Ⅳ
주사불상(鑄寫佛像)
18.
주사불상(鑄寫佛像)
又鑄寫聖像者 卽一切衆生 求佛道也 所謂修諸覺行 假像如來眞容妙相 豈道鑄金銅之所作也 是故 求解脫者 以身 爲爐 以法 爲火 以智慧 爲工匠 三聚淨戒 六波羅密 以爲模樣 鎔鍊身中眞如佛性 遍入一切戒律摸中 如敎奉行 一無缺漏 自然成就眞容之相 所謂 究竟常住微妙法身 非是有爲敗壞之法 若人求道 不解鑄寫眞容 憑何輒言成功德也
또한 불상을 조성하는 것은 중생들이 불도를 구할 때, 말하자면 각행을 닦을 때에 여래의 참되고 묘한 모습을 반영한 것이지 어찌 법을 금동(金銅)으로 주조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해탈을 바라는 자는 몸으로 불가마를 삼고, 법으로 불을 삼고, 지혜로 공장(工匠)을 삼고, 삼취정계와 육바라밀로 모양을 삼아 몸 가운데 있는 진여불성(眞如佛性)을 녹여서 계율의 틀에 넣어 하나도 빠뜨림 없이 가르침대로 행하면 절로 진용(眞容)의 모습을 이루게 될 것이다. 이것이 말하자면 영원히 상주하는 절대진리의 미묘법신이며 허물어지는 유위법이 아니니라. 만약 어떤 사람이 도를 구하면서도 이러한 참된 진용(眞容)을 조성하고 그리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무엇으로 공덕을 이룬다 하겠는가.
19. 오분향(五分香)
燒香者 亦非世間有相之香 乃是無爲正法之香 薰諸臭穢 斷無明惡業 悉令消滅 其正法香有五種 一者 戒香 所謂能斷諸惡 能修諸善 二者 定香 所謂深信大機 心無退轉 三者 慧香 所謂常於身心 內外觀察 四者 解脫香 所謂能斷一切無明結縛 五者 解脫知見香 所謂覺察常明 通達無 애如是五香 名最 上香 世間無比 佛在世時 令諸弟子 以知慧火 燒如是無價寶香 供養十方一切諸佛 今時衆生 愚癡鈍根 不解如來眞實之義 唯將外火 燒於世間沈 檀薰陸質碍之香 希望福報 云何可得
향(香)이란 세속의 형상이 있는 향이 아니라 무위정법(無爲正法)의
향이다.
더러운 냄새를 없애고 무명의 악업을 끊어 다 소멸시키는 것이다. 정법의 향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계향(戒香)이니, 모든 악을 끊고 선행을 닦는 것이다.
둘째는 정향(定香)이니, 대기(大機: 대승법을 수지하여 보살승의 機類에 도달함)를
깊이 믿어서 물러남이 없는 마음이다. 셋째는 혜향(慧香)이니, 항상 몸과 마음을
안팎으로 관찰하는 것이다. 넷째는 해탈향(解脫香)이니, 모든 무명의 결박을 끊는
것이다. 다섯째는 해탈지견향(解脫知見香)이니, 항상 느끼고 살핌이 밝아서 걸림
없이 통달하는 것이다. 이 다섯 향은 최상의 향으로서 세상에서는 견줄 것이 없다.
부처님이 생존했을 때, 제자들에게 지혜의 불로써 이러한 값으로 따질 수 없는 보배의
향을 사루어 시방세계의 부처님에게 공양하라 하셨는데, 요즘 중생은 어리석고 근기가
둔하여 여래의 진실한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단지 침단·훈육 등 제조된 향을 밖의
불로써 태우며 복을 바라니 어찌 복을 얻겠는가.
20. 산화(散花)
又散花者 義亦如是 所謂演說正法諸功德花 饒益有情 散治一切眞如之性 普施莊嚴 此功德花 佛所稱歎 無凋落期 若復有人 散如是花 獲福無量 若言如來 令諸弟子 及衆生等 剪截艶綵 傷損草木 以爲散花 無有是處 所以者何 持淨戒者 於諸天地森羅萬像 不令觸犯 誤損者由獲大罪 況復今者 加毁淨戒 傷損萬物 求於福報 欲益反損 豈有是乎
또 꽃을 뿌리는 것도 역시 같은 이치이다. 말하자면 정법(正法)의
공덕 꽃을 설명하여 중생을 이익 되게 하고, 진여의 성품을 다스리고 뿌려서 널리
장엄(莊嚴)을 베푼다면 이런 공덕의 꽃이야말로 부처님이 칭찬하는 것으로 영원히
시들거나 떨어지지 않는다.
어떤 이가 이러한 꽃을 뿌린다면 한없는 복을 받는다. 그러나 '여래께서는 제자나
중생들로 하여금 아름다운 꽃이나 초목을 꺾어서 뿌리게 했다'고 말한다면 크게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계행을 지키는 이는 천지의 삼라만상을 해칠 수가 없고, 설령 실수로
해치는 것도 큰 죄를 받는데, 어찌 청정한 계를 무너뜨리고 만물을 손상시키면서까지
복을 구하겠는가. 이는 이익을 바라다가 도리어 손해가 되니 어찌 옳다 하겠는가."
21. 명등(明燈)
又長明燈者 正覺心也 覺知明了 喩之爲燈 是故 一切求解脫者 常以身爲燈臺 心爲燈盞 信爲燈炷 戒行爲燈油 智慧明達爲燈光 常燃如是覺燈 炤破一切無明癡暗 能以此法 轉明開悟 卽是一燈 燃百千燈 以燈續明 終無盡故 號長明燈 過去有佛 名曰燃燈 義亦如是 愚癡衆生 不會如來方便之說 專行虛妄 執着有爲 遂燃世間蘇油之燈 以照空室 乃稱依敎 豈不謬乎 所以者何 佛放眉間一毫之光 尙照十萬八千世界 若身光盡現卽普照十方 豈假如是世俗之燈 以爲利益 審察斯理 應不然乎
또 장명등이란 바르게 깨친 마음을 뜻한다. 깨달은 지혜의 명료함을 등에 비유한 것이다. 그러므로 해탈을 구하는 사람은 몸으로 등대(燈臺)를 삼고, 마음으로 등잔을 삼고, 믿음으로 심지를 삼고, 계행을 기름으로 삼고 지혜가 밝아지는 것을 등불로 삼아야 한다. 항상 이러한 깨달음의 등으로 모든 무명과 어리석음을 비추어야 하며, 이러한 법으로 차례차례 밝아져 깨달으면 이것은 하나의 등불로 백천 개의 등불을 밝히고 이 등불의 밝음이 끝없이 이어지므로 장명등이라 한다. 과거 세상에 연등불이 계셨다는 것도 이러한 이치이거늘 어리석은 중생이 여래의 방편의 말씀을 알지 못하여 허망한 짓을 하고, 유위법(有爲法)에 집착하여 세간의 소유(蘇油)로 등을 켜서 빈방을 비추는 것으로써 가르침대로 한다고 하니, 어찌 잘못됨이 아니겠는가. 그 까닭이 무엇인가. 부처님의 미간(眉間)에 있는 털 하나의 광명으로도 십만팔천의 세계를 비추고, 신광(身光)을 다 나타내면 시방세계를 두루 비추게 되는데, 어찌 이런 세속의 등을 빌려서 이익을 삼겠는가. 이런 이치를 깊이 살펴보면 응당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으리라.
22. 행도(行道)
又六時行道者 所謂六根之中 常行佛道 修諸覺行 調伏六根 六情淸淨 長時不捨 名爲六時行道 塔者身心也 常令覺慧 巡 身心 念念不停 名爲 塔 過去諸聖 曾行此道 得涅槃 世人 不會斯理 何名行道 鈍根之輩 不曾內行 唯報外求 요世間塔 日夜走驟 徒自疲勞 而於眞性 一無利益 甚可憐愍
또 여섯 차례 도를 행한다는 것은 육근(六根)안에서 항상 불도를 행한다는 뜻이다. 온갖 각행을 닦아 육근을 조복시키고 육정(六情:육근)의 청정함을 오랜동안 버리지 않는 것, 이를 육시행도라 한다. 탑이란 몸과 마음의 상징이니 밝은 지혜로 몸과 마음을 돌며 생각 생각이 끊이지 않는 것을 탑돌이라 한다. 과거 성현들도 이 도를 행하여 열반을 얻었는데 세상사람이 이런 이치를 모르니 어찌 행도 한다 하겠는가. 근기가 둔한 사람을 보면 안으로 닦지 않고 밖으로 과보만 구하면서 밤낮 분주하게 세간의 탑을 돈다. 이는 피로하기만 하고 진성(眞性)에는 아무 이익이 없으니 참으로 가여운 일이다.
23. 재계(齋戒)
又持齋 齋者 齊也 所謂勤治身心 不令散亂 持者 護也 所謂於諸戒行 如法護持 必須禁六情而制三毒 勤修覺察 淸淨身心 了如是義者 可名爲齋
또 지재(持齋)의 재(齋)란 가지런하게 한다는 뜻이다. 즉 몸과 마음을 부지런히 닦아서 산란하지 않게 하는 것이고, 지(持)는 보호한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모든 계행을 법답게 지켜 보호하되 반드시 육정(六情)을 금하고 삼독을 끊으며, 깨닫고 살피는 수행을 부지런히 하여 몸과 마음이 청정해지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뜻을 알아야 재계(齋戒)를 지킨다 할 수 있다.
24. 재식(齋食)
又齋食者 食有五種 一者 法喜食 依如來正法 歡喜奉行 二者 禪悅食 內外澄寂 身心悅樂 三者 念食 常念諸佛 心口相應 四者 願食 行住坐臥 常行善願 五者 解脫食 心常淸淨 不染世塵 名爲齋食 若復有人 不食如是五種淨食 自言持齋 無有是處
또 공양하는데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법희식(法喜食)이니 여래의 바른 법에 의지하여 기쁘게 받들어 행하는 것이요, 둘째는 선열식(禪悅食)이니 안과 밖이 맑고 고요하여 몸과 마음이 늘 즐거운 것이요, 셋째는 염식(念食)이니 늘 부처님을 생각하되 마음과 입이 한결같음이요, 넷째는 원식(願食)이니 다니거나, 머물거나, 앉거나, 눕거나 간에 늘 바른 원을 행하는 것이요, 다섯째는 해탈식(解脫食)이니 마음이 항상 청정해서 세상 번뇌에 물들지 않음을 말한다. 이것을 재식이라 하는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이런 다섯 종류의 깨끗한 음식을 먹지 않고 재계를 지키며 보호한다 한다면 전혀 옳지 않은 말이다.
25. 단식(斷食)
又斷食者 斷無明惡業之食 迷人 不悟斯理 身心放逸 造諸惡業 貪恣欲情 不生慙愧 唯斷外食 自爲持齋 何異癡兒 見爛壞死屍 稱言有命 必無是處
또 단식(斷食)이란 무명과 악업의 음식을 끊는 것을 말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이런 이치를 모르고 몸과 마음을 멋대로 행동하여 악업을 짓고 방자하게 욕정에 이끌려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면서 단지 입으로 먹는 음식만을 끊고는 재계를 지키고 보호한다하니, 이는 어리석은 아이가 썩은 시신을 보고 산 사람이라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전혀 옳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