Ⅵ

관중생품(觀衆生品)

7. 관중생품(觀衆生品)

그때 문수사리는 유마거사에게 묻기를, "보살은 이승에 생(生)을 받은 중생을 어떻게 봅니까." 그러자 유마거사께서는 "예를 들어 환술사(幻術師)가 환술로써 만들어 낸 꼭두각시를 보는 것과 같이 보살도 중생을 그렇게 봅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물에 비친 달 그림자를 본 다든가, 한낮의 아지랑이라든가, 소리의 메아리, 하늘에 뜬구름, 물보라, 물에 뜬 거품, 파초(芭蕉)의 줄기, 번갯불과 같다고 봅니다. 또 다섯째 원소[空大]나, 여섯째의 구성요소인 집적(集積=陰), 일곱째의 인식의 기관(器官), 열 셋째의 의지하는 곳[入], 열 아홉째의 종류(種類=界)와 같이 보살은 중생을 그렇게 봅니다.
물질을 초월한 천계(天界=無色界)에서 물질을 보듯이, 불탄 곡물(穀物)의 싹처럼 보살은 중생을 그렇게 봅니다. 또 미혹을 끊고 처음으로 성자가 된 자[須陀洹]가 몸에 대해서 갖는 생각[身見]과 같이, 다시는 태(胎)를 통하여 태어나지 않는 성자[阿那含]가 다시 태에 들어 생을 받음과 같이, 이승에서 존경을 몸에 받는 성자[阿羅漢]가 갖는 세 가지 번뇌[三毒]와 같이, 진리를 깨달은 경계에 안주하는 보살이 탐욕과 성냄과 계율을 범하고자 함과 같이, 부처님에게 있어서 남아 있는 번뇌의 버릇[餘習]과 같이, 장님이 형상을 보는 것과 같이, 마음의 작용이 이미 다한 경지[滅盡定]에 든 사람의 호흡과 같이, 공중을 날아간 새의 자취와 같이, 석녀(石女)가 낳은 아이와 같이, 초능력의 힘으로 만들어진 꼭두각시[化人]가 일으키는 번뇌와 같이, 잠에서 깨어나서 꿈을 보는 것과 같이, 부처의 깨달음[涅槃]에 든 자가 다시 몸을 받는 것과 같이, 연기(煙氣)없는 불과 같이 보살은 중생을 그렇게 봅니다."

문수사리가 묻기를 "만약 보살로서 이와 같은 내관(內觀)을 한다면 어떻게 사랑[慈]을 행할 수 있습니까." 유마거사는 "보살은 이와 같은 내관을 마치면 스스로 `나는 중생을 위하여 이와 같은 가르침을 마땅히 설하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진실한 사랑입니다. 깨달음을 얻은 보살에게는 이미 생(生)하는 일이 없으므로 깨달음의 경계[寂滅]에서 사랑을 행하며, 번뇌가 없으므로 번뇌의 불에 타지 않는 사랑을 행하며, 과거·현재·미래가 평등하므로 평등한 사랑을 행하며, 대립하는 싸움이 일어나는 곳이 없으므로 다툼이 없는 사랑을 행하며, 안과 밖이 합하지 아니하므로 차별이 없는 사랑을 행하며, 필경에 가서는 다하므로 부서지지 않는 사랑을 행하며, 마음이 깨어지지 않으므로 견고한 사랑을 행하며, 모든 사물의 본성이 청정하므로 청정한 사랑을 행하며, 허공과 같기 때문에 끝없는 사랑을 행합니다. 번뇌라고 하는 도둑을 깨뜨리므로 이승의 존경을 받는 성자[阿羅漢]로서의 사랑[慈]을 베풀며, 중생을 편안하게 하므로 보살로서의 사랑을 행하며, 사물의 진실한 모습[如相] 얻었으므로 여래(如來)로서의 사랑을 행하며, 중생을 깨닫게 하므로 부처로서의 사랑을 행하며, 인연이 없이 홀로 깨달았으므로 자연 그대로의 사랑을 행하며, 평등하여 일미(一味)를 얻었으므로 깨달음을 구하여 중생을 구하고자 하는 마음[菩提]의 사랑을 행하며, 온갖 애욕을 끊었으므로 일체를 초월[無等]한 사랑을 행하며, 대승(大乘)으로써 교화하므로 광대한 부처님의 자비[大悲]의 사랑을 행하며, 공과 무아를 깨닫고 있으므로 권태를 모르는 사랑을 행합니다.

주는 것을 아끼지 않으므로 진리를 설하여 베품[法施]으로서 사랑[慈]을 행하며, 계율을 범한 사람을 교화하므로 계율을 지키는 것[持戒]에 의하여 사랑을 행하며, 나와 남을 지키므로 인욕(忍辱)으로써 사랑을 행하며, 중생의 무거운 짐을 지기 때문에 정진(精進)으로써 사랑을 행하며, 감각적인 기쁨[味]을 받아들이지 않으므로 선정(禪定)으로서 사랑을 행하며, 때를 모르는 일이 없으므로 지혜로써 사랑을 행합니다. 모든 것 앞에 나타나므로 방편에 따라서 사랑을 행하며, 진실한 마음은 청정하므로 감추지 않는 사랑을 행하며, 조잡(粗雜)한 행위를 하지 않으므로 깊은 마음의 사랑을 행하며, 거짓이 없으므로 거짓이 없는 사랑을 행하며, 부처의 즐거움을 얻게 하므로 마음 편안한 사랑을 행합니다. 보살의 사랑은 이와 같습니다."

문수사리가 "무엇을 비(悲)라고 합니까."라고 묻자 유마거사는 "보살은 스스로 지은 공덕의 전부를 모든 중생과 함께 갖습니다."
"무엇을 희(喜)라고 합니까."
"이익을 얻으면 그것을 마음으로부터 기뻐하며 뉘우치지 않습니다."
"무엇을 사(捨)라고 합니까."
"스스로 지은 공덕까지도 바라지 않습니다."
"생사에 두려움이 있는 구도자는 마땅히 무엇에 의지합니까."
"생사의 두려움 속에 있는 보살은 마땅히 여래의 공덕의 힘에 의지하여야 합니다."
"보살이 부처님의 공덕의 힘에 의지하고자 할 때에는 마땅히 무엇을 해야 합니까."
"보살이 여래의 공덕의 힘에 의지하고자 하면 마땅히 모든 중생을 구하는 일에 전념하여야 합니다."
"중생을 구하고자 하면 마땅히 무엇을 제거해야 합니까."
"중생을 구하고자 하면 마땅히 그의 번뇌를 제거해야 합니다."
"번뇌를 제거하고자 하면 무엇을 행해야 합니까."
"마땅히 마음을 바르게 하여 진실한 모습을 항상 지녀야[正念] 합니다."
"어떻게 하면 마음을 바르게 하고 지낼 수 있습니까."
"마땅히 생하는 것도 아니며 멸하는 것도 아님을 체득(體得)해야 합니다."
"어떠한 것이 생하지 않는 것이고 어떠한 것이 멸하지 않는 것입니까."
"악(惡)은 생하지 않고, 선(善)은 멸하지 않습니다."
"선과 악은 무엇을 근본으로 삼고 있습니까."
"이 몸을 근본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 몸은 무엇을 근본으로 삼고 있습니까."
"탐심이 근본입니다."
"탐심은 무엇이 근본입니까."
"허망한 분별이 근본입니다."
"허망한 분별은 무엇이 근본입니까."
"도리에 어긋난 그릇된 생각이 근본입니다."
"도리에 어긋나는 그릇된 생각은 무엇이 근본입니까."
"의지하는 곳이 없는 상태[無住]를 근본으로 합니다."
"의지하는 곳이 없는 상태는 무엇이 근본입니까."
"의지하는 곳이 없는 상태는 근본이 없습니다. 의지하는 곳이 없는 상태가 근본이 되어야만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때 유마거사의 방안에 한 사람의 천녀(天女)가 있었다. 여러 보살들을 보고, 또 설하는 가르침을 들은 그녀는 곧 몸을 나타내 하늘 꽃을 보살들과 부처님의 제자들 위에 뿌렸다. 보살들 위에 뿌려진 꽃은 몸에 붙지 않고 땅에 떨어졌다. 그러나 부처님의 제자들 위에 뿌려진 꽃은 떨어지지 않고 그들의 몸에 붙었다. 모든 제자들은 초인적인 힘으로 꽃을 떨어버리려 하였으나 떨어지지 않았다.
그때 천녀는 사리불에게 물었다.
"무슨 까닭으로 꽃을 버리려 하십니까."
"이 꽃은 매우 법답지 못하므로 버리려 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천녀가 말하기를, "이 꽃을 법답지 못하다고 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이 꽃은 아무런 분별을 하지 않았습니다. 당신께서 스스로 분별하는 마음을 낸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출가하고서 분별을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법과 같지 않은 것입니다. 만약 분별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법다운 것입니다. 보살들을 보면 꽃이 붙어 있지를 않습니다. 그것은 이미 분별하는 마음을 끊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사람이 두려운 마음을 지니고 있을 때, 악귀(惡鬼)의 힘이 미치기 쉬운 것과 같이, 당신께서 생사를 두려워하고 있으므로 빛깔과 소리·냄새·맛·감촉 등이 그 힘을 미친 것입니다. 이미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오관의 욕망[五慾] 등이 전혀 힘을 미치지 못합니다. 번뇌가 아직 다하지 않았으므로 꽃이 몸에 붙습니다. 번뇌가 다하면 꽃은 붙지 않습니다."

사리불이 물었다. "그대는 이 방에 머물은지 오래 되오,"
"제가 이 방에 머문 것은 고덕(古德)께서 깨달음[解脫]을 얻은 것과 같습니다."
"앞으로도 여기에 오래도록 머무르겠소,"
"고덕의 깨달음도 오래 지속(持續)할 것입니까."
사리불은 묵묵부답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그때 천녀가 말하기를,
"웬일이십니까. 고덕께서는 뛰어난 지혜를 지니고 있으면서 묵묵부답이니."
"깨달음은 말로 할 수가 없어, 그래서 나는 할 말을 모르오."라고 대답하자 천녀가 "말씀[言說]과 문자(文字)야말로 그 모두다 깨달음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 안에서도, 마음 밖에서도, 또 안과 밖의 중간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문자 역시 안도 밖도, 또 안과 밖의 중간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고덕이시여, 문자를 떠나서는 깨달음을 설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그대로가 깨달음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사리불이, "그러나 탐심(貪心)과 성내는 마음과 어리석음을 떠나는 것이 깨달음이 아니겠습니까."
"깨닫지 못하였어도 깨달았다고 하는 교만한 마음을 가진 사람을 위해서 부처님께서는 탐심과 성내는 마음과 어리석음을 떠나는 것이 깨달음이라고 설하였을 뿐, 만약 그와 같은 교만한 마음이 없는 사람에 대해서는 탐심과 성내는 마음과 어리석음이 곧 그대로 깨달음이라고 부처님께서는 설하였습니다."
"참으로 옳은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그대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깨달았기에 그와 같이 훌륭히 설할 수가 있게 되었소."
"저는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으며, 깨닫고 있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같이 말하는 것입니다. 그 까닭은 얻었다든가 깨달았다고 하는 사람은 부처님의 가르침에서는 교만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은 다시 천녀에게 물었다.
"그대는 세 가지 가르침[三乘]가운데 어떤 것을 구하고 있소."
천녀가 대답하기를 "자기만의 깨달음을 구하려 노력하는 자[聲聞]에 대하여 설해진 가르침을 설하여 중생을 교화하므로 저는 성문이며, 인연의 이치를 설하여 중생을 교화하므로 저는 깨달음을 홀로 즐기는 자[緣覺=벽支佛]이기도 하며, 광대한 자비를 드리워 중생을 교화하므로 대승(大乘=菩薩)이기도 합니다. 고덕(古德)이시여, 참파카의 숲에 들어가면, 오직 참파카의 냄새만을 맡을 뿐, 다른 냄새를 맡을 수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만약 이 방안에 들어오면 오직 부처님 공덕의 향내를 맡을 뿐, 스스로의 깨달음에 정진하는 성자나 깨달음을 홀로 즐기는 자의 공덕의 향내를 맡지 않습니다. 고덕이시여, 대체로 제석천이나 범천·사천왕·온갖 하늘의 신들·물의 신들·내지는 귀신일지라도 이 방안에 들어온 자는 훌륭한 분이 설하는 바른 가르침을 듣고, 누구나 부처님 공덕의 향내를 바라며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을 일으킨 다음에 나갔습니다. 고덕님, 저는 이 방안에 이미 십 이년을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자기만의 깨달음에 정진하는 성자나 깨달음을 홀로 즐기는 부처님에게 적합한 가르침을 설하는 것을 들은바 없습니다. 오직 보살의 크고 넓은 자비와 불가사의한 부처님의 가르침만을 들어 왔습니다.

사리불님, 이 방에는 지금까지 없었던 일[法] 여덟 가지가 나타나 있습니다. 그 첫째는 이 방은 항상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어 밤과 낮이 없으며, 태양과 달의 빛도 무색한 것이 전에 없던 일입니다. 또 이방에 들어온 사람은 온갖 번뇌에 괴로워하는 일이 없습니다. 이것이 전에 없던 두 번째 일입니다. 이 방에는 항상 제석천·범천·사천왕천·그리고 이곳 저곳의 보살들이 모여 와서 얼굴을 맞대고 있습니다. 이것이 전에 없던 세 번째 일입니다. 이 방에는 항상 깨달음을 얻는 여섯 가지 지혜의 완성[六波羅密]과 얻는 공덕을 잃지 않는 경지[不退轉]에 관한 가르침이 설해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전에 없던 네 번째 일입니다. 또 이 방에서는 항상 천인의 가장 훌륭한 음악이 연주되고, 가야금의 줄에서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가르침을 설하는 소리와 교화하는 소리가 들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전에 없던 다섯 번째 일입니다. 이 방에는 네 개의 커다란 창고가 있어서 온갖 보배가 가득 차 있습니다. 가난으로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이들에게 전부를 보시하지만 그 바닥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것이 전에 없던 여섯 가지 일입니다. 이 방에는 석존(釋尊)· 아미타불· 아크쇼브야(아촉불)· 보덕(寶德)· 보염(寶炎)· 보월(寶月)· 보엄(寶嚴)· 난승(難勝)· 사자향(獅子響)· 일체리성(一切利成) 등 시방의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부처님을 이 훌륭한 분[維摩]이 염하면 곧 나타나 부처님의 비밀한 가르침을 여러가지로 설하고 돌아갑니다. 이것이 전에 없던 일곱 번째 일입니다. 이 방에는 엄숙하게 장식된 천궁이나 부처님의 정토가 낱낱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것이 전에 없었던 여덟 번째 일입니다.
사리불님, 이 방에는 전에 없던 여러가지 일이 지금은 항상 나타나 있습니다. 이 같은 불가사의를 보면서도 스스로의 깨달음만을 구하는 성자를 위한 가르침 따위를 바라는 사실이 있겠습니까."

사리불이 천녀에게 묻기를 "그대는 어찌하여 여자의 모습을 바꾸지 않는가."
"저는 지난 12년 동안 여자의 신체상의 특징에 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아직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꾸어야 할 무엇이 있습니까. 예를 들면 요술사가 요술에 의해서 꼭두각시의 여자를 만들어 내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꼭두각시에게 누가 어찌하여 여자의 모습을 바꾸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이 사람의 질문은 마땅한 것일까요."
사리불이 대답하기를, "아니지. 꼭두각시에게는 정해진 특징이 없지. 바꿀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모든 것이 이와 같아서 정해진 특징이 없습니다. 그런데 무슨 까닭으로 여자의 모습을 바꾸지 않느냐고 물으십니까."라고 말한 천녀는 즉시 초능력을 발휘하여 사리불을 천녀와 같은 모습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천녀 자신을 사리불과 같은 모습으로 몸을 바꾸고 물었다. "어찌하여 여자의 모습을 바꾸지 않으십니까."
사리불은 천녀의 모습을 하고 답하였다. "나는 지금 어찌하여 변했는지 모르지만, 여자의 모습으로 변하고 말았소."
천녀는 말하였다. "고덕님, 만약 당신께서 그 여자의 모습을 바꿀 수가 있게 되면, 여자라고 하는 모든 여자는 모습을 바꿀 수가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고덕께서 남자이면서 여자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것과 같이, 모든 여자도 이와 같아서 여자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지만 여자는 아닙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모든 것은 남자도 아니며 여자도 아니라고 설하신 것입니다."
천녀는 곧 초능력을 거두어들였다. 그러자 사리불의 몸은 본래와 같이 되었다.
천녀는 사리불에게 물었다. "여자의 모습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사리불은 답하였다."여자의 모습은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천녀는 말하였다. "모든 것은 그와 같아서 있는 것도 아예 없는 것도 아닙니다.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라고 하는 말은 부처님이 설한 것입니다."
사리불이 천녀에게 물었다. "그대는 이 곳에서 죽으면 어디에 태어나도록 되어 있소."
천녀는 답하였다. "부처가 화신(化身)으로 태어나는 곳에 저도 그와 같이 태어날 것입니다."
"부처가 화신으로 태어나는 것은 죽어서 태어나는 것과 같지 않다."
"중생도 그와 같아서 죽어서 태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대는 어느 때에 최고의 깨달음[阿욕多羅三먁三菩提]을 얻게 되오."
"만약 사리불께서 다시 어리석은 사람으로 되돌아 갈 때, 저는 그 최고의 깨달음을 얻게 될 것입니다."
"천만에, 나는 또다시 어리석은 자로 되돌아 갈리 없다."
"제가 최고의 깨달음을 얻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깨달음에는 머무를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깨달음을 얻는 자도 없습니다."
"최고의 깨달음을 지금 얻고 있는 부처나, 이미 얻은 부처와 앞으로 얻을 부처는 항하의 모래알과 같이 많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도대체 무슨 일인가."
"이것은 세간에서 쓰이고 있는 표현을 빌었기 때문에 과거, 현재, 미래의 부처가 있음을 설하였을 뿐, 깨달음에 과거, 현재, 미래가 있다고 한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천녀가 묻기를, "사리불이여, 당신께서는 세간의 존경을 받음에 합당한 경지[阿羅漢]를 체득하였습니까." "집착을 버릴 수 있으므로[無所得] 체득했소이다." 그러자 천녀는 "많은 불보살도 그와 같이 집착을 버림으로써 체득했습니다." 그때 유마거사가 사리불을 향하여 "이 천녀는 지금까지 92억의 부처에게 봉사하여 보살에게 갖추어지는 초인적인 힘을 이미 자유로이 구사 할 수 있습니다. 서원을 채우고, 진리를 깨달은 편안함[無生忍]을 얻었고, 이룩한 공덕을 다시는 잃지 않을 경지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미 세운 서원이 있으므로 뜻대로 모습을 나타내어 중생을 교화하고 이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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