Ⅶ
행화(行化)
23. 행화(行化)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선지식들아, 너희들은 다들 이 게송을 외어 가지라. 이 게송을 의지하여 수행을
하면 천리를 혜능과 떨어져 있더라도 항상 혜능의 곁에 있는 것이요, 이를 수행하지
않으면 얼굴을 마주하여도 천리를 떨어져 있는 것이다. 각각 스스로 수행하면 법을
서로 지님이 아니겠느냐.
여러 사람들은 그만 흩어지거라. 혜능은 조계산으로 돌아가리라.
만약 대중 가운데 큰 의심이 있거든 저 산으로 오너라. 너희를 위하여 의심을 부수어
같이 부처의 성품을 보게 하리라."
함께 앉아 있던 관료·스님·속인들이 육조대사께 예배하며 찬탄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들은 '훌륭하십니다, 크게 깨치심이여! 옛적에는 미처 듣지 못한 말씀이로다. 영남에
복이 있어 산 부처가 여기 계심을 누가 능히 알았으리오'
한 다음 한꺼번에 다 흩어졌다.
大師言 善知識 汝等 盡誦取此偈 依偈修行 去惠能千里 常在能邊 此不修 對面千里 各各自修 法不相持 衆人 且散 惠能 歸曹溪山 衆人 若有大疑 來彼山間 爲汝破疑 同見佛性 合座官僚道俗 禮拜和尙 無不嗟嘆 善哉 大悟 昔所未聞 嶺南 有福 生佛在此 誰能得知 一時盡散
대사께서 조계산으로 가시어 소주·광주 두 고을에서 교화하기를
사십여년이었다.
만약 문인을 말한다면 스님과 속인이 삼오천(三五千)명이라 이루 다 말할 수 없으며,
만약 종지를 말한다면 단경을 전수하여 이로써 의지하여 믿음을 삼게 하셨다. 만약
단경을 얻지 못하면 곧 법을 이어받지 못한 것이다. 모름지기 간 곳과 년 월 일과
성명을 알아서 서로서로 부촉하되 단경을 이어받지 못하였으면 남종(南宗)의 제자가
아니다. 단경을 이어받지 못한 사람은 비록 돈교법을 말하나 아직 근본을 알지 못함이라.
마침내 다툼을 면치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오로지 법을 얻은 사람에게만 돈교법의 수행함을 권하라. 다툼은 이기고
지는 마음이니 도와는 어긋나는 것이다.
大師往曹溪山 韶廣二州 行化四十餘年 若論門人 僧之與俗 三五千人 說不盡 若論宗旨 傳授壇經 以此爲依約 若不得壇經 卽無稟受 須知去處年月日姓名 遞相付囑 無壇經稟承 非南宗弟子也 未得稟承者 雖說頓敎法 未知根本 終不免諍 但得法者 只勸修行 諍是勝負之心 與道違背
24. 돈수(頓修)
세상 사람이 다 전하기를 '남쪽은 혜능이요 북쪽은 신수'라고
하나, 아직 근본 사유를 모르는 말이다.
또 신수선사는 형남부 당양현 옥천사에 주지하며 수행하고, 혜능대사는 소주성 동쪽
삼십오 리 떨어진 조계산에 머무시니, 법은 한 종(宗)이나 사람에게 남쪽과 북쪽이
있어 이로 말미암아 남쪽과 북쪽이 서게 되었다.
어떤 것을 '점(漸)과 돈(頓)'이라고 하는가?
법은 한가지로되 견해에 더디고 빠름이 있기 때문이다. 견해가 더딘즉 '점'이요 견해가
빠른즉 '돈'이다. 법에는 '점'과 '돈'이 없으나 사람에게는 영리함과 우둔함이 있는
까닭으로 '점'과 '돈'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世人 盡傳 南能北秀 未知根本事由 且秀禪師 於荊南府當陽縣 玉泉寺 住持修行 惠能大師 於韶州城東 三十五里曹溪山 住 法卽一宗 人有南北 因此便立南北 何名漸頓 法卽一種 見有遲疾 見遲卽漸 見疾卽頓 法無漸頓 人有利鈍故 名漸頓
일찍이 신수스님은 사람들이 혜능스님의 법이 빠르고 곧게
길을 가리킨다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신수스님은 드디어 문인 지성스님을 불러 말하였다.
"너는 총명하고 지혜가 많으니, 나를 위하여 조계산으로 가라. 가서 혜능 스님의
처소에 이르러 예배하고 듣기만 하되, 내가 보내서 왔다 하지 말라. 들은 대로 그
뜻을 기억하여 돌아와서 나에게 말하여라. 그래서 혜능스님의 견해와 나와, 누가
빠르고 더딘지를 보게 하여라. 너는 첫째로 빨리 오너라. 그래서 나로 하여금 괴이하게
여기지 않도록 하라."
지성은 기쁘게 분부를 받들어 반달쯤 걸려서 조계산에 도달하였다. 그는 혜능 스님을
뵙고 예배하여 법문을 들었으나 온 곳을 말하지 않았다.
지성은 법문을 듣고 그 말끝에 문득 깨달아 곧 본래의 마음에 계합하였다. 그는 일어서서
예배하고 스스로 말하였다.
"큰스님이시여, 제자는 옥천사에서 왔습니다. 신수스님 밑에서는 깨치지 못하였으나
큰스님의 법문을 듣고 문득 본래의 마음에 계합하였습니다. 큰스님께서는 자비로써
가르쳐 주시기 바라옵니다."
혜능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거기에서 왔다면 마땅히 염탐꾼이렸다!"
지성이 말하였다.
"말을 하기 이전에는 그렇습니다만, 말씀을 드렸으니 이미 아니옵니다."
육조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번뇌가 곧 보리임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神秀師嘗見人 說惠能法 疾直指路 秀師遂喚門人僧志誠曰 汝聰明多智 汝與吾至曹溪山 到惠能所 禮拜但聽 莫言吾使汝來 所聽得意旨 記取 却來與 吾說 看惠能見解與吾誰疾遲 汝第一早來 勿令吾怪 志誠 奉使歡喜 遂半月中間 卽至曹溪山 見惠能和尙 禮拜卽聽 不言來處 志誠 聞法 言下便悟 卽契本心 起立卽禮拜 自言 和尙 弟子從玉泉寺來 秀師處 不得契悟 聞和尙說 便契本心 和尙 慈悲 願當敎示惠能大師曰 汝從彼來 應是細作 志誠曰 未說時卽是 說了不是 六祖言 煩惱卽是菩提 亦復如是
대사께서 지성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들으니 너의 스님이 사람을 가르치기를 오직 계·정·혜를 전한다고 하는데,
너의 스님이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계·정·혜는 어떤 것인가? 마땅히 나를 위해 말해
보라."
지성이 말하였다.
"신수스님은 계·정·혜를 말하기를 '모든 악을 짓지 않는 것을 계라고 하고,
모든 선을 받들어 행하는 것을 혜라고 하며, 스스로 그 뜻을 깨끗이 하는 것을 정이라고
한다. 이것이 곧 계·정·혜이다'고 합니다. 신수스님의 말씀은 그렇거니와, 큰스님의
의견은 어떠신지 알지 못합니다."
혜능대사께서 대답하셨다.
"그 법문은 불가사의하나 혜능의 소견은 또 다르니라."
지성이 여쭈었다.
"어떻게 다릅니까?"
혜능스님께서 대답하셨다.
"견해에 더디고 빠름이 있느니라."
지성이 계·정·혜에 대한 스님의 소견을 청하였다.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나의 말을 듣고서 나의 소견을 보라. 마음의 땅에 그릇됨이 없는 것이
자성의 계요, 마음의 땅에 어지러움이 없는 것이 자성의 정이요, 마음의 땅에 어리석음이
없는 것이 자성의 혜이니라."
혜능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너의 계·정·혜는 작은 근기의 사람에게 권하는 것이요, 나의 계·정·혜는
높은 근기의 사람에게 권하는 것이다. 자기의 성품을 깨치면 또한 계.정.혜도 세우지
않느니라."
지성이 여쭈었다.
"큰스님께서 세우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뜻은 어떤 것입니까?"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자기의 성품은 그릇됨도 없고 어지러움도 없으며 어리석음도
없다. 생각생각마다 지혜로 관조하여 항상 법의 모양을 떠났는데 무엇을 세우겠는가?
자기의 성품을 단박 닦으라. 세우면 점차가 있으니 그러므로 세우지 않느니라."
지성은 예배하고서 바로 조계산을 떠나지 아니하고 곧 문인이 되어 대사의 좌우를
떠나지 않았다.
大師謂志誠曰 吾聞汝禪師敎人 唯傳戒定慧 汝和尙 敎人戒定慧 如何 當爲 吾說 志誠曰 秀和尙 言戒定慧 諸惡不作 名爲戒 諸善奉行 名爲慧 自淨其意 名爲定 此卽名爲戒定慧 彼作如是說 不知和尙所見 如何 惠能和尙答曰 此說 不可思議 惠能所見 又別 志誠 問 何以別 惠能答曰 見有遲疾 志誠 請和尙說所見 戒定慧 大師言 汝聽吾說 看吾所見處 心地無非自性戒 心地無亂 是自性定 心地無癡 自性慧 惠能大師言 汝戒定慧 勸小根諸人 吾戒定慧 勸上根人 得悟自性 亦不立戒定慧 志誠 言 請大師說不立 如何 大師言 自性 無非無亂無癡 念念般若觀照 常離法相 有何可立 自性頓修 立有漸 此所以不立 志誠 禮拜 便不離曹溪山 卽爲門人 不離 大師左右
* 자성돈수(自性頓修: 자성으로 단박 닦음)…육조는 <제 8무념편>에서 '미혹한 사람은 점점 계합하고[迷人漸契] 깨친 사람은 단박에 닦는다[悟人頓修]'고 말함과 같이, 깨침[悟]은 모두 돈수(頓修)임을 말하였다. 돈황본에서는 '자성으로 단박에 닦는다[自性頓修]'고 간명하게 말하였으나, 각 본(本)에서는 '자성이 스스로 깨쳐서 단박에 깨치고 단박에 닦아서 또한 점차도 없다[自性이 自悟하여 頓悟頓修하여 赤無漸次라]'고 소상히 말씀하심으로써, <단경>에는 오직 돈오돈수(頓悟頓修)뿐이요 점수(漸修)는 없음을 분명히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