不息法意 自錯 尙可 更勸他人 迷不自見 又謗經法 是以立無念爲宗 卽緣迷人 於境上 有念 念上 便起邪見 一切塵勞妄念 從此而生
그러므로 이 가르침의 문은 무념(無念)을 세워 종을 삼느니라.
세상 사람이 견해를 여의고 생각을 일으키지 않아서, 만약 생각함이 없으면 생각
없음도 또한 서지 않느니라.
없다함은 무엇이 없다는 것이고 생각함이란 무엇을 생각하는 것인가?
없다함은 두 모양의 모든 번뇌를 떠난 것이고, 생각함은 진여의 본성을 생각하는
것으로서, 진여는 생각의 본체요 생각은 진여의 작용이니라. 그러므로 자기의 성품이
생각을 일으켜 비록 보고 듣고 느끼고 아나, 일만 경계에 물들지 않아서 항상 자재하느니라.
유마경에 말씀하시기를 '밖으로 능히 모든 법의 모양을 잘 분별하나 안으로 첫째
뜻에 있어서 움직이지 않는다'하였느니라.
然此敎門 立無念爲宗 世人 離見 不起於念 若無有念 無念 亦不立 無者 無何事念者 念何物 無者 離二相諸塵勞 念者 念眞如本性 眞如 是念之體 念是眞如之用 自性起念 雖卽見聞覺知 不染萬境而常自在 維摩經 云 外能善分別諸法相 內於第一義而不動
* 오인돈수(悟人頓修: 깨친 이는
단박에 닦음)… 육조는 불지(佛地)만을 돈오견성(頓悟見性: 단박에 깨쳐서 성품을
봄)으로 인정하였으며, 불지에는 오후점수(悟後漸修: 깨친 뒤 점차로 닦음)가 없으므로
오인돈수라고 한 것이다.
* 무념위종(無念爲宗: 생각 없음으로 종을 삼음)… 등각(等覺) 이하의 모든 중생은
모두 망념이 있으므로[金剛已還의 一切衆生은 皆是有念일새]중생이라 하고, 모든
부처는 다 무념을 얻었으므로 부처라고 이름하느니라.
* 십지(十地)·등각(等覺)도 유념(有念: 생각이 있음)이요 불지만이 무념(無念: 생각이
없음)이니, 견성은 불지무념(佛地無念)이므로 무념위종이라고 한 것이다.
9. 좌선(坐禪)
선지식들아, 이 법문 중의 좌선은 원래 마음에 집착하지
않고 또한 깨끗함에도 집착하지 않느니라. 또한 움직이지 않음도 말하지 않나니,
만약 마음을 본다고 말한다면, 마음은 원래 허망한 것이며 허망함이 허깨비와 같은
까닭에 볼 것이 없느니라. 만약 깨끗함을 본다고 말한다면 사람의 성품은 본래 깨끗함에도
허망한 생각으로 진여가 덮인 것이므로 허망한 생각을 여의면 성품은 본래대로 깨끗하느니라.
자기의 성품이 본래 깨끗함은 보지 아니하고 마음을 일으켜 깨끗함을 보면 도리어
깨끗하다고 하는 망상[淨妄]이 생기느니라.
망상은 처소가 없다. 그러므로 본다고 하는 것이 도리어 허망된 것임을 알라. 깨끗함은
모양이 없거늘, 도리어 깨끗한 모양을 세워서 이것을 공부라고 말하면 이러한 소견을
내는 이는 자기의 본래 성품을 가로막아 도리어 깨끗함에 묶이게 되느니라.
만약 움직이지 않는 공부를 하는 자가 있다면 모든 사람의 허물을 보지 않는 그것이
곧 자성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미혹한 사람은 자기의 몸은 움직이지 아니하나 입만 열면 곧 사람들의
옳고 그름을 말하나니, 도와는 어긋나 등지는 것이니라. 마음을 보고 깨끗함을 본다고
하는 것은 도리어 도를 가로막는 인연이니라.
善知識 此法門中 坐禪 元不著心 亦不著淨 亦不言不動 若言看心 心元是妄 妄如幻故 無所看也 若言看淨 人性 本淨 爲妄念故 蓋覆眞如 離妄念本性淨 不見自性本淨 心起看淨 却生淨妄 妄無處所 故知看者 却是妄也 淨無形相 却立淨相 言是功夫 作此見者 障自本性 却被淨縛 若不動者 不見一切人過患 是 性不動 迷人 自身 不動 開口卽說人是非 與道違背 看心看淨 却是障道因緣
이제 너희들에게 말하나니, 이 법문 가운데 어떤 것을
좌선이라 하는가?
이 법문 가운데는 일체 걸림이 없어서, 밖으로 모든 경계 위에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앉음(坐)이며 안으로 본래 성품을 보아 어지럽지 않는 것이 선(禪)이니라.
어떤 것을 선정이라 하는가?
밖으로 모양을 떠남이 선이요 안으로 어지럽지 않음이 정이다. 설사 밖으로 모양이
있어도 안으로 성품이 어지럽지 않으면 본래대로 스스로 깨끗하고 스스로 정(定)이니라.
그러나 다만 경계에 부딪침으로 말미암아 부딪쳐 곧 어지럽게 되나니, 모양을 떠나
어지럽지 않은 것이 곧 정이니라. 밖으로 모양을 떠나는 것이 곧 선이요 안으로 어지럽지
않은 것이 곧 정이니, 밖으로 선(禪)하고 안으로 정(定)하므로 선정이라고 이름하느니라.
유마경에 말씀하기를 '즉시에 활연히 깨쳐 본래 마음을 도로 찾는다'하였고, 보살계에
말씀하시기를 '본래 근원인 자성이 깨끗하다'고 하였느니라.
선지식들아, 자기의 성품이 스스로 깨끗함을 보아라. 스스로 닦아 스스로 지음이
자기 성품인 법신이며, 스스로 행함이 부처님의 행위이며, 스스로 짓고 스스로 이룸이
부처님의 도이니라.
今記汝 是此法門中 何名坐禪 此法門中 一切無碍 外於一切境界上 念不起爲坐 內見本性不亂 爲禪 何名爲禪定 外離相曰禪 內不亂曰定 外若有相 內性不亂 本自淨自定 只緣境觸 觸卽亂 離相不亂 卽定 外離相 卽禪 內不亂 卽定 外禪內定 故名禪定 維摩經 云 卽時豁然 還得本心 菩薩戒 云 本源自性 淸淨 善知識 見自性自淨 自修自作 自性法身 自行 佛行 自作自成 佛道
* 정·혜를 함께 한 부처의 무념(無念)만이 선정이요 그 밖의 것은 모두 번뇌·진로이다.
10. 삼신(三身)
선지식들아, 모두 모름지기 자기의 몸으로 모양 없는 계(無相戒)를
받되, 다 함께 혜능의 입을 따라 말하라. 선지식들로 하여금 자기의 삼신불을 보게
하리라. "나의 색신의 청정법신불에 귀의하오며, 나의 색신의 천백억화신불에
귀의하오며, 나의 색신의 당래원만보신불에 귀의합니다"하라.[이상 세번 부름]
색신은 집이므로 귀의한다고 말할 수 없다. 앞의 세 몸은 자기의 법성 속에 있고
세상 사람이 다 가진 것이다. 그러나 미혹하여 보지 못하고 밖으로 세 몸의 부처를
찾고 자기 색신 속의 세 성품의 부처는 보지 못하느니라.
선지식들은 들어라. 선지식들에게 말하여 선지식들로 하여금 자기의 색신에 있는
자기의 법성이 세 몸의 부처를 가졌음을 보게 하리라.
善知識 총須自體 以受無相戒 一時 逐惠能口道 令善知識 見自三身佛 於自色身 歸依淸淨法身佛 於自色身 歸依千百億化身佛 於自色身 歸依當來圓滿報身佛 已上三唱 色身 是舍宅 不可言歸 向者三身 在自法性 世人盡有 爲迷不見 外覓三身如來 不見自色身中三性佛 善知識 聽 與善知識說 令善知識 於自色身 見自法性 有三身佛
이 세 몸의 부처는 자성으로부터 생긴다. 어떤 것을 깨끗한
법신의 부처라고 하는가?
선지식들아, 세상 사람의 성품은 본래 스스로 깨끗하여 만가지 법이 자기의 성품에
있다. 그러므로 모든 악한 일을 생각하면 곧 악을 행하고 모든 착한 일을 생각하면
문득 착한 행동을 닦는 것이다. 이와 같이 모든 법이 다 자성 속에 있어서 자성은
항상 깨끗함을 알라.
해와 달은 항상 밝으나 다만 구름이 덮이면 위는 밝고 아래는 어두워서 일월성신을
보지 못한다. 그러다가 홀연히 지혜의 바람이 불어 구름과 안개를 다 걷어 버리면
삼라만상이 일시에 모두 나타나느니라.
세상 사람의 자성이 깨끗함도 맑은 하늘과 같아서, 혜(慧)는 해와 같고 지(智)는
달과 같다. 지혜는 항상 밝되 밖으로 경계에 집착하여 망념의 뜬구름이 덮여 자성이
밝지 못할 뿐이다. 그러므로 선지식이 참법문을 열어 주어 미망을 불어 물리쳐 버리면
안팎이 사무쳐 밝아 자기의 성품 가운데 만법이 다 나타나나니, 모든 법에 자재한
성품을 청정법신이라 이름하느니라.
스스로 돌아가 의지함이란, 착하지 못한 행동을 없애는 것이며 이것을 이름하여 돌아가
의지함이라 하느니라.
此三身佛 從性上生 何名淸淨法身佛 善知識 世人 性 本自淨 萬法 在自性 思量一切惡事 卽行於惡 思量一切善事 便修於善行 知如是一切法 盡在自性 自性 常淸淨 日月常明 只爲雲覆蓋 上明下暗 不能了見日月星辰 忽遇慧風 吹散 卷盡雲霧 萬像森羅 一時皆現 世人性淨 猶如淸天 惠如日 智如月 智惠常明 於外著境 妄念浮雲 蓋覆 自性 不能明 故 遇善知識 開眞法 吹却迷妄 內外明徹 於自性中 萬法 皆見 一切法 自在性 名爲淸淨法身 自歸依者 除不善行 是名歸依
어떤 것을 천백억화신불이라고 하는가?
생각하지 않으면 자성은 곧 비어 고요하지만 생각하면 이는 곧 스스로 변화한다.
그러므로 악한 법을 생각하면 변화하여 지옥이 되고 착한 법을 생각하면 변화하여
천당이 되고 독과 해침은 변화하여 축생이 되고 자비는 변화하여 보살이 되며, 지혜는
변화하여 윗세계가 되고 우치함은 변화하여 아랫나라가 된다. 이같이 자성의 변화가
매우 많거늘, 미혹한 사람은 스스로 알아보지를 못한다.
한 생각이 착하면 지혜가 곧 생기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자성의 화신이라 하니라.
何名爲千百億化身佛 不思量 性卽空寂 思量 卽是自化 思量惡法 化爲地獄 思量善法 化爲天堂 毒害 化爲畜生 慈悲 化爲菩薩 智惠 化爲上界 愚癡 化爲下方 自性變化甚多 迷人 自不知見 一念善 知惠卽生 此名自性化身
어떤 것을 원만한 보신불이라고 하는가?
한 등불이 능히 천년의 어둠을 없애고 한 지혜가 능히 만년의 어리석음을 없애나니,
과거를 생각하지 말고 항상 미래만을 생각하라. 항상 미래의 생각이 착한 것을 이름하여
보신이라고 하느니라.
한 생각의 악한 과보는 천년의 착함을 물리쳐 그치게 하고 한 생각의 착한 과보는
천년의 악을 물리쳐 없애나니, 비롯함이 없는 때로부터 미래의 생각이 착함을 보신이라고
이름하느니라.
법신을 좇아 생각함이 곧 화신이요, 순간순간의 생각마다 착한 것이 곧 보신이요,
스스로 깨쳐 스스로 닦음이 곧 돌아가 의지하는 것이다. 가죽과 살은 색신이며 집이므로
귀의할 곳이 아니다. 다만 세 몸을 깨치면 곧 큰 뜻을 아느니라.
何名圓滿報身佛 一燈 能除千年闇 一智能滅萬年愚 莫思向前 常思於後 常後念善 名爲報身 一念惡報 却千年善止 一念善報 却千年惡滅 無始已來 後念 善 名爲 報身 從法身思量 卽是化身 念念善 卽是報身 自悟自修 卽名歸依也 皮肉 是色身 是舍宅 不在歸依也 但悟三身 卽識大意
* 내외명철(內外明徹: 안팎이 사무쳐
밝음)은 묘각(妙覺)이니 불교의 구경(究竟)이다. '시방세계 및 몸과 마음이 깨끗한
유리처럼, 내외명철을 식음(識陰)이 다하였다고 이름하나니, 부처님의 묘장엄해에
들어가 보리를 원만케 하니라[十方世界와 及身心이 如吠瑠璃하야 內外明徹을 名識陰盡이니
入於如來妙莊 嚴海하야 圓滿菩提니라- 楞嚴經 十].'
'깨끗한 유리 속에 밝은 달을 담은 것 같으면 문득 지위를 초월하여 과해(果海)에
들어가 무소득에 돌아가나니, 바야흐로 구경극칙이라고 이름하느니라[如淨瑠璃內含寶月하면
便超越地位하야 入於果海하야 歸無所得이니 方名究竟極則이니라- 감山楞巖通議 十]'
'만약에 식음이 다하면 바야흐로 지위를 넘어 얻는 바가 없이 구경을 원만성취하여
깨끗한 유리에 보배달을 담음과 같으니라[若得識陰盡하면 方超地位하야 了無所得하야
究竟圓成하야 如淨瑠璃內含寶月하니라- 宗鏡錄 八十八].'
'수정영락은 안팎이 사무쳐 밝아서 묘각에 항상 머무나니, 일체지혜의 지위라고 이름하느니라[水晶瓔珞은
內外明徹하야 妙覺에 常住하니 名一切智地니라- 瓔珞經 上].'
* 육조스님은 내외명철을 청정법신이라고 하였다. 이는 불교의 구경인 원교불상(圓敎佛相:
원교의 부처님 모습)이다.
'묘각의 지위에 들어가서 청정법신을 성취하니, 원교불상이니라[入妙覺位하야 成淸淨法身하니
圓敎佛相也니라- 天台四敎議 圓敎章 一].'
* 조사스님의 말씀을 구차하게 교리에 배합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육조스님이 강조하신 내외명철은 불교의 구경극칙인 원교묘각(圓敎妙覺)이다.
육조스님은 내외명철이라야 식심견성(識心見性: 마음을 알아 성품을 봄)이라고 하였으니,
종문의 표방(標榜)인 견성(見性)은 불교의 구경묘각 즉 성불(究竟妙覺卽成佛)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