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방편품(方便品)

 
2. 방편품(方便品)

그때 당시 비야리성에 유마힐이라는 한 장자가 있었다. 그는 전생에 깊은 선근(善根)을 심어 모든 법에 생멸(生滅)이 없는 이치를 깨닫고 높은 지혜로 행간에 막힘이 없었다. 또 중생들을 구제하려는 원력을 세워 중생들의 마음을 밝게 하고 바르게 인도하였다. 부처님과 같은 위의(威儀)로 마음이 바다처럼 넓어 많은 사람들이 한결같이 존경하였다. 그는 또 많은 재물을 베풀어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고, 능히 계를 깨끗하게 지킴으로서 계를 범하는 많은 사람들을 구하며, 마음을 가누어 인내함으로서 사람들의 분노를 가라앉히고, 마음을 다하여 노력함으로서 게으른 사람들을 이끌며, 마음을 통일하여 선정(禪定)에 들어감으로서 마음이 혼란한 사람들을 이끌고, 수승한 지혜로 어리석은 중생들의 어두운 마음을 빛나게 하였다.

재가자(在家者)로서 세간사(世間事)에 집착하지 않고, 처자를 두고 있으면서도 속세의 사랑[愛]에 빠지지 않고, 신분에 걸맞게 좋은 옷을 입어도 인품을 잃지 않고, 어떠한 음식을 취하더라도 마음은 항상 깊은 법(法)의 맛을 음미하였다. 그는 또 세간의 교분 때문에 유희장에 출입하지만 도리어 남을 인도하고, 온갖 이교의 가르침을 듣지만 그것 때문에 바른 믿음을 파괴하는 법이 없고, 세간의 이론에 밝으면서도 불법(佛法)닦기를 즐기고, 정치와 법률에 통하여 모든 관계하는 사람들을 편안케 하고, 학사(學舍)에 들어서는 젊은 사람들에게 바른 법을 가르치고, 창녀의 집이나 주점에 들어가서는 육욕(肉慾)을 부리지 말고 올바르게 살 것을 가르쳤다. 또 장자들이나 장사에 관계하는 사람들과 사귐에 있어서는 재산보다도 법과 선행의 존귀함을 가르치고, 권세를 믿는 왕자에게는 인욕(忍辱)의 마음을, 교만하기 쉬운 승려나 구도자에게는 아만(我慢)을 버릴 것을, 범부에게는 눈앞의 이익보다도 참된 덕을 쌓는 것이 진실한 삶이라고 가르쳤다.

이와 같이 시대의 큰 스승으로 존경을 받던 유마거사가 어느날 병상에 누웠다. 나라 안의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날마다 유마거사의 병상을 찾아 문병을 하였는데 그는 이것을 좋은 인연으로 삼아 문병 온 사람들에게 설법하였다.
'여러분, 이 몸은 무상한 것이어서 제아무리 건강한 몸이라도 끝내는 쇠합니다. 우리 몸에는 갖가지 병이 생기지만 현명한 사람은 결코 병마에 끄달리지 않습니다. 몸은 물방울과 같아 잡을 수 없고, 물거품처럼 사라지며, 애욕의 갈증이 아지랑이처럼 생기고, 파초와 같이 연약하고, 꿈이나 환상과도 같고, 그림자와도 같고, 메아리처럼 갖가지 인연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뜬구름처럼 변하기 쉽고, 번개처럼 한순간도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또 이 몸은 공(空)하여 대지에 원래 임자가 없는 것과 같이, 불꽃에 주체가 없는 것과 같이, 바람이 홀연히 사라져 버리는 것처럼, 확고한 수명이라는 것이 없고, 물이 그릇에 따라 모양을 바꾸는 것과 같이 정해진 인격이라는 것도 없습니다. 갖가지 물이 모여서 대해를 이루지만 거기에 중심이 되는 것은 없습니다. 또 이 몸은 부정(不定)한 것으로 지극 정성으로 거두어 먹이고 입히고 보살펴도 끝내는 병들고 늙어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이치를 알고 몸에 집착해서는 안됩니다. 부처의 몸을 얻는데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아야 합니다. 부처의 몸[法身]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실한 모습 그 자체로, 진실(眞實)과 선행(善行), 지혜(智慧)에서 생겨납니다. 여러분이 부처의 몸을 얻어 모든 중생의 병을 없애려고 한다면 마땅히 참된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걸어야 합니다.' 유마거사는 이와 같이 병상에 있으면서도 많은 사람들을 불도(佛道)로 인도하는데 마다하지 않았다.

3. 제자품(弟子品)

그때 유마거사는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나는 지금 병상에 누워있다. 세존께서 이 사실을 안다면 많은 제자들 중에 위문할 사람을 보낼 것이라고 생각하자 세존은 유마거사의 마음을 헤아리고 사리불에게 이르기를 그대는 유마거사를 찾아가 병 문안을 하라.
사리불은 "세존이시여, 저는 유마거사를 문병할 자격이 없습니다. 언젠가 제가 숲 속에서 좌선하고 있는데 유마거사가 그곳에 나타나 사리불이여, 앉아 있는 것만이 좌선(坐禪)은 아닙니다. 몸이라든가 뜻이라든가 겉모습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 바로 참된 좌선입니다. 좌선은 생사가 겹쳐있는 세계[三界]에 상(相)을 드러내지 않는 것입니다. 또 마음과 그 마음의 작용을 없앤 무심한 경지[寂滅]에서 나오지 아니하고서도 온갖 위의(威儀)를 나타내는 것, 이것을 좌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진리의 법을 버리지 않으면서 세속의 일상생활을 하는 것이 올바른 좌선이며, 고요한 마음도 탐닉하지 않고 밖을 향하여도 혼란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른 좌선입니다. 온갖 소견에도 움직이지 않고 그러면서도 37조도품을 닦는 것을 좌선이라고 합니다. 또한 번뇌를 끊지 않고 열반(涅槃)에 드는 것이 참된 좌선입니다. 이러한 좌선이야말로 세존께서 인정하고 증명한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에 대해 답을 할 수가 없어서 침묵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까닭에 저는 유마거사를 문병할 수 없습니다."

세존은 다음에 목건련에게 말씀하시자 그도 "세존이시여, 저도 유마거사를 문병할 자격이 없습니다. 언젠가 제가 비야리 마을의 많은 사람들 앞에서 법(法)을 설하고 있었는데 유마거사가 다가와 말씀하기를 '목건련이여, 법을 설하려거든 마땅히 법대로 설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법에는 중생이 없습니다. 법은 중생의 때[垢]를 떠났으며, 법에 자아의 존재[有我]가 없는 것은 아(我)의 때[垢]를 떠났기 때문이며, 법에 수명(壽命)이 없는 것은 생사를 떠났기 때문이며, 법에 개인[人]이 없는 것은 과거의 생과 미래의 생이 끊어졌기 때문인 것입니다.
법이 항상 적연(寂然)한 것은 모든 모습[相]을 없애기 때문이며, 법이 모습을 떠난 것은 인식의 대상[所緣]이 없기 때문이며, 법에 이름이 없는 것은 언어가 끊어졌기 때문이며, 법에 말[說]이 없는 것은 크고 작은 생각을 떠났기 때문이며, 법에 모양이 없는 것은 허공과 같기 때문이며, 법에 부질없는 말이 없는 것은 필경공(畢竟空)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또 그것은 개체로서의 자아에 속한 것[我所]과 관계가 없으므로 그러한 것은 없으며, 법에 분별이 없는 것은 식별하는 작용이 없기 때문이며, 법에는 상대하는 것이 없으므로 비교되는 것이 없으며, 간접적인 원인[緣]과는 관계하지 않으므로 직접적인 원인[因]에도 속하지 않으며, 모든 존재에 골고루 나타나 있으므로 사물의 진실한 본성[法性]과 같으며, 그것 스스로가 타자(他者)에 의하여 종속되는 것이 아니므로 사물의 진실[眞如]에 따르는 법이 어떠한 환경[邊際]에도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궁극적인 진실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또 법이 동요하지 않는 것은 여섯 가지 대상[六塵]에 의하여 생긴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법에 오고 감이 없는 것은 그것이 시간[常]속에 머물러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법은 공을 따르고 차별을 떠났으며, 바라고 구하는 생각이 없습니다. 법은 아름다움과 더러움을 떠났으며, 법은 더하거나 덜함이 없으며, 법은 생멸(生滅)이 없으며, 법은 돌아가는 바도 없습니다. 법은 눈·코·혀·몸·마음을 여의었고, 법에는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법은 상주하여 움직이지 않으며, 법은 일체의 분별하는 관찰과 소행에서 떠났습니다.
목건련이여, 진여(眞如)의 법은 평등한 것입니다. 그러니 법을 설하는 사람에게도 설했다는 분별이 없고, 듣는 자로서도 들었다고 하는 분별이 없어야 합니다. 비유컨대 마술사가 그 조작하는 인형을 향해 얘기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마땅히 이 뜻을 체득하고 법을 설함이 좋습니다. 중생들의 근기에는 날카롭고 무딘 차이가 있음을 알고, 지견(知見)이 어떠한 것에도 걸림이 없어야 하고, 능히 구애되는 바 없이 대자대비심으로 법을 설하고,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하고 삼보에 귀의하는 의례를 한 자에게 법을 설하여야 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유마거사가 이와 같이 설하자 그곳에 모였던 8백명의 사람들이 불도를 구하는 마음을 일으켰습니다. 저에게는 이러한 말재주가 없으므로 유마거사를 문병할 수 없습니다."

다음으로 가섭(迦葉)에게 말씀하시자 가섭도 유마거사를 문병할 수 없다고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제가 언젠가 가난한 마을에서 탁발을 하고 있을 때 유마거사가 다가와 대가섭이여, 그대는 자비심을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미치게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탁발을 하면서 부유한 사람들에게는 가지 않고 가난한 집에서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탁발은 순서대로 평등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을에 들어가거든 마을 전체를 공(空)으로 보고, 어떤 물건을 보더라도 집착하지 말고, 소리는 메아리를 듣는 듯 하고, 느껴지는 모든 것에서 깨우침의 지혜를 얻어야겠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한끼의 밥을 얻음으로서 모든 중생에게 도(道)의 마음을 베풀고, 또 탁발한 음식을 부처님과 성자에게 먼저 바친 뒤에 먹어야 합니다. 이 모든 행을 할 때 세간에 머물고 싶은 집착도 없고 그렇다고 열반에 머물고 미망의 세계를 피한다는 생각이 있어서도 안됩니다. 가섭이여, 혹 보시하는 사람에게 복의 대소(大小) 차별을 두지 말아야 하며, 손익을 계산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자신의 깨달음만을 생각하는 성문(聲聞)의 길에 의지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참된 불도(佛道)인 것입니다. 만약 이와 같이 탁발한다면 남이 베풀어 준 것을 헛되게 하지 않은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때 이와 같이 설하는 말을 듣고 큰 깨우침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보살들을 공경하는 마음을 일으켰습니다. 또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속가의 사람도 변재와 지혜가 이와 같구나. 그 누가 이를 듣고서 부처님의 깨달음과 같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랴? 저는 그후 다시는 사람들에게 자기의 깨달음만을 위해 닦는 성문과, 자기 혼자서 깨달음의 기쁨에 젖는 벽지불(벽支佛)의 수행을 권하지 않았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 말을 듣고 놀라면서도 기뻐했으며 그에게 깊은 공경심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제가 유마거사를 문병하는 것은 적당하지 않습니다."

세존이 수보리에게 분부하시자 그도 사양하며 말씀드리기를,
"세존이시여, 언젠가 제가 유마거사의 집에 가서 탁발을 하였는데 유마거사가 제 바릿대를 받아 밥을 담으면서 말하기를 '수보리여, 만약 모든 법이 평등하다는 것을 안다면 이 밥을 받아도 좋습니다. 만약 번뇌를 끊지 않고 번뇌에 따른 어리석음과 탐욕을 버리지 않고서도 탐심으로부터 해방되는 지혜를 얻고, 차별이 있는 법의 모양에 집착하지 않겠다면 이 밥을 받아도 좋습니다. 수보리여, 사람들이 만약 차별이 있는 견해를 갖고 있는 그대에게 보시를 하는 것이라면 복을 얻기는커녕 도리어 보시한 자가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질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 말을 듣고 망연한 가운데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를 몰라 그대로 그 집을 나오려고 하는데 '수보리여, 이 바릿대를 받아 가십시오. 그렇게까지 두려워할 것은 없습니다. 만약 부처님이 화신(化身)의 몸을 나타내어 이와 같이 그대를 힐책한다면 그대는 그래도 두려워할 것입니까'라고 하여 제가 '아니오'하고 대답하자 '모든 존재[法]는 환상과 같습니다.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말에 구애되지 않으므로 조금도 두려워 할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말이란 물질의 성질과는 별개이며 말이 없는 곳에 해탈이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세존은 부루나에게 말씀하시자 그도 사양하며,
"저 역시 유마거사를 문병할 수 없습니다. 언젠가 제가 숲속에서 새로 출가한 사람들에게 법을 설하고 있는데 유마거사가 와서 '부루나여, 마땅히 먼저 선정에 들어 이들의 마음을 관(觀)한 뒤에 법을 설함이 좋습니다. 더러운 음식물을 보배의 그릇에 담아서는 안됩니다.
그대가 중생의 마음을 보지 않고 얕은 가르침을 설하는 것은 상처 없는 자를 상하게 하고, 대해(大海)를 소의 발자국 속에 넣으려 하고, 햇빛을 반딧불과 같이 보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부루나여, 이 사람들은 일찍이 대승의 마음을 일으켰지만 중간에 그 뜻을 잊었습니다. 그대와 같은 소승(小乘)의 가르침으로는 이 사람들의 근기(根氣)를 헤아리지 못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 선정에 들어가 이 제자들로 하여금 대승을 구했던 원래의 마음을 알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설법하였습니다. 그들은 유마거사에게 절하고 그 가르침을 들어 참된 깨달음에서 물러서지 않게끔 되었습니다. 이때 저는 중생의 근기를 보지 않고서는 법을 설할 수가 없다고 깊이 생각했습니다. 제가 유마거사를 문병할 수 없다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세존께서 다음은 가전연에게 말씀하시자 "저 역시 유마거사를 문병할 수 없습니다. 언젠가 세존께서 불법(佛法)의 요긴한 뜻을 설하신 뒤에 제가 다시 부연하여 무상(無常), 고(苦), 공(空), 무아(無我), 적멸(寂滅)의 뜻이라고 말한바 있습니다. 그때 유마거사가 와서 말하기를 '가전연이여, 변화하는 마음[生滅]으로 실상의 법을 설해서는 안됩니다. 말하건대 모든 사물은 필경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 것으로 이것이 무상의 뜻인 것입니다. 갖가지 감각이 일어나지만 필경은 실(實)이 없는 것으로 고락이 일어나는 일이 없습니다. 이와 같이 알아야만 괴로움의 뜻을 아는 것이고, 마침내 모든 법은 내 것으로 삼을 수 없다는 것이 공(空)의 뜻임을 알게 됩니다. 아(我)와 무아(無我)가 둘이 아니라는 것이 무아의 뜻이며, 법은 원래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 것이므로 따라서 멸함이 없는 것이 적멸(寂滅)의 뜻입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설하였을 때 제자들은 마음의 해탈을 얻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저는 유마거사를 문병할 수가 없습니다."

세존이 다시 아나율에게 말씀하시자 그는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저도 그 책임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언젠가 제가 동산을 산책하고 있었는데, 그때 엄정(嚴淨)이라고 하는 대범천이 일만을 헤아리는 범천의 일족과 함께 제가 있는 곳으로 찾아와서 천안(天眼)의 능력에 대해서 물어 저는 손에 들고 있던 암마라 열매를 가리키면서 '삼천대천세계를 이 열매처럼 볼 수 있습니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유마거사가 나타나 '아나율이여, 천안이라고 하는 것은 눈으로 보는 것이 인연으로 해서 생긴 물체의 모습[作相]입니까 아닙니까. 만약 인연으로 해서 생긴 물체의 모습일 것 같으면, 외도의 신통력과 같은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모습이 아니라면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인연에 의하여 생긴 것이 아닌 존재[無爲]이며, 본다고 하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고 말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이때 저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어 잠자코 있었습니다. 범천계의 일족들은 이 말을 듣고 전에 없던 밝은 마음이 되어 유마거사께 절하고 '세간에 누가 참된 천안을 갖고 있습니까' 하자 거사가 대답하였습니다. '부처님이신 세존만이 참다운 천안의 눈을 지니고 계십니다.
항상 마음은 조용한 관조의 세계에 젖어 있고, 모든 부처의 나라를 빈틈없이 상대적인 관념[二相]을 거둔 눈으로 보십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대범천과 그 일족 가운데 5백인의 범천이 최고의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유마거사의 발에 예배한 다음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해서 저는 유마거사를 문병 할 수 없습니다."

세존은 다음 우바리에게 명하시자 그도 사양하며,
"세존이시여, 저 역시 유마거사를 위문할 수 없나이다. 그 까닭은 옛적에 두 비구가 계율을 범하고는 부끄러워서 부처님께는 묻지 못하고 저에게 와서 묻기를, '여보시오 우바리여, 우리가 계율을 범하였는데 부끄러워서 부처님에게 여쭐 수가 없으니 바라건대 우리의 의혹과 뉘우침을 풀어주어 허물을 면하게 하여 주시요'. 하기에 제가 그들을 위하여 법대로 말하여 주었더니 마침 유마거사가 와서 말씀하시기를 '여보시오 우바리여, 이 비구들의 죄를 더 보태게 하지 마시오. 바로 죄를 없애줄지언정 그 마음을 요란스럽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죄라는 성질이 안에 있는 것도 아니며 밖에 있는 것도 아니며 중간에 있는 것도 아니외다. 부처님의 말씀과 같이 마음에 때가 끼이므로 중생이 때 끼인 것이요, 마음이 깨끗하므로 중생이 깨끗하거니와 마음이란 것은 안에 있는 것도 아니고 밖에 있는 것도 아니며 중간에 있는 것도 아닌 것처럼 죄도 그러하고 모든 법도 그러하여 진여(眞如)의 바탕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우바리여 그대가 마음의 본래 모습을 관찰하여 해탈을 얻었을 적에 번뇌의 때가 있었습니까' 하기에 제가 '그렇지 않다'고 하였더니 유마거사께서 이르기를, '모든 중생들이 마음에 때가 없는 것도 그러한 것입니다. 우바리여, 망상이 곧 때[垢]이고 망상 없는 것이 깨끗한 것이며, 제정신을 바로 갖지 못한 것이 때이고, 나[我]에 집착하지 않으면 깨끗한 것입니다. 우바리여, 모든 법이 났다, 없어졌다 하여 잠깐도 머물지 않는 것이 요술과 같고 번개와 같으며 모든 법이 모두 허망하게 보는 것이어서 마치 꿈과 거울 속에 나타나는 형상과 같아서 다 허망한 생각으로 생기는 것이니 이런 줄을 아는 이는 계율을 잘 지니는 것이며, 이런 줄을 아는 자가 바로 아는 자입니다.'라고 하였나이다. 그 때에 두 비구가 말하기를, '훌륭하고 지혜로운 이여! 우바리로서는 미칠 수 없는 일이며 계율 지니는 이 가운데 으뜸 가는 이로서도 능히 말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라고 하기에 제가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여래 외 어느 성문이나 보살들도 이 변재를 따를 수 없으며 그 지혜의 밝은 것도 그러하다'고 하였더니 두 비구가 즉시에 의심과 뉘우침이 없어지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고 원을 세워 말하기를, '모든 중생이 모두 이러한 변재를 얻을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그에게 병 문안을 할 수 없나이다."라고 하였다.

세존이 다시 라훌라에게 명하시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 사람에게 가서 병을 위문할 수 없나이다. 그 까닭은 옛적에 비야리성에 있는 여러 장자의 아들들이 저에게 와서 예배하고 말하기를, '여보시오, 라훌라여, 당신은 부처님의 아들로서 전륜왕의 지위를 버리고 출가하여 도를 닦았으니 출가하는 것이 무슨 이익이 있나이까? 하기에 제가 법과 같이 출가한 공덕을 말하였더니 그 때에 유마거사가 나타나 라훌라여! 출가(出家)의 공덕과 이익을 그렇게 말하면 안됩니다. 아무런 이익도 공덕도 없는 것이 바로 출가입니다. 이 세상의 법은 이익이 있다거나 공덕이 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인데 하물며 출가는 생멸(生滅)의 변화[有爲]를 떠난 절대적인 깨달음[無爲法]을 구하는 것으로서 그 안에는 이익이라든가 공덕이라고 하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라훌라여, 출가에는 깨달음[彼]도 미혹[此]도 없고 또한 중간도 없으며, 예순 두가지 그릇된 사고방식[六十二見]을 멀리하고 열반과 일체가 되는 것으로서 지자(智者)도 이를 기리며, 성인(聖人)도 닦는 길인 것입니다. 또 그것은 모든 마군을 항복시켜 미혹의 세계[五道]를 초월하고 다섯 가지 눈[五眼]을 밝히고, 다섯 가지 뛰어난 능력을 가져오는 것[五根]을 정비하여 그 힘[五力]을 얻으므로 사람의 마음을 괴롭히지 않습니다. 온갖 잡다한 악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고, 외도를 굴복시키고 거짓된 이름에 집착하지 않으며, 욕망의 늪을 나와 이에 집착하지 않으며, 실체로서의 자아[我]에 속하는 것을 모두 버리고 집착하지 않으며, 마음은 혼란하지 않고, 안으로 잔잔한 기쁨을 안고 중생의 마음을 지키며, 마음은 조용히 무심한 경계를 따라 온갖 과오를 떠나는, 그것이 가능하면 이는 참다운 출가인 것입니다.'
또, 유마거사께서 여러 장자의 아들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은 정법이 함께 할 때 출가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 할 때를 만나기 어렵기 때문이니라. 그러자 장자의 아들들이 말하기를, 부처님 말씀에 부모가 허락하지 않으면 출가할 수 없다 하지 않았습니까. 유마거사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렇다. 너희들이 지금 이곳에서 최고의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을 일으킨다고 하면 그것이 곧 출가인 것이며, 그것이 곧 구족계를 받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렇게 말할 적에 장자의 아들 32명이 모두 최고의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을 발하였으므로 저는 유마거사를 위문 할 수 없나이다."

세존이 다시 아난에게 명하시었다.
"세존이시여, 저 역시 그 책임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그 까닭은 옛적에 세존께서 병환이 계시어 우유를 써야 할 것 같아 바라문의 집에서 탁발을 하려고 문 앞에 서 있었더니 그 때 유마거사가 와서 내게 말씀하시기를, 여보시오, 아난이여. 어찌하여 이 이른 새벽에 바루를 들고 여기 있나이까? 하시기에 저는 세존께서 병 기운이 있어 우유가 필요하여 여기 와 있노라고 대답하였더니 유마거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난이여. 그런 말을 하지 마시오. 여래의 몸은 금강과 같아 모든 나쁜 생각과 행동은 이미 끊어졌고 여러 가지 선한 일만 모였거늘 무슨 병이 있을 수 있으며, 무슨 괴로움이 있으리요, 아난이여, 이것은 여래를 비방하는 짓과 같으니 잠자코 돌아가시오. 다른 사람이 이런 추한 말을 듣지 않게 할 것이며, 하늘 사람들이나 다른 정토에서 온 보살들이 이런 말을 듣게 하지 마시오. 아난이여, 전륜성왕은 부처님 보다 적은 복력을 가지고도 오히려 병이 없는데 어찌 여래의 한량없는 복력과 많은 공덕에 병이라니요. 아난이여, 여래로 하여금 수치를 받게 하지 마시오. 외도와 바라문들이 이 말을 들으면 생각하기를 소위 스승이라고 하면서 제 병도 고치지 못하면서 어떻게 남의 병을 고치리요. 할 것이니 어서 가서 다른 사람으로 알지 못하게 하시오. 그리고 아난이여, 여래의 몸은 법의 몸이시고 애정과 탐욕으로 된 것이 아니며 여래는 이 세상에 가장 높은 이어서 삼계(三界)를 뛰어 넘었으며, 생사에 빠지지 아니 하고, 모든 번뇌가 이미 없어졌으며, 나고 죽음에 떨어지지 아니 한데 그러한 몸으로 무슨 병이 있겠오.'라고 하더이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 때에 부끄러운 마음이 생겨서 속으로 생각하기를 부처님을 가까이 모시는 내가 잘못 듣지나 않았는가 하고 의심하였더니 공중에서 소리가 있어 '아난이여, 모든 것이 유마거사의 말과 같다. 그렇지만 부처님이 오탁악세(五濁惡世)에 나셨으므로 이런 일을 나타내어 중생을 구제하려는 방편이니 부끄러워 말고 어서 우유를 가지고 돌아가시오.'하더이다. 세존이시여, 유마거사의 변재와 지혜가 이와 같으므로 저는 그를 위문할 수 없나이다." 그 외 5백의 제자들도 각각 그 이유를 밝혀 유마거사에게 문병 가는 것을 사양하였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