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과 불타는 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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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컬럼/2005-11-27>
Q :
오래전부터 명산대찰을 순회하며 기도하고 마음공부를 하였습니다. 몸과 정신건강에 좋다는 단전호흡수련으로 한때는 깨달음을 얻은 줄로 믿어 그런대로 잘 살았지만 지금은 몸도 마음도 망가지고 숨을 못 쉴 정도로 고통스럽습니다. 당시 나를 지도해주던 스승은 물론 온갖 도사, 의사, 신의를 찾아다녔지만 호전은커녕 고칠 수 없는 신병이고 상기현상이라고 말합니다. 누가 숨구멍을 막는 것도 아닌데 숨이 자연스럽게 쉬어지지 않는 원인은 무엇 때문이며 어떻게 하면 말 그대로 단전호흡이 됩니까. 한 번뿐인 인생을 잘 살아 보려고 최선을 다하여 온갖 수련을 하였지만 마음이 타들어가고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이 고통에서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습니까? 깨달음을 얻은 사람도 몸이 아픕니까?
A : 명산대찰을 염두에 두고 부처공부를 하였다면 아니함만 못합니다. 대찰은 불제자의 마음동산을 꾸미는 좋은 환경이 될지언정 해탈진리의 실상이 아닙니다. 살불살조(殺佛殺祖)하지 못한 진불(眞佛)은 없습니다. 동업중생을 위한 자비헌신 없이 미래를 선점하고 일신의 안위를 위하여 도를 닦았다면 반드시 대가를 지불해야 됩니다. 할아버지 선행이 손자 밑거름이라는 격언은 옛말입니다. 지금은 당대에 선인선과 악인악과의 과보를 받는 초스피드 인과윤회시대입니다. 참선은 종교적 신앙을 뛰어넘은 초과학적인 체계이기에 현대인들에게 초미의 관심사이지만 참 사람 답지 않은 부처는 없기에 선법도 엄격한 계행과 자비헌신을 전제합니다. 사도는 중생구제 서원 없이 행복을 선점하려는 지극히 이기적이고 비인간적인 행위로서 그에 따른 업보가 지중합니다. 현생은 전생의 거울입니다. 심신수련으로 고를 여의고 팔자를 고치려는 생각에 앞서 바라밀행이 선행되지 않으면 도 닦음이 오히려 죄업입니다. 보시공덕 없는 출세는 언감생심이며 단전호흡으로 잠시나마 좋은 시절이 있었다면 그것은 삿된 타력에 감염되었기 때문입니다. 한 몸에 두 주인이 살게 되면 처음 얼마동안은 마치 깨달음을 얻은 것 같은 기상으로 앓던 병도 없어지고 해괴한 힘을 발휘하지만 길어야 수년 이내로 마왕자손의 본색이 드러납니다.
열반에 이른 선지식인연이 없으면 정각이 불가능하다는 것쯤은 누구나 알지만 업보중생의 눈에 쏙 들어오는 선지식은 없습니다. 종교색체를 초월한 평범한 범부모습의 참 선지식을 한눈에 알아 볼 수 있다면 그는 이미 중생이 아닙니다. 어느 날 아! 그랬었구나 하고 깨닫는 진한 감동이 그가 불연(佛緣)이었음을 알게 되는 것이 인간사입니다. 말세중생은 대부분 전문종교인이거나 종교제사장 또는 신의 몸종을 선지식으로 착각할 수밖에 없는 근기입니다. 불연에 의한 성성하고 오묘한 무심 맛을 모르면 삼생을 닦아도 도에 이르지 못합니다. 세간의 무슨 단전호흡과 마음수련으로 건강과 지혜를 증득하고 팔자를 바꾼다면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뜹니다. 우주만물 각각의 원소가 우리 몸과 마음의 구성요소이듯 단전 또한 신체의 특수부위가 아니라 생명력의 인지작용인 호흡과 의식의 발로기점입니다. 인간은 탯줄을 통하여 생명을 얻었기에 단전이 배꼽일거라고 믿지만 그것은 연결부위이지 상수원이 아닙니다. 우주섭리와 어긋나지 않는 순수의식이 되는 것과 비례하여 호흡이 깊어지고 마음이 안정되며 혜(慧)가 밝아집니다. 생사가 멸한 무심경지는 생명의 끈인 호흡에도 묶이지 않는 것이기에 오로지 화신, 법신, 보신불의 가호로서 만이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돈오(頓悟)로 이치에 밝아지는 것만큼 마음이 안정되고 호흡은 자유스러워집니다. 누구나 숨 쉬는 호흡법이 불도수행에 있는 것은 호흡은 소리와 빛 마음과 함께 도(道)를 이루는 방편이기 때문입니다. 죽기 보다 더 힘든 경계에서 한발 더 나아가야만이 분별상이 떨어지듯 의식이 생명의 끈인 들숨날숨에 묶이지 않는 경지가 궁극의 도(道)입니다. 수증(修增)으로 이치가 터득되는 영역만큼 호흡과 마음이 안정되듯 살아서 완성에 이르는 유여열반은 들숨날숨의 호흡경계가 사라지는 지점입니다.
정화되지 못한 육식(六識)이 생명의 끈인 들숨날숨과 충돌하며 고통을 야기하는 것임을 알지 못하는 것이 업보중생입니다. 마음에 동요가 생기면 호흡이 거칠어지고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은 상대분별의식에 의한 내적풍파로서 만병의 원인입니다. 우곡선원은 호흡을 버리기 위하여 날숨호흡법을 수지 증득합니다. 해탈진리세계에 가까이 다가간 것만큼 호흡이 깊어지며 따라서 마음에 정적인 고요가 깃듭니다. 세간의 삿된 단전호흡은 심신을 조복 받는 수단이 아니라 육식에 맛 들이는 사술이기에 단박은 후련하지만 결국 탁기로 인하여 숨을 몰아쉬며 헐떡거릴 수밖에 없는 참담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의식이 호흡에 달라붙어 죽었다 살기를 반복하는 것이 심병이자 갖가지 정신질환입니다. 그 원인은 뜻을 잘못세운 것이 첫째이고, 그릇된 행실이 둘째이며, 호흡에 탐욕을 섞은 것이 셋째입니다. 불가의 호흡법은 참 사람의 길을 걷기위한 필수조건이지만 특출한 힘을 얻는 사술로 삼으면 그 즉시 호흡의 노예로 전락합니다.
깨우침의 완성은 호흡마저 초월한 경지입니다. 각자(覺者)는 들숨날숨의 호흡경계도 마디도 없는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하기에 분별의식 틈새를 파고드는 마(魔)가 기생할 수 없어 이를 청정법신(淸淨法身)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숨 쉬는 기술로 삿된 정신력을 키워 일신의 영달을 꾀하면 반드시 살아서 생지옥과보를 받습니다. 도병은 천상의 법도에 어긋난 행위의 과보로서 심신이 삭막해지고 불안 공포로 옥죄이며 숨통이 막히는 형벌을 초래합니다. 30년 법랍의 강백도 세간의 단전호흡에 매달리다 죽기직전 살려달라는 애원을 박절하게 내치지 못하는 것도 인간사입니다. 삼장법사가 계율을 어기고 날뛰는 손오공을 간단히 제도하듯 상기증상, 절명, 빙의, 자폐증 등의 불치병을 도구나 약물이 아닌 죽비하나로 간단히 해결한 본원의 사례가 수두룩합니다. 깨달은 사람도 육신을 가졌기에 때로는 아프지만 스스로 기혈을 운행하기에 회복이 빠릅니다. 만일 ‘나는 깨달았기 때문에 육신의 아픔이 없다’라고 말한다면 그는 숨 쉬는 송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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