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
보살품(菩薩品)
4. 보살품(菩薩品)
세존은 미륵보살에게 유마거사를 문병하도록 말씀하시자 미륵보살은 "세존이시여, 저 역시 그곳에 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도솔천 왕과 그 권속들에게 다시 물러서지 않는 지위에서 행할 일을 설할 때에 유마거사가 와서 말씀하시기를, 미륵이여, 세존께서 당신에게 수기하기를 이 생(生)을 마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어느 생으로 수기를 받았나이까? 과거 생인가? 미래 생인가? 현재 생인가? 만일 과거 생이라면 과거 생은 이미 지나갔고, 미래 생이라면 미래 생은 아직 오지 않았고, 현재 생이라면 현생은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만일 생이 없는 것으로 수기를 얻었다면 생이 없는 그것은 바로 부처님의 바른 지위이니 바른 지위에는 수기를 받을 것도 없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도 없거늘 미륵이 어떻게 다음 한 생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았나이까?
진여(眞如)가 나는 것으로 수기를 받았는가? 진여가 없어지는 것으로 수기를 받았는가? 만일 진여가 나는 것으로 수기를 받았다면 진여는 나는 것이 아니요 진여가 없어지는 것으로 수기를 받았다면 진여는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일체중생이 모두 진여이며 일체법이 또한 진여이며 모든 성현도 진여이며 미륵까지도 또한 진여이니 만일 미륵이 수기를 받았다면 일체중생도 수기를 받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여라는 것은 둘이 아니며 다르지도 아니하기 때문에 만일 미륵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면 일체중생도 또한 얻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일체중생이 곧 보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또, 만일 미륵이 열반을 얻었다면 일체중생도 열반을 얻을 것입니다. 그 까닭은 여러 부처님께서 모든 중생이 적멸(寂滅)한 것이 곧 열반(涅槃)이기 때문에 다시 열반에 들것이 없는 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미륵이여, 그러한 법문으로 여러 범천[神]들을 현혹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말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얻을 범천도 없고 또한 물러갈 범천도 없습니다.
미륵이여, 마땅히 이 범천들로 하여금 보리라고 분별하는 소견을 버리게 할지니, 왜냐하면 보리[菩提]라는 것은 몸으로 얻을 수도 없고, 마음으로 얻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적멸(寂滅)한 것이 보리이며 보리는 모든 형상을 여의었기 때문입니다. 관(觀)하지 않는 것[不觀]이 보리니 모든 반연을 여읜 때문이며, 행하지 않는 것[不行]이 보리니 기억하는 생각이 없기 때문이며, 끊는 것[斷]이 보리니 모든 소견을 버린 때문이며, 여의는 것[離]이 보리니 모든 허망한 생각을 여읜 때문이며, 막는 것[障]이 보리니 모든 소원을 막은 때문이며, 받아들이지 않는 것[不入]이 보리니 탐착이 없기 때문이며, 따르는 것[順]이 보리니 진여(眞如)에 따르기 때문이며, 머무는 것[住]이 보리니 법의 자성에 머물기 때문이며, 이르는 것[至]이 보리니 진실한 자리에 이르기 때문이며, 둘이 아닌 것[不二]이 보리니 주관적 의식과 객관인 법진을 여읜 때문이며, 평등한 것[等]이 보리니 허공과 같기 때문이며, 하염없는 것[無爲]이 보리니 머물고 멸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며, 아는 것[知]이 보리니 중생들의 마음과 행을 알기 때문이며, 모이지 않는 것[不會]이 보리니 여러 가지 받아들이는 것이 모이지 않기 때문이며, 합하지 않는 것[不合]이 보리니 번뇌 습기를 여읜 때문이며, 처소가 없는 것[無處]이 보리니 형상과 빛깔이 없기 때문이며, 거짓 이름[假名]이 보리니 그 이름이 공(空)하기 때문이며, 요술과 같은 것[如化]이 보리니 취하고 버릴 것이 없기 때문이며, 산란치 않는 것[無亂]이 보리니 항상 고요하기 때문이며, 고요한 것[善寂]이 보리니 자성이 청정하기 때문이며, 취할 것 없는 것[無取]이 보리니 반연(絆緣)을 여읜 때문이며, 다르지 않은 것[無異]이 보리니 모든 법이 평등한 때문이며, 견줄 데 없는 것[無比]이 보리니 비유할 것이 없기 때문이며, 미묘한 것[微妙]이 보리니 모든 법을 알기 어려운 때문입니다.
깨달음은 허공과 같은 성질이기에 모든 장소에 빈틈없이 존재합니다. 몸으로나 마음으로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몸은 풀이나 나무, 석벽, 길, 그림자와 같은 것이며, 마음은 비물질적인 것, 들에 나지 않는 것, 의지하는 곳이 없는 것, 표상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유마거사가 이런 법문을 할 적에 이백의 범천들이 모두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나이다. 그러므로 저는 유마거사를 문병 할 수 없나이다."
세존은 다시 광엄(光嚴)동자에게 명하자 그도, "세존이시여, 저도 유마거사를 위문할 수 없나이다. 그 까닭은 옛적에 제가 비야리성을 나설 때 마침 유마거사가 성(城)으로 들어오기에 저는 인사를 하고 물었습니다. 거사님, 어디로부터 오나이까? 그는 도량으로부터 오노라고 대답하기에 저는 또 묻기를, 도량이란 어느 곳입니까? 하였더니 그는 대답하기를, 곧은 마음[直心]이 도량이니 거짓이 없는 까닭이며, 행을 닦아 가는 것[發行]이 도량이니 능히 일을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며, 깊은 마음[深心]이 도량이니 공덕을 증진하기 때문이며, 보리심(菩提心)이 도량이니 잘못이 없기 때문이며, 보시(布施)가 도량이니 갚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이며, 계행[持戒]을 지니는 것이 도량이니 소원이 구족하여 지기 때문이며, 욕된 것을 참는 것[忍辱]이 도량이니 모든 중생에게 마음이 걸리지 않기 때문이며, 꾸준히 닦아 나아가는 것[精進]이 도량이니 중단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며, 선정(禪定)을 닦는 것이 도량이니 마음이 조복되고 단련되기 때문이며, 지혜(智慧)가 도량이니 모든 법을 분명하게 보기 때문이며, 사랑하는 것[慈]이 도량이니 중생을 평등하게 여기기 때문이며, 불쌍히 여기는 것[悲]이 도량이니 피로와 괴로움을 견디기 때문이며, 기뻐하는 것[喜]이 도량이니 법문을 즐거워하기 때문이며, 마음을 놓아버리는 것[捨]이 도량이니 사랑하고 미워하는 것이 끊어졌기 때문이며, 신통(神通)이 도량이니 육신통을 성취하였기 때문이며, 해탈(解脫)이 도량이니 애욕·번뇌를 등지고 놓아버렸기 때문이며, 방편(方便)이 도량이니 갖가지 방편으로 중생을 교화하기 때문이며, 네가지로 포섭하는 것[四攝]이 도량이니 중생을 잘 포섭하기 때문이며, 많이 듣는 곳[多聞]이 도량이니 들은 대로 행하기 때문이며, 마음을 조복받는 것[伏心]이 도량이니 모든 법을 바로 관찰하기 때문이며, 37조도품이 도량이니 세간법을 놓아버렸기 때문이며, 사성제(四聖諦)가 도량이니 세상을 속이지 않기 때문이며, 십이인연[緣起]이 도량이니 무명에서 노사까지가 다함이 없는 때문이며, 온갖 번뇌(煩惱)가 도량이니 번뇌가 곧 실상임을 알기 때문이며, 중생(衆生)이 도량이니 '나'라는 것이 없는 줄을 알기 때문이며, 일체법(一切法)이 도량이니 모든 법이 공(空)한 줄을 알기 때문이며, 마군[降魔]을 항복 받는 것이 도량이니 무엇에나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며, 삼계(三界)가 도량이니 따로 나갈 데가 없기 때문이며, 사자후(獅子吼)를 하는 것이 도량이니 두려울 것이 없기 때문이며, 십력(十力)·사무외(四無畏)와 십팔 불공법(不共法)이 도량이니 모든 허물을 여의기 때문이며, 삼명(三明)이 도량이니 지혜에 장애 된 것이 없기 때문이며, 한 생각[一念]에 일체법(一切法)을 아는 것이 도량이니 일체지를 성취하였기 때문이외다. 광엄이여, 보살이 바라밀로 중생을 교화하고자 하면 발을 들거나 발을 내딛는 것 모두 도량으로부터 와서 불법(佛法)에 머무는 것이외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 법문을 말할 적에 천상의 오백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유마거사를 위문할 수 없나이다."
세존은 다시 지세(持世) 보살에게 하명하였으나 그도 사양하였다. "세존이시여, 저도 그곳에 갈 수 없습니다. 언젠가 제가 방에 홀로 있는데 악마가 제석천의 모습을 하고 1만 2천의 천녀를 거느리고 북을 치고 줄[線]에 맞추어 노래 부르면서 그들과 함께 공손히 저에게 절하고서 한쪽에 선 일이 있습니다. 저는 제석천이라 생각하고 '제석이여, 잘 오셨습니다. 아무리 많은 복이 있더라도 스스로 방자해서는 안됩니다. 욕망의 무상함을 생각하여 선(善)의 근본을 구하고, 몸과 생명과 재산을 던져 다하지 않는 법과 바꿈이 좋습니다.'고 말하자 그가 말하기를 '보살이여, 모쪼록 이 천녀들을 받아들여 쓸고 닦는 따위의 일들에 부리십시오'하기에 저는 '제석이여, 출가자에게는 이러한 사람들이 필요치 않습니다'하고 말하였습니다.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마거사가 나타나 '이는 제석천이 아니라 악마가 당신을 괴롭히려고 하는 짓입니다'고 하며 다시 악마에게 '이 여자들을 나에게 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악마가 놀라면서 사라졌는데 유마거사는 천녀들에게 말하기를 '악마가 그대들을 나에게 주었다. 모두 함께 도를 구하는 마음을 일으킴이 좋다'고 하면서 각자의 근기에 따라 법을 설하고 도의 뜻을 발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대들은 이미 도의 뜻을 일으켰다. 법을 즐김이 좋다. 애욕의 즐거움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말하자 천녀가 묻기를 '법의 즐거움이란 무엇이옵니까'라고 하자 유마거사가 '법의 즐거움이란 부처님을 믿고, 법을 들으려 하고, 중생들을 공경하고 베푸는 것이다. 그리고 욕망의 즐거움을 여의고 오온(五蘊)을 육신의 도적과 같이 생각하며, 도를 수호하고, 번뇌를 끊고, 깊은 법을 들어 겁내지 않고, 나쁜 벗을 선도하고, 선한 벗과 가까이하여 마음을 청정이 하고, 한없는 법을 닦는 것이 곧 보살이 가르침을 익히는 즐거움이다'고 하였습니다.
천녀들이 유마거사의 가르침을 기뻐하고 욕망의 즐거움을
끊게 되어, 마궁(魔宮)으로 돌아가는 것을 허락하자 천녀들이 거사에게 '저희는 어떤
식으로 마궁에 머물러야 하옵니까'라고 물으니 유마거사가 말하기를 '누이들이여,
다함이 없는 등불[無盡燈]의 법을 배워야 한다.
비유컨대 한 등불로 백천의 등불을 밝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어두운 것을 밝히면
그 밝음은 다함이 없다. 이와 같이 한 보살이 백천의 중생을 교화하여 불도를 구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하듯이 한 번 일어난 도는 다함이 없는 것이다. 그대들은 비록 마궁에
있을지라도 이 다 할 줄 모르는 등불의 가르침으로써 수많은 구도자들에게 진실한
도를 구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하여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천녀들은 공손히 유마거사에게 절하고 악마를 따라 마궁에 돌아갔습니다. 세존이시여,
유마거사는 이와 같이 신력과 지혜와 힘찬 언변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그곳에 갈 수가 없습니다."
세존은 이번에는 장자의 아들인 선덕보살에게 명하시자
그가 말하기를, "세존이시여, 저도 이 사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언젠가 제가
집에서 대법회를 베풀고 7일간 여러 출가자를 비롯하여 가난한 사람, 비천한 사람,
의지할 곳 없는 사람, 거지들에게 보시를 행할 때, 마침 유마거사가 나타나 말씀하시기를
'장자의 아들이여, 이러한 재물을 베푸는 모임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진실을 설해
주는 모임을 가져야 합니다'하기에 제가 진실을 설해 주는 모임이란 무엇입니까'하고
묻자 유마거사가 대답하기를 '진실을 설해 주는 모임이라는 것은 선후가 없이 일시에
모든 중생을 공양하는 것, 이것을 진실을 설해 주는 모임이라고 한다. 그것은 중생에게
깨달음의 덕을 베풀기 위하여 즐거움을 베푸는 따뜻한 마음[慈心]을 일으키고,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괴로움을 없애는 넓은 연민의 마음[大悲心]을 일으키고, 바른 진실의
가르침을 지니기 위하여 남의 기쁨을 내 기쁨으로 하는 마음[喜心]을 일으키고, 지혜를
얻기 위하여 평등한 마음[捨心]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탐하는 마음을 거두기 위하여
보시를 하게 하고, 계율을 파괴하는 자를 가르치기 위하여 계를 지키게 하고, 자아라고
하는 것은 없다고 하는 진리를 알기 위하여 인욕을 완전하게 하며, 심신의 겉모양에
집착하지 않기 위하여 정진을 완전하게 하며, 깨달음의 경계에 이르기 위하여 선정을
완전하게 하며, 모든 것을 빠짐없이 아는 지혜[一切智]를 얻게 하기 위하여 지혜를
완전하게 하는[般若波羅密]것이다.
또 중생을 교화하면서 공을 수행하고, 인연에
의하여 생긴 것[有爲法]을 버리지 않고서도 차별을 초월한 실상을 바르게 파악하며,
이승에 생을 받아 나타나 있어도 바라고 구하는 것이 없으며, 바른 가르침을 굳게
지켜 훌륭한 방편의 힘을 발휘하며,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기 위한 네가지 방법[四攝法]에
의하여 불도에 들게 하며, 모든 사람을 존경하고 봉사하기 위하여 교만한 마음을
없애며, 몸과 생명과 재산에 있어서 다함이 없는 영원함을 얻도록 노력하며,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과 그 가르침을 신봉하는 교단과 그리고 보시와 지계와 하늘의 여섯을
마음 깊이 염[六念]하면서 더욱 바른 신념을 잊지 않고, 여섯가지 점에 있어서 서로
화합하고 존경[六和敬]하기 위하여 순직한 마음을 가지며, 착한 일을 바르게 행하기를
노력하여 청정한 생활을 하며, 악인을 증오하지 않고 오히려 마음을 다스리도록 하며,
깊은 마음으로 세간에 집착하는 마음을 물리치고, 잘 듣고 말과 같이 행하고, 고요한
곳에 있으므로 다툼이 없는 법을 음미하고, 가르침을 받는 대로 행하기 위하여 보다
많이 듣고자 하며, 부처의 지혜를 구하여 좌선하는 마음을 일으키며, 중생을 번뇌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하여 수행의 소지(素地)를 마련하고, 뛰어난 신체적 특징을 갖추어
불국토를 깨끗하게 하기 위하여 복덕을 짓는 업을 행하며, 모든 중생의 마음 속 생각을
알고 각자에게 마땅한 가르침을 설하여 지혜의 업을 일으키고, 모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이 아님을 알기 위하여 차별도 대립도 없는 평등한 가르침[一相門]에 들어
지혜의 업을 일으키고, 어떠한 번뇌·장애·불선(不善)도 모두 행하며, 모든 지혜와
공덕을 얻기 위하여 깨달음에 도움이 되는 수행의 방법을 빠짐없이 행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을 진실을 설해 주는 모임이라고 한다.
만약 보살로서 이와 같은 진실을 설해 주는 모임을 행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참으로 가장 큰 시주(施主)이며, 일체 세간의 복전(福田)인 것이다.' 세존이시여, 유마거사께서 이 법을 설할 때 2백명의 바라문은 불도를 구하는 마음을 일으켰습니다. 저도 마음이 청정해져 유마거사에게 예를 드리고 값비싼 영락을 풀어 바치자 유마거사는 이것을 받아 가지고 둘로 나눠 반을 그 회중에서 가장 천한 걸인에게 베풀고, 다른 반을 난승불(難勝彿)에게 주고 나서 말하였다. '만약 베푸는 사람이 평등심으로 천한 걸인에게 베푸는 것과 부처에 공양하는 일에 차별을 두지 않고, 그 보시에 의한 과보를 구하지 않는다면 이것을 원만한 법의 보시라고 이름한다. '그때 그 천한 걸인은 불도를 구하는 마음을 일으켰습니다. 이 때문에 저는 그곳에 갈 수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다른 보살들도 또한 여러 이유를 말하며 유마거사를 문병할 수 없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