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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화이트홀과 해탈성불 그리고 제13識
사람은 광대무변한 우주에서 먼지 알갱이 같은 지구 행성에 둥지를 튼 가냘픈 생명체이다. 몸을 이끄는 정신의 주인 영혼 역시 지구중력에 갇혀 다람쥐 쳇바퀴 돌듯 생사 전변하는 윤회 굴레에서 놓여나 영원한 생명을 얻고자 뭇 종교에 자기 영혼을 신탁한다. 그러나 왕도는 누구나 반드시 거쳐야 하며 몇 생을 윤회하든 스스로 대우주의 생성소멸시스템인 블랙·화이트홀과 일치하는 사후세계를 관통하며 자신의 무명 업장을 소멸하는 길뿐이다.
불교는 이 몸은 내 것이 아닌 자연으로 되돌려줄 사대 원소인 지수화풍으로 대별하고 있다. 그러나 육신은 마음을 작동시키는 정신의 당처이자 해탈 진리를 깨우칠 소중한 법당이라는 사실도 분명히 인식한다. 사람은 자율성이 가미된 소우주이고 가장 정제된 원소의 집합체이지만 보고 듣고 맛보면서 빚은 업장으로 말미암아 우주 섭리와 일체성을 이루는 불성 회복은 아득하다. 돈오(頓悟)는 숙명에 사로잡힌 육도 중생에서 탈출하는 동기이며 몸과 정신을 구성하는 세포와 육식(六識)이 생성 소멸하는 대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동화되는 시발점이다.
불교 관점에서 깨달음과 해탈은 몸과 정신을 형성하는 수십 수백만의 세포 하나하나에 깃든 훈습인자, 즉 보고 듣고 맛보면서 길러진 나[我]라고 인식하는 중생 업장을 진리의 본성 무위자연으로 모두 회향시킨 무아(無我)를 말한다. 따라서 중생은 생사가 겹치는 블랙홀과 화이트홀의 대우주 섭리와 일체화가 되는 돈오로 유. 무위의 대우주 만법과 조화를 이루는 열반적정에 들지 못한다면 생사고해는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부처는 사생육도를 떠돌게 하였던 전생숙업을 놓고 비운 해탈 열반적정에 깃든 영원의 불씨를 체득한 참사람이다.
참선법이 인간세상에서 가장 심오한 철학이자 초과학적 시스템인 것은 살아서 8만4천 저승경계를 통과하며 자신의 숙업을 소멸시키는 유일무이한 비법이기 때문이다. 전생숙업을 제도하지 못한 무심지혜도 없을뿐더러 유. 무위법계 이치를 터득하지 못한 해탈성불도 없다. 따라서 일체중생은 우주법계 일체처소에 걸림 없는 무심지혜를 체득하지 못하였다면 무섭고 고통스런 저승 형벌은 피할 수 없다. 지구중력 내에서 몸 없이 떠도는 가련한 중생 신(神)을 모면하고 고귀한 목숨을 받은 생명체는 지렁이와 하루살이도 있듯 직 전생 사람은 아주 희소하다. 만물의 영장 사람으로 태어나 불도를 닦아 미리 저승 형벌을 치르고 성불 세계를 수호하는 사천왕 관문에 도달한 것은 인간완성의 경로에 진입한 것이다.
내 체험에 의하면 저승은 자신이 빚은 무명업장이 8만4천 저승관문을 거치며 혹독한 형벌을 받는 처절함의 세계였다. 저승은 단절과 암흑, 극한의 고통과 시달림, 유혹이 들끓었고 지옥을 주관하는 마왕은 제석천왕에 필적하기에 영혼에 각인된 업장이 모두 소멸되지 않으면 생사윤회의 지옥세계 통과는 허용되지 않았다. 호흡이 없는 생명력으로 하룻밤 8시간동안 처절한 저승형벌을 치르며 전생 업장을 제도 당하였던 나는 8만4천 지옥 경계를 거치면서 욕계 색계 무색계를 통과하였다. 그러나 삼계(三界)를 벗어난 경지는 해탈이 아니라 감각적인 아픔과 힘겨움이 없는 육신의 안식처 같은 상대적인 천국일 뿐이었다. 이때 내 영혼은 생명 본능이 작동되어 얼핏 드러난 아름다움과 편안하다는 상대분별을 일으켰고 그로 인하여 마냥 황홀하였던 천국은 곧바로 사라졌다. 불(佛)세계 법도에서 사바중생이 오매불망 염원하는 천국과 극락은 생사고해의 속진세상 저편일 뿐 영원불멸의 불국정토가 아니었던 것이다.
첫 번째 천국에서 극한의 시달림을 겪고 퇴출당한 경계 이후부터는 그 어떤 욕구와 가치관마저 소멸되었다. 만일 이때 생명력마저 끊어졌다면 인식기능이 단절되어 오리무중인 해탈법도 증명은커녕 말세종교 잡설이나 추상적이고 픽션에 불과한 세간의 사후세계이야기로 그쳤을 것이다. 불교관점에서 무심은 심신수행의 완성형이다. 그러나 마음을 다스릴 때 설핏 드러난 관념적인 무심은 번뇌 망상이 잠시 사라졌을 뿐 행주좌와 어묵동정에 지속가능한 무심삼매가 아니다. 저잣거리 실사구시가 목적인 해탈법도에서 무심지혜가 일상적으로 유지되는 것은 식(識)의 저장창고 뇌세포작용이 아닌 생명체의 중추기관인 심장의 파동에너지로 부터이다. 해탈성불이 불가사의한 영역으로 인식되는 이유는 사바중생은 뇌파(腦波)에너지 영역에 속해있기 때문이다. 불(佛)세계 관문 돈오(頓悟)를 체험하지 못하였다면 심파(心波)를 촉발시킬 태초의 빛 에너지 원력이 작동되지 않아 무념무상과 기혈운용은 불가능하다. 현대 심리학이나 뇌 과학은 인간의 6식(識) 저장창고이자 표면의식인 제7 말뢰야식에 접근하는 수준이다. 제아무리 고매한 식견도 제8식에 접근조차 불가능한 이유는 아뢰야식은 인간의 생각이나 힘이 닿을 수 없는 무위 법계에서 작동하는 함장식이기 때문이다. 불교는 보살의 제10식도 중생계로 보며 제11식을 등각 해탈성불로 규정하지만, 불교 이전인 참선세계는 우주가 벌어지기 이전 태초의 빛 대적광명(大寂光明)의 활성체인 심파에너지를 운용하여 시공을 초월하는 제13식까지 근접한다. 각설하고 불세계의 인간불사 프로그램은 그대로 좋은 무심한 경지조차 최종종착점이 아니었다.
업이 멸진되어 무심해진 이 경계에서 한량없이 아름답고 안락한 극락세상이 마치 상감마마 진수성찬처럼 쓱 차려졌었다. 두 번째 마주한 천국은 묘사할 수 없는 향기와 아름다움. 사방팔방이 칠보로 장엄되어 영롱하게 빛나는 기기묘묘함의 극치였지만 난 아무런 감흥이나 반색도 없이 소가 닭 쳐다보듯 무덤덤하였다. 천상은 놀고 지내는 일상뿐이라서 깨달을 수 없다는 냉엄한 해탈 법칙을 증명하듯 해탈성불 관문을 지키는 사천왕은 저승 형벌을 다 치른 영혼이 저절로 주어진 지고한 천국에 안주하는 것을 용인하지 않았다. 일체중생이 염원하는 천국과 극락은 블랙홀의 끝과 화이트홀 초입을 관장하는 사천왕영역일 뿐 새로운 별, 신성의 탄생과 같은 등각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해탈성불 관문을 관장하는 사천왕이 등장하기 이전까지의 수많은 경계마다 일체 자아 인식이 없었다. 그러나 두 번째로 마주한 이 천국에서는 순진무구한 동자 모습으로 천지사방이 기기묘묘하고 영롱하게 빛나는 칠보 동산에서 자다 놀다 하며 성장하는 과정이 있었다. 이때 전생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기력이 고물고물 찌릿찌릿 감각을 되살리며 심신을 소생시키는 시공간만큼은 꽤 오래 주어졌었다.
지난 30여년, 불타의 정법 구현을 위한 파사현정 노정에서 여러 이적이 구사되었던 원력은 내 심신에 깃든 대적광명 에너지의 운용이었다. 오늘날 불교의 탄생 기원인 참선법이 아니면 그 어떤 방법으로도 체득할 수 없는 대적광명 에너지를 본원은 자이파(慈理波)라 정의하였고 불문(佛門)은 불보살의 위신력(威神力)이자 법력(法力)이라 일컫는다. 우곡의 자이파(慈理波)는 대적광명 에너지를 체득한 대자대비 보살의 측은지심과 진리의 실상 섭리(攝理)를 꿰뚫은 무심지혜와 생명력이 가동되는 청정 법신의 심파(心波)작용이다.[자이파(慈理波)(ZIPA)]는 왜곡을 방지코자 특허 제41-0335677호로 등록되어있다.
중생 업장이 해탈 열반 세계로 진입하는 것을 통제하는 사천왕 세계는 용광로를 거쳐 순철이 만들어지듯 행성을 집어삼켜 녹이는 우주의 블랙홀과 다름없었다. 블랙홀은 명(命)이 다한 행성을 소멸시켜 신성을 탄생시키는 화이트홀과 공존하듯 불(佛)세계 또한 극한의 처절함을 통하여 전생 업장을 녹이고 불성(佛性)이 재탄생되는 시스템이었다. 따라서 불성은 부처의 본성이라는 종교적인 수사뿐만이 아니라 생성소멸의 대우주가 벌어지기 이전 태초의 순수세계로 회귀한 심신의 원자에너지이다.
최후의 천국을 제공하는 마왕의 유혹에 이끌리지 않으려 전력투구로 부정에 부정을 더하였던 내 강단은 일체법이 무상하고 덧없음을 터득하려던 전생 수행력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승의 이날까지 기성 종교관이나 심법은 온전히 백치였던 내가 8만4천 번을 죽고 다시 태어나는 윤회고를 겪으며 업을 청산해야 하는 사후세계를 한꺼번에 몰아서 관통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불연(佛緣)덕분이었다. 지고한 천국조차 거부한 당돌함은 청정 법신의 정체성인 불성(佛性)을 재탄생시키는 화이트홀 입구를 관장하는 사천왕을 불러내었고 그로부터 극한의 시달림으로 이성의 양극단 공포와 유혹을 인식하던 자아의식마저 끊어졌었다. 생명력의 토대 존재 본성마저 사라진 지점부터 내 영혼은 대우주 만법계 시공간을 빈틈없이 통제하는 사천왕영역에서 놓여나 영원한 자유, 불(佛)세계로 진입되었다.
내 새로운 영혼의 역사는 속세를 초월하였다는 강원도 속초 바닷가의 한 콘도에서 무위법계를 관통하며 생명본성마저 사라진 대적멸(大寂滅)의 선상에서 비롯되었다. 1992년 3월 초하룻날 새벽4시 정각, 적멸에 이른 청정법신 그 심연에서 홀연히 솟는 영원한 생명의 빛, 대적광명(大寂光明)은 심신의 원소를 일깨워 불성을 가동할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한 근원이었고 저잣거리 입전수수로 망실된 불타의 정법을 구현해야 할 시대적 소임이 주어지는 인간불사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였다.
오늘날 본원의 참선수행법 요체인 날숨호흡과 실상관법(實像觀法)은 대자유인의 삶을 누릴 수 있는 유일무이한 힘, 불(佛)세계의 대적광명에너지를 차용하는 비법이다. 내가 체득한 대적광명은 마치 영원히 샘솟는 화수분이 천지를 가득 채우듯 나의 내면세계 그 심연에서 솟는 맑고 밝은 빛에너지였다.
해탈열반세계를 밝히는 대적광명 속에서 40분간 너는 어디서 왔느냐 왜 사느냐 등의 7가지 자문자답이 끝나자 은은히 드러난 불타의 환한 미소에 아! 하는 무언의 탄성과 함께 식(識)이 되살아나 이승으로 회귀되었던 임신년 삼월초하루 그날의 역사가 오늘날 사단법인 우곡선원 탄생의 기원이다. 불교의 근본 취지 인간불사(人間佛事)를 위한 본원의 참선법회는 애당초 주경야독 야단법석이었다. 재가불자가 주축인 도반들이 때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업을 놓고 비우는 알아차림의 찰나 찰나가 바로 두타의 삶이자 진정한 불도이기에 본원은 일상에서 언제나 수지증득 할 수 있는 날숨호흡법과 실상관법 등을 창안하여 정법이 멸한 이 무명시대를 헤치고 불타의 정맥이 닿는 오도(悟道)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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