參
禪 曲
[Ⅱ]
많은 말씀[數多言句] 허물이라 의심하지 말고 그 중에 정진(精進)하면 진실도(眞實道)에 깊이 들어 저절로 주착상(住着相)이 없어지고 출입(出入)없는 해탈문(解脫門)이 뚜렷이 절로 높고 거래(去來)없는 일진상(一眞相)이 완이상존(完爾常存) 현전(現前)이라.
앞선 상(相)을 주인 삼아 원각산중(圓覺山中) 깊은 골 법성사(法性寺)를 찾아들어 자기보검(自己寶劍) 빼어 들고 계성곽(戒城郭)을 높이 쌓고 육근문(六根門)을 굳게 닫고 육적(六賊) 중 한 놈이라도 자취 없이 비치거든 검봉(劍鋒)으로 타살(打殺)하고
뒷 자취를 아주 끊어 찌들지 않게 가다듬어 번뇌의 적을 모두 베이고 정사(政事)의 관(官)이 되어서 모든 정사(政事)를 잘 다스리되 선사악사(善事惡事) 양사(兩事) 중에 희노상(喜怒相)에 끄달리지 말며
귀천노소(貴賤老小) 잘 살펴서 높고 낮은 마음을 두지
말고
편애편증(偏愛偏憎) 쓰지 말며
접언담화(接言談話) 할제 다른 한담(閑談)
길게 하지 말며
의복음식(衣服飮食) 양사(兩事)에 원한과 친함 역함과 순한 뜻을 두지 말고 훼방과 찬양, 보답의 마음을 일으키지 말며
만물성색(萬物聲色)이 화창하여도 목조석호(木鳥石虎)가
꽃을 본 듯하고
고요한 산야에 앉아서 망상분별(妄想分別) 하지 말고
대중(大衆) 속에 있어도
타(他) 시비(是非) 하지 말고
가난과 병든 걸인이 와서 구걸하거든 정성을 다하여
구제하며
어느 곳에 살든 가끔 선지식을 찾아 아는 일도 다시 물으며
고요함이[一定心] 주인되어 동정이변(動靜二邊)에 자성이 드러나면
무형무상(無形無相)이 본래청정(本來淸淨)하여 공유이상(空有二相) 쌍망(雙亡)하면 뚜렷하게 제상(諸相)이 없어 보이여도 알길 없고
훌쩍 널리 머무름[可住] 없어 알지라도 보이지 않고
있는 듯 없는 듯 천지가 분명하여, 내외중간(內外中間) 차려지면 형상 (形相)은 오간데
없고, 종고(鍾鼓)소리 들리오나 소리형상 보이지 않네.
그러므로 말할 길이 끊어지고, 심행처(心行處)가 없다하네.
이 경계(境界)를 당(當)하여 끝 코를 못 잡으면 무기공(無記空)에 떨어진다.
체동태허(體同太虛) 본적(本寂)하니 다른 의견 내지 말고
이 뭣꼬[是甚마]를 방편(方便)삼아 이리 저리 깨달으면
백천(百千)가지 방편(方便)과 억만 가닥의 말이 여기서는 쓸데없네.
어묵동정(語默動靜) 이변상(二邊上)에 한 발짝도 양보 없이 밝히고 밝혀 알아 깨닫기를[惺惺不昧 擧覺] 이것이 무슨 도리인고.
듣는 것을 또 들으면, 가고 옴도 없으며[無去無來] 머무름도 없는지라[亦無住] 가지려 해도 아니 되고 버리려 해도 아니 된다.[取也不得 捨也不得]
눈앞에 나타나 훤하지만[當處現前 昭昭] 몸 안에도 몸밖에도 있지 아니하여[不在身內 不在身外] 넓은 허공에 맑은 바람[廓落太虛 起淸風]이 일 것이요.
상이 있거나 상이 없거나[有相那 無相那]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에 념념불매(念念不昧) 시심마(是甚마)요.
행야좌야(行也坐也) 동운(同運)하며, 가거나 오거나 잊지 아니하고, 앞생각 뒷생각 모두 끊으며 일념현전(一念現前) 원명도리(圓明道理) 중생제불(衆生諸佛) 증감(增減)없네.
천겁(千劫)을 지나가도 옛 없고 만세(萬世)를 뻗치어도 길은 지금이라.
이 말이 옳으니 자신에게 있는 보물 나는 알고 쓰거니와 남들도 아는지 참으로 모르거든 어묵(語默) 중에 찾아내어 나와 함께 동행하세.
이 보배를 얻은 뒤는 수많은 칠보(七寶)를 부러워하며 황금의 보배 탑이 귀할 손가.
칠보(七寶)와 황금은 쓰다보면 다할 때가 있다지만 자기 몸으로 증득한 이 보물은 아무리 쓴들 다할 손가.
하하하(呵呵呵) 이 아니 기쁘고 즐겁지 아니한가.
낙(樂)과 불락(不樂)이 둘 아니니 이 무슨 묘(妙)한 도리(道理)일까 증명 못할 일이랑[未證事] 말도 마소.
격외장부(格外丈夫) 선군자(善君子)는 내 말 좀 들어보소.
이 같은 도[如是道]에 재미[滋味] 들여 조급한 마음[速效心]을 내지 말며, 게으른 마음[懶怠想]도 쓰지 말고 슬금슬금 가다듬어 밤새도록 가다보면 해 돋을 때 아니 볼까.
금시대각(今時大覺) 못 일구어도 성인의 지혜 씨앗[聖智種子]을 얻었으니 비록 지금은 범부(凡夫)이나 항상 즐겁게 여기면 성지(聖地)에 올랐어도 많은 중생구제[普濟群品] 하는구나.
삼세제불(三世諸佛)이 이것으로 지혜를 발하고[依此發慧]
성문(聲聞) 연각(緣覺)들도 이에 의지하여 복[依此作福]을 지으며
또한 천하(天下)의 노화상(老和尙)도 이로 인해 보(報)를 받네.
자기보물을 잘 알고 쓰면 고(苦) 중에도 낙(樂)이 있고 자기보물을 잘 모르면 고락(苦樂)이 일반이라.
이러하므로 중생제불(衆生諸佛)이 공평하다[一理齊平]하니 이(理)의 평(平)함은 옳거니와 고락(苦樂)은 불평(不平)하니 이 무슨 도리(道理)인고.
유지장부(有智丈夫)는 잘 살피시오, 철우(鐵牛)가 우는 소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