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고와 탁발- 26

 


<주간컬럼/2004-10-10>

Q : 질병과 악몽은 고통스럽고 두렵습니다. 道가 높으면 몸에 광체가 나며 질병에 대한 면역성이 강화되고 꿈을 꾸지 않는 등 일반사람들과 많이 다르다고 합니다. 악몽이나 질병, 나쁜 운명에 시달리지 않는 삶이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습니까?

A : 인간은 누구나 질병과 괴로움 죽음이 없는 삶을 원합니다. 진시황제도 똑같은 문제로 발버둥 쳤지만 허사였습니다. 老 · 病 · 死 문제는 구하거나 의지해서 초월할 수 있는 비책은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병고가 두렵고 무병장수로 즐겁고 편안함을 원하는 것은 사바중생의 속성이자 분별식으로 병마를 불러들이고 윤회고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하는 결정적 요인입니다. 더구나 병고는 육신의 괴로움뿐만 아니라 찰나를 놓치게 함과 동시에 三界를 벗어날 해탈지견을 얻지 못하게 합니다.

근본성품을 보아도 습기와 질병이 줄고 心身이 맑아질 때 까지는 무수한 난관과 고통, 내 · 외적 허물을 벗는 경계를 겪습니다. 탐착과 질병은 무명업식을 더하는 요인이지만 어떻게 解悟할 것인가에 대한 분심과 인고를 감수해야 만이 해결점이 보입니다. 깨달음은 오랜 중생고의 해결뿐만 아니라 心身에너지의 질이 바뀌는 크나큰 변화입니다. 無我를 경험하면 체질이 부드럽고 강건해져 어지간한 병마는 스스로 물러나는 것은 물론 타인의 고질병과 악운을 치유하는 불가사의한 능력이 생겨납니다. 불교가 위대한 것은 원인과 결과가 딱 맞아떨어지는 과학적인 교리도 그렇지만 올바른 수행을 통하여 어지러운 속세로부터 균형을 잡을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것이 더없는 영험입니다.

우리의 몸은 허망한 것이지만 노쇠하기 전 강건함을 유지해야만 일대사 과업을 마칠 수 있습니다. 병마는 심신의 균형이 벌어진 틈으로 찾아드는 말그대로 마장입니다. 탐착하고 분별하는 것만큼이 무명세계이며 질병의 온상이고 번뇌망상의 발원지입니다. 불교경전은 바로 이런 중생의 고질병을 치유하는 신통스런 처방전이지만 말세중생들은 믿음이 약하고 마음이 四相으로 가로막혔기 때문에 識이 어둡고 건강이 부실합니다. 牛谷의 실상관법은 몸을 바로세우고 내면세계를 밝고 건강하게 만드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참선수행 법일 것입니다. 지혜는 맑고 고요함을 근본으로 합니다. 사람에게서 광체가 난다는 것은 내면이 그만큼 밝고 반듯하여 무애자재한 자비행을 실천한다는 뜻입니다.

Q : 부처님 탁발그릇에 문둥이 손가락 세 개가 빠져있었습니다. 어찌할까요?

A : 불가의 탁발은 단순한 구걸행위가 아니라 재보시 즉 회향이라는 수행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출가사문의 탁발행위는 사바중생의 삶속으로 들어가 그들에게 보시의 기쁨을 일깨우는 직접적인 동기부여와 동시에 일용할 음식을 구하는 것은 물론 겸손과 下心을 온몸으로 익히는 실천수행의 방법이기도 합니다. 또한 탁발의식은 수행력이 일천한 사람들에게 나눔의 미학을 실천하게 하여 보시공덕을 쌓게 하고 그 원력으로 한 차원 높은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실천적 수행법이기도 합니다. 깨달음의 지혜와 극락왕생은 풍부한 식견이나 고상한 사유가 아니라, 삼독심을 놓은 空寂의 세계에서 생겨나는 오묘한 마음작용이기 때문에 탁발과 보시는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출가사문이 시주의 은혜를 저버리면 무간지옥에 떨어진다고 합니다. 따라서 부처님의 탁발그릇에 빠진 문둥이 손가락 세 개는 대단히 고민스런 문제입니다. 탁발그릇에 묻어온 손가락을 나누어 먹을 수도 없고, 되돌려 주거나 내버릴 수도 없는 난감한 처지도 그렇지만 불경스럽게도 하필 부처님의 탁발그릇에 빠진 손가락이라면 그 어디에 비추어 보아도 해결방법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佛法에 비추면 부처님 탁발그릇의 문둥이 손가락을 두고 어쩌면 좋겠느냐는 설왕설래가 문제가 아니라 正法인연을 만나 正道를 닦으면 애시당초 그럴 일이 일어나지 않는 다는 것이 본 선문답의 본질입니다. 불교진리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면 달랑달랑하던 문둥이 손가락도 탁발이 끝난 다음에 떨어질 것입니다. 불보살의 가피력은 결코 말과 글, 가설이 아니라는 사실을 절절히 경험한바가 무수히 많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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